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간장’이라는 상표와 같이 우리는 흔히 ‘몽골’을 ‘몽고’라고 부른다. 몽고라는 표현은 오랫동안 몽골족에게 시달림을 받았던 중국인들이 몽골족을 비하하기 위하여 우매할 몽(蒙)에 옛 고(古)자를 조합한 말이다. 몽골사람들은 그들을 '몽고' 내지는 '몽고인'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우리에게 '조센징' 혹은 '어글리 코리안' 등으로 말하는 것과 같다.

칭기스칸과 그 후손들이 몽골제국을 건설하였으나, 제국은 14세기 말에 몰락하였다. 몽골을 정복한 청나라 강희제는 몽골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내몽골과 외몽골로 분리시켰다. 외몽골은 1911년 청나라가 혼란해지자 제1차 혁명을 일으켜 자치를 인정받았으나, 1920년 국민당이 외몽골의 자치를 철폐하였다. 이에 외몽골은 1921년 수흐바타르(국회의사당 앞에 있는 동상의 주인공)가 혁명군을 조직하여 제2차 혁명을 통해 중국에서 독립하였다. 한편, 내몽골은 중국에 속한 처지(내몽골 자치구)가 되었다.

외몽골은 1924년부터 1991년까지는 소련의 지원을 받는 공산주의 국가였으나,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는 총리와 대통령이 권한을 분권한 이원집정부제의 민주국가가 되었다.

남자들은 1년간 의무 복무하도록 되어 있으나, 예외를 많이 인정하여 실제 복무하는 군인 및 전투경찰 등은 약 4만 여명이다.

몽골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방문하면 의례적으로 방문하는 곳이 자이승 승전탑이다. 자이승 승전탑은 세계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과 몽골 연합군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1971년 울란바토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세워졌다. 전망대 역할도 한다.

자이승 승전탑

몽골은 소련을 형제의 국가라 한다. 승전탑 안쪽에는 모자이크 타일로 소련과 몽골의 근현대사적인 관계, 양국간의 스토리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전망대 내부

모자이크 타일 작품 중에는 소련과 더불어 몽골인 중에서 최초의 우주인이 된 인물도 묘사되어 있다.

자이승 전승탑 내부. 몽골인 중에서 최초의 우주인이 된 인물

자이승 전망대에 오르면 시원하게 펼쳐지는 울란바토르 시내와 톨강의 전경이 보인다. 소박한 수도의 모습이다. 현재 많은 아파트 등 건설현장이 보인다. 이곳도 10년 내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자이승 전망대에서 본 울란바토르 시내

칭기스칸 국제공항에서 내려 울란바토르를 통과하면서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하여 마트에 들렀다. 우리나라 제품도 많이 보여 반가웠다. 

울란바토르에 있는 창고형 마트

몽골의 공식화폐는 '투그릭'이다. 몽골의 동전은 낮은 가치로 더 이상 유통되지 않고, 관광객들에게 수집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1차 숙소인 바앙척트캠프로 이동 중에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하였다. 자동차 운전은 아주 거칠고, 신호등 및 중앙선 등도 의미가 없었다.

이동 중 교통사고 현장

과거 말을 몰던 습성이 자동차 운전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도로가 아닌 곳도 아무런 꺼리낌없이 달렸다. 

말, 양, 염소 등이 서로 뒤엉쿼 있다. 곧 이들은 먹거리를 찾아 초원을 헤멜 것이다. 

이른 아침 풀밭으로 이동하는 모습

매년 여름에 열리는 몽골의 나담축제 기간. 후이덜렁호닥 초원에서 열리는 승마 경기장 근처에서 경찰이 사람과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초원에서 사람과 차량을 통제하는 있는 경찰

언어는 몽골어를 사용하고 있고, 종교는 불교신자가 전국의 50% 이상이다.

몽골 최대 사원인 간단사의 26미터 높이 관세음보살상

불교가 국교화 된 것은 칭기스칸의 손자로 원제국을 세운 쿠빌라이 칸 때부터였다. 1924년 공산주의 국가가 되면서 몽골의 불교는 암흑기를 맞이한다. '인민의 아편'으로 간주된 것이다. 1990년대 소련이 붕괴되면서 몽골에서도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고 불교가 국교처럼 존중되었다.

