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마을 이야기 아홉 번째】

Ⅸ. 창릉동(昌陵洞)

창릉동은 고양시의 동쪽에 있는 마을로 서울시 은평구와 매봉을 사이에 두고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창릉천을 경계로 삼송동, 흥도동과 접해 있는 마을이다. 또한 국도 1호선, 지방도 310호선, 시도 55호선 등 동서남북으로 관통하는 주요 도로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창릉동은 고양시 주요 도로의 중심부에 위치한 마을이다.

1. 창릉동 현황
▲행정동 : 창릉동
▲법정동 : 동산동, 용두동 / 13통 70반
▲면적 : 11.57㎢
▲인구 :  13,279명 / 5,210세대 (2017년 7월 11일 기준)
▲주민센터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대로 1988

2. 마을의 변천사
▲고양군 하도면 동산리 >고양군 신도면 동산리 > 고양군 신도읍 동산리 > 고양군 덕양구 동산동
▲고양군 하도면 용두리 > 고양군 신도면 용두리 >고양군 신도읍 용두리 > 고양군 덕양구 용두동

현) 창릉동 주민센터는 간이 건물 형태로 사용하고 있다.
2017년 10월(예정)부터는 새로운 창릉동 주민센터를 만나 볼 수 있다.

3. 마을지명 유래
(1) 창릉동(昌陵洞)

창릉동은 1992년 고양시 승격 후 생긴 행정동의 명칭으로 창릉의 유례는 마을에 조선조 예종과 그의 왕비인 안순왕후 한씨의 능인 창릉이 있어 이곳을 창릉으로 부르게 되었다. 또한 이 능의 명칭에 따라 마을 앞에 흐르는 덕수천도 창릉천으로 바뀌었다.

마을 명칭이 창릉이 되면서 덕수천의 명칭도 창릉천으로 바뀌었다.

(2) 동산동(東山洞)
'
동쪽 산에 있는 마을'이란 뜻을 가진 동산동은 지명이 생길 당시 고양군청의 위치가 옛 벽제 지역인 고양동에 있었으며, 고양군청에서 볼 때 고양시 동쪽 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밥할머니 석상과 비석군이 있는 동산동

동산동의 자연촌락에는 길(창릉)모퉁이, 응달말, 걱정머리, 큰골, 황새말 등이 있으며 지명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길(창릉)모퉁이 : 서오릉 창릉으로 가는 길 모퉁이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창릉으로 가는 모퉁이에 있는 길 모퉁이 마을

▲응달말 : 그늘이 져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걱정머리 : 여름이면 많은 비가 내려 홍수가 자주 발생하여 논밭이 물에 잠겨 주민들이 걱정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큰골 : 동산동의 대표적인 마을로 마을에 자리잡은 골짜기가 매봉 안쪽까지 길고 크게 들어서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큰골마을 입구에 있는 마을 비석

▲황새말 :  이 마을에 웅덩이가 있어 황새가 많이 날아와 머물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황새말 마을은 현재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2) 용두동(龍頭洞)
흔히 '용머리 마을'이라고 부르는 용두동은 마을에 서오릉이 생기면서 붙여진 지명이다. 경릉인 세조의 큰 아들 덕종 세자의 묘자리가 풍수지리상 마치 용의 머리 형태의 명당이라고 하여 용두(龍頭)라고 불렸다고 한다. 특히 용두의 형상은 용이 물을 마시려는 모습으로 한강을 향해 내달리는 모습이라고 한다. 참고로 서오릉은 용의 머리 부분, 대자동은 용의 배 부분, 파주 광탄은 용의 꼬리로 보아 각각 용두동, 용복원, 용미리로 불리기도 한다.

