민주당 고양시 갑 이재준 경기도의회 의원은 지난 22일간(10월 4일-25일) 운영해온 화정역 광장의 고 백남기 농민 추모 분향소를 철수했다. 경찰의 부검영장 집행이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이재준 경기도의원은 “국가 공권력에 의한 국민의 희생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경찰은 백남기 농민이 뇌사상태에 빠진 지난 1년여 동안 위문은 고사하고 사과 또는 진상규명도 없이 서울대병원의 병사 규정, 부검영장 발부 등 증거조작의 기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추태를 연출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더군다나 ‘전문 시위꾼’이라는 보도를 통해 마치 ‘전문 시위꾼’은 국가 폭력의 희생이 되어도 정당한 것처럼 우리 사회의 지각능력의 부조화를 조장했다.”고 말했다.

‘지각능력의 부조화’. 최근 우리는 우리의 지각능력을 심각하게 부조화시키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결정적인 증거인 태블릿피씨가 우연히 발견된 것을 두고 국정농단의 파워싸움에서 밀린 최순실 씨 과거 핵심측근이 치밀하게 기획한 보복이란 설도 돌지만 결과적으로 국민들은 또 다시 인내력을 시험받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분의 말씀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우주의 기운을 모아 국민들을 보살피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자고 사건은 터질 때마다 항상 예상을 뛰어넘을까.

지난 24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결정적 증거가 jtbc에 의해 보도되기 이전 지난 주말에 기자는 화정역 광장의 고 백남기 농민 추모 분향소를 방문했다. 그리고 분향소를 지키고 있던 김효금 고양시의회 의원에게 시민들의 반응을 물었다. “젊은 청소년들의 관심과 애도가 예상외로 높았다”고 한다. 물론 보행에 지장을 주니 분향소를 뒤로 물러달라는 민원도 있었고, 항의하는 몇몇 어르신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시민들은 안타까운 눈빛만을 전하며 지나쳤다고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안타까운 사건이다. 그리고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죽음은 안타까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는 필연성, 하지만 그 죽음이 나에게 언제 닥칠지 모른다는 우연성이 인간의 존재 조건이다. 반드시 오지만 언제 닥칠지 모른다는 사실에 인간은 불안하다. 알 수 없는 불안의 근본원인이 바로 죽음인 것이다.

삶을 초월한 성인(聖人)이 아니고서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불안을 극복하고자 평범한 인간들은 현실에만 충실하기도 하고 반대로 죽음을 아예 배제하려 시도한다. 백남기 농민 추모 분향소를 대하는 시민들의 반응이 안타까움과 함께 불편함이 있었던 이유이다. 더군다나 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분명 개인적 죽음이지만, 그가 죽음에 이른 이유는 개인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화정역 분향소를 방문한 후 기자는 ‘메멘토 모리’를 떠올렸다.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를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 이런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다. 죽음은 과거 개선장군마저 겸손하게 만들었고, 오늘날 현대인들이 항상 갖는 불안의 원인이자 발전적 성찰의 계기가 된다.

“메멘토 모리!”.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25일 긴급 사과 기자회견을 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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