테를지 국립공원 내에 있는 아리야발 사원

현재 몽골불교는 티베트 불교의 영향으로 달라이라마('지혜의 바다'라는 의미)를 여려 차례 초청해 대규모 법회를 열고 개별 가정에서도 달라이라마의 사진이나 조형물을 모셔 놓는 경우가 많다.

몽골에 가면 여행 중 반드시 만나게 되는 돌무더기 같은 것이 있다. 몽골 어워(ovoo)다. 큰 규모부터 작은 규모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우리나라 성황당과 같은 샤머니즘의 한 유형이다. 길을 가다 어워를 만나면 몽골인들은 시계방향으로 세 바퀴 돌고 돌(소망)·돈(부)·자동차 운전대(안전)·목발(건강) 등을 올려놓고 소원을 빈다. 이는 자연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는 행위이다.

몽골 어워

몽골의 음식은 고기류와 우유가 주종이다. 고기는 고기만두나 수프로 먹고, 우유는 치즈나 크림으로 만들어 먹는다. 

바양척트 캠프에서 먹은 점심 메뉴 일부

몽골 음식은 동물성 지방이 많다. 과거에는 지방성분의 섭취가 유목생활을 하며 추운 겨울을 버티는 역할을 하였으나, 요즘은 활동량이 줄어들고 주거환경 좋아지고 있어 우리나라 거리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많은 뚱뚱한 남녀를 볼 수 있다. 매일 마시는 음료로는 ‘우유가 든 차’라는 뜻인 수태차가 있으며, 소련의 영향으로 많은 종류의 보드카가 대중적으로 애용되고 있다.

관광객에게 제공되는 특식이로 허르혹(Horhog)이라는 찜요리가 있다. 이는 큰 찜통에 차돌을 놓고 큰 덩어리로 뼈째 썰은 양고기와 감자 등의 채소를 약간의 간을 한 상태로 찐 것으로 조리시간이 4~5시간이 걸리는 귀한 음식이다.

몽골의 전통집은 게르이다. 게르는 쉽게 분리하여 옮길 수 있다. 몽골의 척박한 기후 및 유목생활에 적합하다. 

게르의 모습

과거에는 귀족들이 사용한 것으로 바퀴가 달린 거대한 수레위에 대형 게르를 설치해 22마리의 소가 끄는 것도 있었다.

바양고비캠프 내에 있는 대형 게르의 모습(우측에 있는 게르)

게르 중앙에 있는 난로는 몽골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게르내부를 따뜻하게 하는 수단이외에 조상과의 유대를 상징한다. 몽골인은 난로를 신성시하지 않으면 주인에 대한 모독이며 죄를 범하는 것으로 본다. 난로에는 요리도 할 수 있다. 

게르 내부 모습

연료로 나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초원지대 등에서는 가축의 배설물을 말려 사용한다.

게르 내에서 연료로 사용하는 가축의 배설물

하지만 울란바토르 등의 도시에서는 현대식 주거에 의하여 게르의 지위는 점점 상실되고 있다.

몽골의 전통악기 중에 대표적인 것이 마두금(馬頭琴)이다. 마두금은 몽골어로 '모린 호르'라 하는데 모린은 '말'을 호르는 '음악'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해금과 비슷한 것으로 현(줄)을 활로 마찰시켜 소리를 내는 악기(찰현악기)이다. 악기 머리 부분에 말머리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마두금에는 2개의 현이 있다. 하나는 숫말의 말총(말고리털) 130개 가닥으로 만들고 다른 하나는 암말의 말총 105개 가닥으로 만든다. 현을 켜는 활도 백마의 말총으로 만든다.

전통악기인 마두금

태를지 국립공원 근처인 바양하드캠프에서 만난 몽골 대학생들이 있다. 방학기간 동안 학비를 벌기 위해 주간에는 허드렛일을 하고 야간에는 몽골 전통공연을 하는 종합예술대 학생들이다. 전통 학기인 마두금, 전통 노래와 춤을 공연하는 젊은이의 모습이 신선했다.

죄측 학생은 몽골 전통 노래 담당, 중간 학생들은 전통악기를 연주하고, 가장 우측 여학생은 전통춤을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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