용두동의 자연촌락에는 우묵골, 벌고개, 능말, 운하리 등이 있으며 지명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우묵골 : 마을 모양이 우묵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벌고개 : 벌고개라 불려진 이유는 서오릉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왕릉 자리를 찾기 위해 한양에서 유명한 지관(地官)이 내려왔고, 용두동 일대를 왕릉으로 하기에 좋은 장소라고 왕에게 추천하였다. 지관은 자리를 잡으면서 한 가지 조건을 붙였는데, 그것은 자신이 이곳을 떠난 지 한 시간 후에 땅을 파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인부들은 지관의 말대로 땅을 파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검은 비구름이 몰려오자 서둘러 일을 끝내기 위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이 때 땅에서 검은 땅벌들이 날아오르면서 인부들을 공격했고, 한양으로 가던 지관에게 날아가 침을 쏘았다. 결국 지관은 고개를 넘지 못하고 죽고 말았고, 그 때부터 이 고개를 벌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벌고개 도로 옆에 있는 지명과 관련된 안내판

▲능말 : 서오릉 주변 마을 중에서 능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오릉에서 가장 가까운 능말

▲운하리 : 이 마을이 있는 곳이 망월산과 창릉천이 있어 구름과 안개가 자주 내려와 앉아 밖에서 볼 때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4. 마을의 명소
(1) 밥할머니 석상
1592년 임진왜란 때 북한산 부근의 대부호 문씨 집안에는 총명한 며느리로 이름난 여장부 해주 오씨가 있었다. 조∙명 연합군이 북한산에서 왜군에 포위됐을 때 그녀는 북한산 봉우리를 볏짚으로 감싸 군량미를 쌓은 노적가리처럼 위장하고, 냇물에 석회가루를 풀어 흘려 보낸 후, 왜군들에게 ‘조선군 주둔지에는 산더미 같은 군량미가 쌓여있는데, 이 뿌연 물은 북한산에 주둔한 수 만명 군사의 밥 짓는 쌀뜨물이다.’고 속여 왜군들이 허기진 배를 석회물로 채우게 하고, 복통 설사를 일으켜 사기를 꺾어 퇴각시키는 지혜를 발휘하였다. 그 후에 오씨는 인근의 부녀자들을 모아 여성의병대를 조직하고 전쟁에서 군인들에게 밥을 지어주고, 부상병을 치료하였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오씨를 밥할머니라 불렀다.
이 싸움 후에 할머니의 활동을 전해 들은 왕이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석상을 만들게 하였다. 이 석상에는 머리 부분이 없는데, 이것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본에 의해 목이 떨어지는 수난을 당해서이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이 머리 부분을 새로 만들어 드리면 자꾸 마을에 좋지 않은 일들이 생겨서 그대로 모시고 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여성의병장으로 활약했던 밥할머니를 기리기 위한 석상
밥할머니 석상 이전 기념비

▲지정번호 :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 46호
▲찾아가는 길 : 고양시 덕양구 동산동 밥할머니 공원 내(삼송동 농협하나로마트 인근)

(2) 서오릉
서오릉은 조선왕조의 다섯 능 즉 경릉(敬陵,덕종과 소혜왕후의 능), 창릉(昌陵,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능), 익릉(翼陵, 숙종의 원비인 인경왕후의 능), 명릉(明陵, 숙종과 인현왕후, 인원왕후의 능), 홍릉(弘陵, 정성왕후의 능)이 이곳에 모여 있어서 일컫는 명칭이다. 서오릉 지역이 왕실묘역으로 선택된 이유는 세조 3년(1457)에 세자 장(덕종)이 사망하자, 풍수지리설에 의해 경릉을 쓰면서 부터다. 서오릉에는 이 5개의 능 외에도 조선왕조 최초의 ‘원’으로 명종의 첫째 아들인 순회세자의 무덤인 순창원과 숙종의 후궁으로 많은 역사적 일화를 남긴 희빈 장씨의 대빈묘가 있다. 서오릉은 구리 동구릉 다음으로 큰 면적의 조선왕조 왕실의 가족 무덤이다. <고양시 문화관광 인용>

▲경릉 : 제7대 세조의 맏아들과 소혜왕후 한씨를 모신 동원이강릉
▲창릉 : 제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한씨를 모신 동원이강릉
▲익릉 : 제19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김씨를 모신 단릉
▲명릉 : 제19대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민씨를 모신 쌍릉과 둘째 계비 인원왕후 김씨의 단릉
▲홍릉 : 제21대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 서씨의 쌍릉형 단릉
▲순창원 : 13대 명종의 아들 순회세자와 공희빈 윤씨의 원
▲수경원 : 제21대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의 원
▲대빈묘 : 제19대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모후인 희빈 장씨의 묘
※동원이강릉이란? 서로 다른 언덕에 왕과 왕비를 모시고 두 능침의 중간지점에 하나의 정자각을 둔 왕릉 형식
※신분에 따른 왕실 무덤의 분류 : 【능(陵) : 왕과 왕후, 황제와 황후의 무덤 / 원(園) : 왕의 사친과 왕세자ㆍ왕세자빈, 황태자ㆍ황태자비의 무덤 / 묘(墓) : 폐위된 왕, 그 외 왕족과 일반인의 무덤

