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마을 이야기 네 번째】

Ⅳ. 대덕동(大德洞)

대덕동은 고양시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행정동으로 서울시 마포구 상암지구와 한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지역이다. 법정동으로는 현천동, 덕은동과 화전동 일부를 관할하고 있다.

대덕동은 고양시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1. 대덕동 현황
▲행정동 : 대덕동
▲법정동 : 현천동, 덕은동∙화전동 일부 관할 / 8통 49반
▲인구 : 3,153명 / 1,559세대 (2017년 5월 말 기준)
▲면적 : 10.79㎢
▲주민센터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덕은로 60-22

2. 마을의 변천사
▲덕은동
고양군 하도면 덕은리 > 고양군 신도면 덕은리 > 고양군 화전출장소 덕은리 > 고양시 덕양구 대덕동

▲현천동
고양군 하도면 현천리 > 고양군 신도면 현천리 > 고양군 화전출장소 현천리 > 고양시 덕양구 대덕동

대덕동주민센터 전경

3. 마을지명 유래
(1) 대덕동(大德洞)

대덕의 지명 유래는 현천동과 대덕동 사이에 마을의 주산(主山)인 대덕산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대덕이란 이름은 이 마을에 행촌 민순 선생과 같은 큰 덕을 쌓으셨던 분들이 살았던 곳이라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대덕동 지명은 마을의 주산인 대덕산에서 유래가 됐다.

1992년 고양시 승격으로 덕은리와 현천리는 덕은동과 현천동이 되었으며, 이때 대덕동이 새롭게 설치되어 두 동을 관할하게 되었다.

(2) 현천동(玄川洞)
현천동의 지명은 조선시대에 이 마을에 살았던 행촌 민순 선생과 깊은 관련이 있다. 행촌 민순 선생은 고양 8현의 한 분이며 조선 유학자로 덕망 높았던 인물이다. 어릴 때부터 너무 가난했던 민순 선생은 열심히 글공부를 하였으나, 글씨를 쓸 종이가 없었다. 그래서 종이를 대신해서 근처에 있는 나뭇잎에 매일 글을 쓰면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밤낮없이 나뭇잎에 글씨를 써가며 공부를 했는데, 비가 오면 나뭇잎에 묻었던 먹물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면서 동네 개울을 검게 물들이게 되었다. 이러한 뜻으로 먹물이 흘러가는 마을(골짜기)이라 하여 가무내∙거무내∙먹골이라고 했으며, 한자로 검을 현과 내 천을 써서 현천(玄川)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가무내마을은 민순 선생이 가랑잎에 쓴 글씨(먹물)가 빗물에 씻겨 내려가면서 생긴 이름이다.

현천동의 자연촌락에는 난점, 먹골 등이 있으며, 부근 지역을 부르는 이름으로는 난골고개, 다락고개 등이 있다. 지명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난점 : 이 마을에서 난초(蘭草)가 많이 자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는 난전(蘭田)으로 불렸으며 난초와 주막이 많았다고 한다. 한강 물길을 이용해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난초의 사용처도 늘어나면서 마을 주민들이  난초를 이용한 전문적인 상점을 만들어 판매하면서 난점(蘭店)이 되었다.

마을에 난초가 많이 자란다고 하여 난점마을이 되었다.

▲먹골 : 민순 선생이 낙엽 위에 썼던 글씨(먹물)가 비가 내리면 흘러내리는 골짜기 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난골고개 : 짚신을 만들기 위해 골(짚신을 만드는 틀)을 사용하는데, 이 골을 만드는데 필요한 참나무나 오동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난점마을에 있는 골'이란 의미에서 난골이라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다락고개 : 예전에 이 고개는 대덕산 정기를 받아 힘이 센 장사들이 많이 나왔지만, 일제시대 때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산골짜기에 쇳물을 붙고, 정상에는 큰 돌부리를 심었다고 한다. 이후 이 마을에는 장사들이 나오지 않게 되자 마을주민들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서 고개의 혈맥을 달아서라도(산맥을 이어서 정기를 묶어서라도) 정기를 되살린다는 의미에서 다락고개가 되었다.

(3) 덕은동(德隱洞)
덕은동의 지명유래는 조선시대 덕정 선생이 덕은리를 둘러싸고 있는 대덕산에 은둔해 살았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선생이 대덕산의 큰 은혜를 입고 살았기 때문에 생긴 지명이라는 설도 있다.

'고양군지'에 고양군 하도면 난지도리에 포함된 덕근리촌(德斤里村)으로 신초리촌과 함께 총 127호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마을에 한강제방이 쌓여지기 전까지는 난초와 갈대가 무성하였다고 한다.

한옥과 현대식 주택이 어우러져 있는 마을 모습

덕은동의 자연촌락으로는 대터, 원골, 샛말, 유가골, 산동네 등이 있으며 자연촌락 이름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대터 : 대터마을의 지명은 대덕산 아래 크고 좋은 터라는 의미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예전에는 이곳에서 대나무가 많이 자랐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원골 : 원골의 지명유래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첫 번째는 조선시대에 원골에 영의정을 지냈던 분의 묘소가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영의정 덕으로 이 마을 사람들이 잘못이 있어도 조금은 봐줬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온다. 다른 하나는 이 마을이 같은 덕은동에 있으면서도 대터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멀 원(遠)자를 써서 원골이 되었다고 한다.

