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마을 이야기 다섯 번째】

Ⅴ. 성사동(星沙洞)

성사동은 고양시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써 두 개의 행정동(성사1동과 성사2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에는 고양대로, 충장로, 덕양대로 및 지하철 3호선인 원당역이 있어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성사동은 고양시 중심부에 위치하며,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1. 성사동 현황

2. 마을의 변천사
▲성사1동
고양군 원당면 이패리 > 고양군 원당면 성사리 >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 성사1동

▲성사2동
고양군 원당면 이패리 > 고양군 원당면 성사리 >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 고양시 덕양구 성사2동

성사1동 주민센터 전경
성사2동 주민센터 전경

3. 마을지명 유래
성사동(星沙洞)

성사동의 지명유래는 일제시대인 1912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이 지역의 대표 마을이었던 ‘성라산촌(星羅山村)’과 ‘사근사리(沙斤寺里)’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사용하게 되었다. 또한 성라산에 올라가 별을 바라보면 하늘에 있는 별들이 모래같이 보인다고 하여 ‘별 星(성)’과 ‘모래 沙(사)’자를 쓴 이름이라고도 한다.

‘고양군지’에는 이잉곡, 사근사촌(沙斤寺村), 성라산촌(星羅山村)에 총 103호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사동의 지명유래가 된 성라산
성사동 지명의 유래가 된 사근절마을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마치 비단과 같이 많은 별들이 하늘에 펼쳐져 있는 곳'이라고 하여 성라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관청의 주관으로 성라산 정상에서 나라와 왕의 안녕을 비는 큰 제사를 지냈는데, 이로 인하여 성라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국사봉이라고 부르게 됐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자료 = 국립중앙도서관>

성사동의 자연촌락에는 수역이마을, 윗배다리마을, 불당골, 신원당 등이 있으며 지명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수역이 마을 : 물이 좋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자연환경으로 장수(長壽)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수역(壽域)이라 하였다. 또한 물이 많은 지역이라는 뜻에서 수역(水域)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며, 실제로 시청 앞을 지나 한강까지 흐르는 대장천의 발원지가 되는 곳이다. 수역이를 줄여서 '쇄기' 또는 '쇠기'라 부르기도 한다.

물이 많고, 뛰어난 자연환경으로 이름 붙여진 수역이마을

▲윗배다리 마을: 주교동 배다리마을의 위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앞에는 교외선 철도가 지나며, 북쪽에는 백석봉이 있는 농촌마을이다.

▲불당골 : 예전에 마을에 명성이 대단했던 큰 절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절에 빈대가 너무 많아 절이 점점 삭아 없어지게 되었고, 그 연유로 절의 이름을 '삭은절'이라 부르기도 했다.

▲신원당 : '원당 지역에 새롭게 만들어진 마을'이란 뜻으로 신원당(新元堂)으로 불리웠던 마을이다. 2000년대 이후 마을에 어울림누리가 유명해지면서 지금은 '어울림마을'로 부르고 있다.

신원당 마을은 어울림누리가 유명해지면서 어울림마을로 불려지고 있다.

4. 마을의 명소
(1) 익령군 이치묘
익령군(1422~1464)은 태종의 여덟 번째 아들로 시호는 소강공(昭剛公)이다. 1422년(세종 4) 태종의 후궁인 선빈 안씨에게서 유복자로 태어났으며, 평소 성품이 어질고 겸손했으며, 학행이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1623년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의 중심 인물이었던 완평부원군 이원익(李元翼)의 4대조이며, 1464년 4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익령군 이치묘는 성사동 오리골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묘 뒤에는 청송박씨의 묘가 있다.

원당역에서 서오릉으로 가는 도로의 왼쪽에 묘소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익령군 이치묘에는 묘비, 혼유석, 묘표, 상석, 장명등, 문인석 한쌍이 있다.
익령군 이치묘 뒤에는 부인 청송박씨의 묘가 있다.

