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지독히 가난했어요. 반면에 큰집은 당시로 말하면 부르주아였지요. 초등학교 6학년부터 신문배달을 하면서 우리 집은 왜 못살고 큰집은 잘 사는지 비교해 보니, 큰집에는 책이 많더군요. 그때부터 책을 훔쳐다가 읽었습니다. 들키지 않으려면 빨리 읽고 다시 돌려놔야 했어요. 그러다보니 몰입도가 높아지더군요. 삼일 밤낮 책에 매달린 적도 있습니다. 그때 읽은 ‘상록수’와 ‘대망’이 저를 변화시켰습니다.”

김진의 일산농협 조합장이 조합원들이 선물한 액자를 소개하고 있다. 조합장 사무실에 걸린 서예 작품들은 대부분 조합원들이 선물한 것들이다.

2015년 조합장에 당선된 이후 일산농협을 이끌고 있는 김진의(60) 조합장. 고등학교 졸업 후 농협에 입사해 한 길만 보고 걸어온 시간이 40년이 다 되었다. 편히 조합장 임기를 채울 만도 한데, 그는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배운 ‘인내’ 인생의 좌우명

23일 일산농협 조합장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김 조합장은 지금도 하루 4시간 이상 자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 외의 시간은 모두 업무에 할애한다는 설명도 보탰다. 일중독 아니냐는 질문에, “일을 안 하면 불안하다”고 답한다.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원동력과 어려움을 이겨낸 좌우명을 물었다. 그는 의외로 책 이야기를 꺼냈다.

“장남이니 배워야 한다는 부모님의 뜻에 어려운 형편에도 중학교를 마쳤어요. 고등학교는 장학금으로 마쳤지요. 취업을 해야 하는데, 심훈의 상록수에 등장하는 박동혁과 최영신 모델을 밟아보고 싶었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도 영향을 미쳤겠지요. 농촌을 계몽하고 농업인들이 잘 살게 해주고 싶었던 겁니다.”

당시 김 조합장이 원했던 직장은 농촌지도소와 농어촌기반공사였다. 하지만 사람을 뽑지 않아 농협에 입사했다.

상록수가 농협을 통해서 농촌을 계몽하고 잘사는 농업인상을 만들어야한다는 그의 인생 목표설정에 영향을 줬다면, 조합장에 이르기까지 어려움을 견디게 한 좌우명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본 전국시대 평정기를 다룬 야마오카 소하치 장편소설 ‘대망’ 속에 등장한다.

김진의 조합장은 중학교 시절 몰래 읽었던 '대망'속 구절을 지금까지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큰 집에서 몰래 가져다 읽은 책 중에 상록수는 쉽게 이해가 됐는데 대망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더군요. 세권 쯤 읽으니 이해가 좀 되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좌우명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중략)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일을 모르면 해가 그 몸에 미치는 법, 미치지 못하는 것이 지나친 것보다 나으리라’라는 말이 특히 인상에 깊었습니다.”

농업인과 고양 시민사회 잇는 네트워크 관심

김 조합장은 아직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좌우명을 프린트해 가지고 다닌다. 그는 대망 속 혼란한 전국시대를 평정하는 영웅담이 2차세계대전 이후 몰락한 일본사회에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은 것에도 주목한다. 갈등과 분열이 극심한 우리사회에도 시사점이 있다는 것. 일본사회를 분석하는 논문도 준비했었다는 그는 현재 서울시립대 겸임교수로도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그의 좌우명은 일산농협이 최근 들어 지역사회 네트워크 형성에 힘을 쏟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하나로 연결시키는 상호부조의 정신이 지역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다.

김진의 조합장이 자신을 농협에 입사하도록 이끈 심훈의 상록수를 꺼내 보이고 있다. 김 조합장은 중학생 시절 상록수를 읽으며 농촌 계몽의 필요성과 잘사는 농업인이라는 꿈을 가졌다고 한다.

일산농협은 조합원을 대상으로 조합원카드를 제작하고, 조합원 사업체를 전체 조합원에게 소개하는 책자를 배포하는 등 농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지역사회 17여개 기관과 MOU를 맺고 인적 물적 지원에 나서 지역사회 복지허브 역할도 자처하고 있다. 농민과 지역(시민)사회를 연결시키고, 1년에 한번 네트워크 회의에서는 다양한 지역의제도 다룰 예정이다.

이런 열정이 혹여나 정치에 대한 열망으로 읽혀질 수도 있을 터. 인터뷰 막바지 김 조합장에게 이후 목표를 물었다.

“정치에는 관심 없습니다. 제대로 된 사회운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합니다. 서민의 삶을 위로하고 변화시키는 제대로 된 사회운동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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