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박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화재안전 연구소장)

생리의학상 부문을 시작으로 올해도 어김없이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노벨상은 생리의학, 물리학, 화학, 문학, 평화, 그리고 경제학의 총 6개 분야에서 인류 발전에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매년 이 시기만 되면 우리는 물론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올해도 생리의학 분야에 일본인 과학자가 포함되어, 3년 연속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우선 축하할 일이다.

일본은 과학 부문에서만 벌써 25번째 수상자를 배출했다고 한다. 인구 2천만의 유태인 중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가 200명을 넘었다는데, 일본에서 그만한 수상자를 배출한 것이, 또 3년 연속 배출한 것이 왜 뉴스가 되는 것일까. 지리적으로 가깝고 우리와 같은 한자와 유교 문화권인 나라들에서는 노벨상 수상자가 쏟아지듯 나오는데, 우리에겐 아직 그림의 떡이어서 일까. 노벨위원회 발표 이후 우리가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와 각종 처방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이와 같은 질책과 자괴감은 일단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기대 그리고 희망의 발로라 생각하고 싶다. 동시에 과학기술분야 발전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연구원으로서 어깨가 무거워지며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쯤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을까, 당장은 아니더라도 훗날 노벨상 수상에 버금가는 결과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비난 섞인 질문을 접하기라도 하면 착잡하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데, 우리 과학기술계는 지금 어떤 병에 걸려 있고 그 치료법은 무엇일까?

먼저, 거창한 구호에 영합하거나, 소위 인기 있는 주제에 휩쓸려 여기저기 기웃거려서는 안된다. 세포 내에서 청소부 같은 역할을 함으로써 암이나 파킨슨병, 당뇨병을 치료하는 도움이 되는 오토파지(자가포식) 현상을 발견해 올해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동경공업대학의 요시노리 오스미 교수는, 수상 직후 인터뷰에서 남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분야를 꾸준히 연구하다 보니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말한다. 올해 70세로 여전히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그는 본인이 관심 있는 것으로 어떤 것이든 이루겠다는 마음으로 도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충고도 전했다 한다.

다음으로, 연구자의 판단과 소신에 따라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절실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특정 주제가 선정되고 그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연구들이 유행하는 관행은 효과여부를 떠나 분명 문제가 있다. 연구개발을 위한 사회적 기반이 성숙되지 못했던 초기 산업화시기에 선진기술을 재빨리 따라잡기 위해 구호를 내걸며 발전을 선도하는데 이 방식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발전단계와 상관없이 언제까지나 이 방식이 통하리라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과학기술자의 저력과 창의성을 믿고 연구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최선의 정책이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자는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고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길러야 한다. 하지만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농업사회와 산업사회의 뒤를 이을 지식혁명 시대로의 전환을 예측한 앨빈 토플러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잇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인 협력적 공유사회를 예측한 제러미 리프킨의 혜안을 빌릴 수 있다면 말할 나위가 없겠다. 연구실과 실험실 그리고 현장에서 얻은 값진 경험을 밑거름으로 우리 사회와 인류를 위해 해야 할 연구주제의 뿌리와 열매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절실하다.

돌이켜보면, 1970년대 이후 산업화를 통해 우리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를 세계 10위 규모의 경제력을 갖춘 선진국 문턱까지 끌어올렸다. 이 과정에서 과학기술은 절대적인 기여를 했고, 여기에는 정부의 주도와 지원이 큰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추격자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우리 과학기술이 이제 선도자로서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이제 과거의 환상과 관행을 버리고, 관련 주체들이 기본에 충실하며 최선을 다하는 풀뿌리 연구개발로 방향을 바꿔야할 때다.

‘과학기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노벨상 수상이 아니라 우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한 2004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 아론 시카노버 교수의 얘기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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