1911년 조선지지자료에는 원골이 원(願)곡(谷)으로 기록되어 있다. <자료 = 국립중앙도서관>

▲샛말 : 마을과 마을 사이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유가골 : 조선시대 때 누각과 정자를 짓고 놀던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동네 : 마을의 위치가 망월산 위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4. 마을의 명소
(1) 민순 선생 묘 및 신도비(閔純 先生 墓 및 神道碑)

민순 선생(1519~1591)은 조선 중기의 학문이 높은 학자로서 자는 경초(景初), 호는 행촌(杏村)∙습정(習諪)이다. 고양8현(高陽八賢)의 한 사람으로서 1568년(선조 1) 효행으로 천거되어 효릉참봉(孝陵參奉)이 된 후 주부(主簿), 형조∙공조의 낭관, 토산현감, 수안군수(遂安郡守)에 이르러 벼슬에서 물러났다.

선조 8년(1575) 사헌부지평으로 다시 조정에 들었으나, 마침 인순왕후(仁順王后)의 상을 당하여 예관(禮官)들이 오모흑대(烏帽黑帶)로 상복을 정하자, 그는 송나라 효종(孝宗)의 백모3년(白帽三年)의 고제(古制)로 고쳐 준용할 것을 건의하여 실시하게 하였다. 그 뒤 용강(龍岡)군수·청풍(淸風)군수∙장령(掌令)∙공조정랑(工曹正郞) ∙예빈시정(禮賓寺正) ∙좌통례(左通禮)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고 향리인 고양에 돌아와 후진교육과 학문연구에만 전념했다. 저서에 『행촌집』이 있으며, 개성의 화곡서원(花谷書院), 고양의 문봉서원(文峯書院)에 제향되었다.

민순 선생 묘는 마을에서 눈에 잘 띄지 않으며, 집 사잇길로 올라가야 한다
사잇길로 20여 미터 올라가면 민순 선생 묘가 눈에 들어온다
민순 선생 묘는 평양조씨, 전주이씨와 함께 안장되었다.
측면에서 바라 본 민순 선생 묘

▲고양 8현 참고 :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사재(思齋) 김정국(金正國), 복재(服齋) 기준(奇遵), 추만(秋巒) 정지운(鄭之雲, 행촌(杏村) 민순(閔純), 모당(慕堂) 홍이상(洪履祥) , 석탄(石灘) 이신의(李愼儀), 만회(晩悔) 이유겸(李有謙)
▲지정번호 :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8호
▲찾아가는 길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덕로86번길 36-7(해당 주소지의 집과 집 사잇길로 올라가야 민순 선생 묘가 보인다.)

(2) 쌍굴
덕은동에 위치한 일명 토끼굴이라고도 불리는 두 개의 굴이다. 일제시대 때 일본의 기차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현재는 도로변 아래에 위치한 굴은 출입구를 막아놓은 상태이다.

일본 기차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쌍굴
아랫 쪽에 만들어진 다른 한 곳은 출입을 막아 둔 상태이다.

▲찾아가는 길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덕은동 20-1

(3) 덕은동 향나무(보호수)
덕은동에는 수령 400년 된 보호수인 향나무가 있으며, 이 나무는 6.25 때 마을 주민을 구한 나무로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때 전투기가 날아오는 것을 본 마을 사람이 사람들을 이끌고 이 향나무 아래로 도망쳤다고 한다. 이 나무는 한 쪽 나무가 땅에 닿도록 늘어져 있어 몸을 숨기기에 좋았다. 실제로 전투기가 폭격을 해서 마을을 쑥대밭이 되었지만, 이곳에 몸을 숨긴 마을 사람들은 무사했다고 한다.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은 이 향나무를 수호신목으로 여기며 정성껏 보살폈다.

6.25 전쟁 당시 마을 주민들이 향나무에 몸을 숨겨 폭격에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보호수 지정번호 : 경기-고양-11
▲찾아가는 길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덕은동 140

5. 현대의 대덕동

농촌마을의 모습을 간직한 대덕동은 도시생활에 지친 이들의 마음의 고향이 되고 있다.

대덕동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면서 오랫동안 각종 규제로 인하여 상가가 밀집된 곳이나 고층 아파트로 개발된 지역은 없으며, 예전 마을 모습을 간직한 곳이 많다. 또한 남서로는 자유로와 한강에 의해 막혀 있고 동으로는 군부대, 항공대, 경의선 철로 등이 지나고 있다. 최근 들어 조금씩 개발이 진행되고는 있지만, 교통과 생활여건이 조금은 불편한 마을이다.
총면적 10.79㎢의 마을 중심에는 해발 127m의 대덕산이 있고, 산기슭에서 내려다보는 한강의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 대덕산 주변으로 집성촌 형태의 전통이 살아있는 농촌을 이루고 있는 마을은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이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따뜻한 고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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