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마을 이야기 열 번째】

Ⅹ. 행신동(幸信洞)

행신동은 고양시 중심에서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 행신1동, 행신2동, 행신3동으로 나뉘어져 있다. 행신1동과 행신3동은 행정동과 법정동이 같으며, 행신2동은 행신2동과 강매동을 법정동으로 관할하고 있다.
행신동은 서울과 가까운 위치에 있고, 행신역과 중앙로 및 수색과 일산으로 연결된 승전로가 지나고 있어 많은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이다.

행신동은 행신1,2,3동과 강매동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1. 행신동 현황

2. 마을의 변천사
▲행신1동
고양군 구지도면 동행신리 > 고양군 지도면 행신리 > 고양군 지도읍 행신리 > 고양시 덕양구 행신1동
▲행신2동
고양군 구지도면 서행신리 > 고양군 지도면 행신리 > 고양군 지도읍 행신리 > 고양시 덕양구 행신2동
▲강매동
고양군 구지도면 강고산리 > 고양군 지도면 강매리 > 고양군 지도읍 강매리 > 고양시 덕양구 강매동
▲행신3동
고양군 구지도면 가라산리 > 고양군 지도면 행신리 > 고양군 지도읍 행신리 > 고양시 덕양구 행신1동 > 고양시 덕양구 행신3동

행신1동 주민센터 전경
행신2동 주민센터 전경
행신3동 주민센터 전경

3. 마을지명 유래
(1) 행신동(幸信洞)

행신이란 지명의 유례는 크게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첫 번째는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 청주 한씨 후손들이 이 곳에 묘 자리를 쓰면서 살게 되었는데, 이 곳에 머물러 사는 것을 '다행(幸)'으로 생각하고, 서로 '믿으면서(信)' 살라는 의미에서 '행신(幸信)'이라 하였다고 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행주(幸州) 지역에 새롭게 생긴 마을이라고 해서 '행신(幸新)'으로 불리다가 후대에 '행신(幸信)'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행신역은 행신동을 대표하는 고속철역(KTX)과 전철역이다.

행신동은 고양시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마을이다. 1980년 초까지는 대표적인 농촌마을이었지만, 이후 햇빛마을, 샘터마을, 무원마을, 소만마을로 새롭게 구획되면서 아파트 단지화가 되었다. 행신동은 농촌마을과 아파트∙빌라 등의 주택이 어우러져 있으며, 지명유래는 다음과 같다.

▲성신마을 : 행신동이 개발되기 이전 마을의 이름으로 야산이 있었던 곳이었으나, 1970년대 중반 '새롭게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하여 한자 음을 사용하여 성신(成新)마을이라 불렀다고 한다.
▲소만마을 : '작은 마을에서 큰 마을로 발전'한다는 의미로 붙여진 마을 이름으로 반달이 조금씩 보름달로 커 가듯이 마을도 후대에 크게 발전하고 번성하기를 바라는 마을 주민들의 소원이 담겨져 있는 지명이다.

마을이 번성하기를 바라는 주민들의 염원이 담긴 소만마을

▲샘터마을 : 샘터라는 지명은 이 곳에 인근에서 유명한 샘이 있어서 샘터라 불려졌다는 설과 샘처럼 마르지 않고, 마을이 번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샘터마을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인근에서 유명한 샘이 있어서 붙여진 샘터마을

 ▲무원마을 : 마을이 번성하고 사람들이 많이 살기를 바라는 주민들의 바람에서 붙여진 지명으로 '우거질 무(茂)'자와 '고을 원(院)'자를 써서 무원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많은 아파트와 집들이 모여 있는 무원마을

▲차장(遮帳)말 : 장차 마을이 크게 번성해진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장고뫼 : 마을의 생김새가 마치 전통악기인 '장고'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번데뫼 : 이 마을은 예전부터 논과 밭이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의미로 '논이 많은 산 아래 마을'이라는 의미로 번데뫼마을이라 불려졌다고 한다.

(2) 강매동(江梅洞)
강매동은 동남쪽으로는 창릉천이 흐르는 넓은 들판이 있고, 강고산(江古山)과 봉화산 아래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강매동이란 지명은 강고산의 '강(江)'자와 매화정마을의 '매(梅)'를 따서 '강매동(江梅洞)'이라 하였다.

강매동 지명의 유례가 된 강고산

강매동의 자연촌락에는 매화정, 은행정, 강고산 등이 있으며, 햇빛마을, 가라뫼마을, 서두물마을과 강고산, 안산, 봉대산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지명의 유례는 다음과 같다.
▲매화정 : 이 마을이 경치가 아름답고, 이곳에 매화꽃이 유명한 매화정 정자가 있어 마을 이름을 매화정이라 불렀다고 한다.

매화정 마을 입구에 있는 나무 현판

▲은행정 : 예전에 이 마을에 은행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강고산(江古山) : 한강에 제방이 쌓이기 전 이 마을 앞까지 한강 물이 들어와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예전에 해포나루가 있던 곳으로 '한강 입구의 오래된 마을'이란 의미에서 강구산(江口山)으로 부르기도 한다.
▲안산(雁山) : 고려 말 태조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던 중 삼송리 숯돌고개에 이르렀을 때, 기러기 한 마리가 갑옷에 변을 보고 날아가는 것을 활로 쏘아 떨어뜨렸다. 그 기러기가 떨어진 지점이 작은 동산이었고, 이러한 연유로 '기러기 안(雁)'자를 써서 안산이라 불려졌다고 한다.
▲봉대산(烽臺山) : 강매동의 주산이며, 산 정상에 봉수대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조 기록에는 '해포(醢浦) 봉수대'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봉의 봉화를 받아서 봉대산 봉화를 거쳐 안산 봉화로 연결됐다고 한다.
▲햇빛마을 : '햇빛이 따뜻하게 내려와 살기 좋은 마을'이라는 뜻으로 본래 성신새마을이라는 곳이었으며, 1990년대 초에 마을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아파트 마을로 발전하였다.

