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남 사회복지법인 우림복지재단 대표이사

"대학가에 전도거부카드가 등장했다. 학내 거리나 강의실, 구내식당과 도서관 등에 나타나 ‘종교를 믿느냐’는 질문과 함께, 전도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카드를 보이면서 거부의사를 전달하겠다는 목적이다.... 서울대와 카이스트, 연세대 등 전국 14개 대학생 200여명의 모임인 ‘프리싱커스(Freethinkers)’는 전도거부카드를 만들어 이달 중 각 대학에 배포를 하겠다고 21일 밝혔다. 전도거부카드는 '저에겐 당신의 전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가 적힌 일종의 명함으로 4년 전 서울대와 카이스트 등 일부 대학에 등장한 적이 있다." (한국일보 170521)

거절하는 모습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한 때 유럽과 서구 사회를 휩쓸었던 '신은 죽었다'의 사신론(死神論)과 아예 신의 존재를 부인해버리는 무신론(無神論)에 이어, 1800년대 말 교회를 무시하면서 종교 문제를 합리적으로 고찰할 것을 주장하는 이른바 ‘자유사상(free  thought )’ 운동을 전개했던 ‘미국세속연맹(American  Secular  Union )’에 소속된 자유사상가(free  thinker )들의 영향력이 이제 바로 우리 코앞에 맞닥뜨려졌다.

바로 엊그제 이른바 프리싱커스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얼굴을 내밀고 기독교 반대의 기치를 든 것이다. 물론 그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표현방식이 기독교의 전도행위에 염증을 느껴, 그런 것일 뿐 기독교 전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기독교 전도행위를 혐오시하는 것은 기독교의 존재 의미를 부인하는 것과 같다. 기독교인의 사명 중 하나가 전도(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규정해 놓은 모든 규범의 경계선을 허물어버리겠다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과 같이 인간을 묶고 있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되기 위해 생각부터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이른바 프리싱커스(freethinkers 자유사상가들)의 외침과 기세가 급물결을 타고 대학가로부터 한국교회를 위협하고 있다.

이들의 이런 행위(전도거부카드 제작 및 배포)가 일반 개신교를 겨냥한다고 여기는 것은 불교나 천주교 등 타 종교에서는 전도가 소극적인 편이고, 유독 개신교만 열심을 다해 충성스럽게 전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일반 교회보다 기독교 이단(사이비)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전도활동을 벌이고 있기에 이런 오해가 가중될 수 있다.

솔직히 사람들이 교회가 너무 귀찮게 전도한다는 이야기 좀 듣고 싶다. 이제 한국 교회는 그토록 극성맞게(?) 여기던 전도열도 많이 식어졌기에 교회를 향한 그런 비난의 시선들이 오히려 감사하게 여겨지는 시점이니까!

그래도 한국사회에서 최고 지성을 자랑하는 서울대와 카이스트, 연세대 등을 중심으로 14개 대학생 200여 명의 모임으로 구성된 프리싱커스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왜 이런 운동을 벌이는지에 대해 묻진 않겠다.

이미 기독교인으로서 나 역시 그 원인은 대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말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이게 나라냐!'라고 외치는 국민의 함성에 대한 응답으로 요즘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나라를 나라답게'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것처럼, 세상은 작금의 한국 교회를 향해 '이게 교회냐!'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시점에 '교회를 교회답게'라는 말로 '이게 교회다!'라고 강력히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는 것에 대한 세상의 심판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교회가 세상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심판하는 위기의 시대에 한국 교회가 머리를 숙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래도 프리싱커스에게 묻고 싶은 것은 한국 교회가 이런 영적 위기를 자초한 원인의 결과로 전도거부카드를 만들고 있다는 것으로서만이 아니라, '이러한 운동을 벌이는 목적이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우리 스스로도 알고 있는데, 프리싱커스가 이러한 전도거부카드를 제작 배포하고자 하는 목적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다.

기독교에서의 전도는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과 같다. 전도를 그친다는 것은 더 이상 생명번식이 종결된다는 의미와 같다. 이것은 결국 공산주의 사회에서처럼 기독교말살을 획책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물론 프리싱커스는 어떤 강압적인 방법이나 이른바 법적 대응을 통해 기독교의 전도운동과 맞서는 게 아니라, 그들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기 위할 뿐이라는 것인 줄 알기에 기독교 편에서도 그들에 대해 딱히 이래라저래라 말할 수 있는 계제가 아님을 알고 있다. 다만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종교 논쟁을 떠나 인간의 기본적 삶의 자리에서 함께 묻고 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딱 한 가지만 묻고 싶다. 인간 누구에게나 죽음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문제는 “죽음 후에는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이다. 대부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죽음 후에 무엇이 있느냐고요? Nothing!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죽음 자체로 모든 게 끝입니다. 이것이 나의 신앙이요 종교입니다. 그리고 또 설령 무엇이 있다 한들 나는 그러한 것들을 믿지도 않거니와 아예 관심도 없습니다. 믿음은 믿는 자의 것이기에, 그러한 추측과 상상은 그것을 믿는 이들에게만 적용될 뿐이지, 그것을 부인하는 우리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니까요.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니까요! Nothing! 아무 것도 없다고요. 무(無), 그 자체일 뿐이죠. 이게 생각의 자유니까요"

인간이 가장 큰 역경에 처하게 되는 것은 자유를 박탈당할 때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인간이기에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며 목숨을 내걸기도 한다. 그만큼 자유는 귀중한 것이고, 개인적으로 나 역시 이 자유를 얻기 위해 기독교인이 되었다. 십자가의 보혈로 속죄 받은 성령으로 거듭난 기독교인만이 이 자유를 보장받고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말하지만, 죄 가운데 묶여 있으면서도 그리고 그 끝의 심판을 두려워하면서도 과연 참 자유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기에 원초적 두려움에서 헤어나지 못 하고 거짓 것들의 허무한 속임수에 빠져 방황하고 있다.

기독교에서의 구원은 죽어서 천국의 영생을 누리겠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들어갈 미래의 천국을 오늘 나의 현실세계에 끌어들여 지금 여기에서 그 천국과 같은 삶을 누리겠다는 것이다. 이 말에 괜히 기독교 근본주의자 아니면 기독교 망상주의자들이 말하는 이상주의자들의 '요상한 이야기'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기독교는 땅에 발을 딛고 사는 한 철저히 현실주의자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자유는 아무 것도 믿을 것도 기대할 것도 없는 황폐하고 삭막한 고립된 현대인들의 고독과 허무로부터 그리스도를 통한 소망과 믿음 그리고 사랑의 삶 속에서 참된 자유와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임을 알아야 한다.

프리싱커스(Freethinkers), 명칭 그대로 맘껏 자유롭게 생각하라. 그러나 과연 파고들수록 궁극적으로 허무에 치달릴 수밖에 없는 인생의 여정에서 이 고독과 허무의 감옥 안에 갇혀 진정한 자유를 찾아갈 수 있겠는가!

생각만큼은 자유이니까. 이러한 생각마저도 자신들의 믿음일 수 있으니까. 기독교인들 역시 믿음으로 모든 생각을 하나로 모은다. 그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으로 나타난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간다. 이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증거 하는 삶을 살아간다. 이것이 기독교의 전도이다. 그런데 생명을 살리는 이러한 전도가 필요치 않다니? 죄와 사망의 권세, 이 허무로부터의 생명길을 열어주는 것에 No thanks! 라니....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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