▲지정번호 :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 44호
▲찾아가는 길 : 경기도 고양시 성사동 3-5

(2) 권희선생 묘
권희선생은 고려말~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충숙왕 6년(1319)에 출생하여 조선 태종 5년(1405)에 사망하였다. 본관은 안동으로 조선조 전기의 대학자이며 정치가인 양촌 근의 부친(父親)이다. 음보로 관직에 기용되어 홍주도병마사, 판서 등 여러 벼슬을 거쳐 문하찬성사에 이르러 영가군에 봉해졌고, 고려말에는 개성을 침략한 홍건족을 무찔러 서울을 탈환한 선봉장이었다. 조선조에 들어와 태조 2년(1393) 검교문하시중으로 개국원종공신이 되었다. 묘는 성사동 불당골마을에 진한국대부인 한씨와 합장 묘로 이루어져 있다.

'고양대로 1432번길 84-8'로 찾아가면 왼편에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권희선생은 진한국대부인 한씨와 합장 묘로 이루어져 있다.
측면에서 본 권희선생 묘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38호
▲찾아가는 길 : 경기도 고양시 고양대로 1432번길 84-8 (해당 주소지를 왼쪽에 두고 돌아가면 선생묘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3) 기응세선생 묘
기응세선생은(1539~1585)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행주이고, 고양8현(高陽八賢)의 한 사람인 복재(服齋) 기준(奇遵)의 손자이며 한성부판윤을 지낸 기대항(奇大恒)의 아들이다. 평소 효심이 뛰어나 선조 때 정려(旌閭)를 받았고, 삼강록(三綱錄)에 수록되었다고 한다. 묘는 사근절 마을에 있으며 부인 선산 임씨의 묘와 쌍분으로 되어 있다. 특히 조선시대 명필 한석봉과 중국의 명필 주진번(朱之蕃)이 글씨를 쓴 묘비로도 알려져 있다.

사근절마을에 있는 기응세 선생 묘
기응세 선생 첫 번째 묘비는 1586년(선조19)에 세운 것으로 한호(한석봉)이 글씨를 썼다고 한다.
두 번째 묘비는 1606년(선조39)에 세운 것으로 중국의 명필 주지번(朱之蕃)이 글씨를 썼다.

▲지정번호 :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 23호
▲찾아가는 길 : 경기도 고양시 수역이길 119-29 (해당 주소지에서 20m 올라가면 된다.)

(4) 고양어울림누리
공연장과 문화예술 교육시설이 체육시설과 한데 어우러진 동양 최대의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클래식부터 대중음악, 연극, 무용,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소화할 수 있는 어울림극장(1,218석), 가족 어린이 중심의 공연이 선보여지는 별모래극장(362석), 체험 위주의 전시를 선보이는 어울림미술관, 폭넓은 예술교육강좌가 펼쳐지는 별따기배움터, 야외음악회와 연극 및 마당극이 가능한 꽃메야외 극장으로 구성된다. (고양문화재단 발췌)

고양어울림누리 전경 (자료 = 고양문화재단)

5. 현대의 성사동

성사동에 있는 지하철 3호선 원당역
하늘에서 본 성사동

성사동은 1994년 7월 1일 인구 증가와 지역 개발에 따라 성사1동과 성사2동으로 분동이 되었다. 성사1동은 고양시에서 처음으로 개발을 시작한 마을 중 한 곳으로 대부분 도시화가 된 마을로 아파트와 상가, 단독주택, 연립, 다세대 등 다양한 형태의 건물들로 형성되어 있는 마을이다. 또한 서울로 출퇴근하는 주민들이 많으며,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성사2동은 면적은 다른 마을에 비해 작은 마을이다. 원당지역의 새롭게 만들어진 마을이란 뜻에서 신원당으로 부르다가 지금은 어울림마을로 부르고 있다. 고양시 최초의 택지개발 지역으로 마을의 남서쪽에는 고양어울림누리가 있고, 동쪽으로는 의정부와 행주대교가 연결되는 충장로가 있다. 마을 대부분이 아파트로 구성되어 있어 젊은 층의 인구 비율이 높은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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