햇빛이 내려와 살기 좋은 햇빛마을

▲서정마을 : 본래 서두물이란 농촌마을이었으나, 그린벨트 지역이 해제되면서 개발된 마을이다. 서정(西井)은 서두물마을로 불리던 것을 한자로 옮긴 지명으로 '서쪽에 있는 으뜸 우물'이란 뜻이 있다.

서두물을 한자로 옮긴 서정마을

▲가라뫼마을 : 가라뫼는 성라산(星羅山)이 한강 방향으로 길게 이어졌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강(江)의 옛말인 '가람'과 산이 합쳐져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빌라와 단독주택 등이 자리잡은 가라뫼마을

4. 마을의 명소
(1) 류형장군 묘

류형의 자는 사온(士瑥), 호는 석담(石潭), 본관은 진주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김천일과 강화도에서 활동하다가 의주 행재소에 가서 선전관에 임명되었다. 선조 27년(1594) 무과에 급제하였고, 노량해전에서 적탄에 맞아 부상을 당하였지만, 전투에서 전사한 이순신 장군을 대신하여 전투를 지휘했으며, 그 공으로 부산진첨절제사로 발탁되었다. 선조 32년(1602) 이순신 장군의 뒤를 이어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시호는 충경(忠景)이며 해남 민충사에 제향되었다.

류형장군 묘 앞에 있는 신도비

 

류형장군 묘 앞에는 부인 완산이씨 묘가 있다.
류형 장군 묘
류형장군 묘가 마을을 바라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

▲지정번호 : 경기도 기념물 제50호
▲찾아가는 길 : 고양시 덕양구 덕양구 행신동 698 (행신1호 공원 내)

(2) 진주 류씨 묘역
경기도 덕양구 행신동 산106-8에는 진주 류씨 묘역이 있다. ▲류구 선생 묘 ▲류겸 선생 묘 ▲류진동 선생 묘 ▲류형 장군 묘 ▲류림 선생 묘가 자리하고 있으며, 모두 고향시 향토유적 또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류형 장군 묘와 맞은 편에 위치해 있으며, 마을에서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대로변에 있다.
 

묘역 입구에서는 진주 류씨 묘역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다.
진주 류씨 묘역 입구
묘역 전경
류진동 선생 신도비와 류림 선생 신도비가 모셔진 보호각
묘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닫혀 있어서 외부에서 촬영한 모습
진주 류씨 묘역임을 알려주는 앞 뜰에 있는 비석

▲지정번호 : 류구선생 묘(고양시 향토유적 제 30호), 류겸선생 묘(고양시 향토유적 제 31호), 류진동선생 묘(고양시 향토유적 제 28호), 류형장군 묘(경기도 기념물 제 50호), 류림선생 묘(고양시 향토유적 제 29호) _ <기입 순서 = 출생일 기준>
▲찾아가는 길 : 경기도 덕양구 행신동 산106-8 (대로변에 위치)

(3) 강매동 석교
강고산 마을 창릉천 위에 있는 강매동 석교는 본래 일산, 지도, 송포 지역 등 한강 연안의 서부지역 사람들이 서울을 오가던 교통로로 이용된 곳이다. 이 다리를 이용해 각종 농산물, 땔감 등을 현천동, 수색 모래내를 거쳐 서울에 내다 팔았다.
이 다리에 관한 기록은 1755년 영조 연강에 발간된 '고양군지'에 보이는데, 당시에는 '해포교(醢浦橋)'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보이는 해포교는 오늘날의 석교가 아닌 목교였다. 석교 중간 부분에는 '강매리교 경신신조 (江梅里橋庚申新造)'라 음각된 다리 건립연대 기록이 있는데, 이를 통해 1920년대 다리를 신축한 것을 알 수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다리 옆에 오석으로 만든 비석에 기록하였으나, 6.25 당시 총격으로 일부 훼손된 후 현재는 도로에 묻혀 그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축조 연대에 있어 과히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조선조 전통적인 교량축조 방법의 맥을 잇고 있으며, 고양시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다리라는 의미에서 그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강매동 석교로 가는 길은 강매동 배수펌프장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들어간다.
좁은 길로 20여 미터 들어가면 강매동 석교가 보인다.
정면에서 바라본 강매동 석교
뒤에서 바라본 모습
강매동 석교 근경
강매동 석교에서 노닐고 있는 두루미 한 마리

▲지정번호 : 고양시 향토문화제 제33호
▲찾아가는 길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강매동 660-10

5. 현대의 행신동
 

현재의 행신1동과 행신3동의 모습(중앙로)
행신동에 있는 고양시 여성회관

현대의 행신동은 고양시 교통의 요지로 발전하고 있는 마을이다. 고속철(KTX)이 출발하는 행신역이 있으며, 인천공항으로 연결되는 고속도로와 승전로, 경의선 등 편리한 교통망을 가지고있어 수도권 지역과 교통의 접근성이 매우 뛰어난 지역이다.  또한 고양시 덕양구의 서쪽 지역을 대표하는 마을로 자연을 간직한 농촌마을과 고층 아파트, 상가, 빌라 및 단독주택이 다양하게 어우러진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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