서오릉 입구에 있는 유네스코 등재 비석
서오릉 '조선왕릉 역사문화관'에서는 조선왕릉에 대한 자료를 눈과 귀 그리고 가상 체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서오릉 안내도
경릉 전경 <사진=문화재청>
경릉 왕후릉 후경 <사진=문화재청>
창릉 전경 <사진=문화재청>
창릉 근경 <사진=문화재청>
익릉 전경 <사진=문화재청>
익릉 근경 <사진=문화재청>
명릉_숙종릉, 인현왕후릉 전경 <사진=문화재청>
홍릉 근경 <사진=문화재청>

▲문화재 지정번호 : 사적 제 198호 / 2009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찾아가는 길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92

(3) 동산동 비석군
동산동에 비석군에 있는 비석들은 350년 전 고양 지역의 인물과 역사적 상황, 주요 유적, 도로의 현황등을 알 수 있고, 특히 한문과 이두표기의 기록이 많아 고양 지역의 향토사 연구 및 국문학적으로도 그 가치가 인정되어 보호하고 있는 곳이다.

▲방백 오후정일 청덕 휼민 선정비(方伯 吳侯挺一 淸德 恤民 善政碑) : 이 비석은 서기 1660년 고양군 덕수천(현재의 창릉천)에 새롭게 석교(돌다리)를 만들면서 당시 경기도 관찰사인 오정일(吳挺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앞면과 뒷면에 비문이 잘 남아 있어 건립 연도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고양 덕수 자씨 교비명(高陽 德水 慈氏 橋碑銘) : 비석은 조선 현종1년(1660)에 조선남(趙善男)과 고양지역의 주민들이 서로 힘을 모아 덕수천(현 창릉천)에 돌다리를 만들고 그 내력을 상세히 적은 것이다. 비문에 의하면 석교를 만들어 홍수에 대비하고 임금과 백성들을 편안히 다닐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있어 축조 목적을 알 수 있다. 비의 앞․뒷면에는 약 800명의 사람 이름이 이두문자(吏讀文字)로 적혀 있어 학술적․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고양군수 엄찬 선정비 : 엄찬은 조선 숙종 16년(1690) 12월 22일부터 숙종 17년 11월 2일까지 고양군수를 지낸 인물이다. 이 비석은 당시 군수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화강석 비문이며, 엄찬 군수는 충주목사로 자리를 옮겼다.

동산동 비석군
동산동 비석군은 밥할머니 석상과 함께 밥할머니 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지정번호 :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 47호
▲찾아가는 길 : 고양시 덕양구 동산동 밥할머니 공원 내

(4) 용두동 회화나무(보호수)
콩과에 속하는 이 나무는 껍질이 가늘게 갈라져 있으며, 얼마 전까지 동공이 있었으나 보존처리를 하여 보호하고 있다. 나뭇잎 끝부분에 강낭콩과 같은 큰 열매가 달려 있는데 봄철에 마치 흰눈과 같은 꽃이 아름답게 핀다고 한다.

봄철에 흰눈과 같이 꽃이 핀다는 회화나무

▲보호수 지정번호 : 경기-고양-22
▲수령 : 250년 / 높이 : 15m / 나무둘레 : 2.6m
▲찾아가는 길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330-1

5. 현대의 창릉동

높은 아파트와 빌라, 상가 등으로 개발되고 있는 창릉동

창릉동은 고양시의 동쪽 관문으로 국도 1호선, 지방동 310호선, 시도 55호선 등 동서남북으로 관통하는 주요 도로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농촌지역이 대부분인 마을이었으나, 삼송택지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대규모 고층아파트와 상가 등 쾌적한 첨단 도시로 발전하고 있으며, 서오릉과 밥할머니 석상 등 전통 문화가 함께 숨쉬고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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