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에로의 웃음 뒤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사람들은 자신보다 못 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 편하게 느껴집니다. 그것도 나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향해 별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사는 것 같다고 말해주는 것의 이유와 그 비밀이 여기 있습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대부분의 주위 사람들은 내가 도움을 주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삐에로(Pierrot)는 전통 프랑스 극에 나오는 슬픈 얼굴을 한 남자 배우의 대명사입니다. 삐에로는 어릿광대의 우스꽝스러운 웃는 얼굴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에 숨겨진 묘한 미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이 미소가 섬뜩하기도 합니다. 삐에로는 얼핏 희극적 인물로 묘사되지만, 사실 비극적 역할을 담당하여 철저히 가면과 위장으로 세상을 경멸하며 조소하는 듯한 기분 나쁜 웃음을 보게 됩니다. 그는 항상 그렇게 웃을 뿐이지 한 번도 자신의 속내를 내놓지 않습니다. 그냥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말없이 순응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스스로 약자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접하게 된 L씨는 조현병을 앓고 있는데, 자식들은 모두 출가시키고 아내와 단둘이 살고 있습니다. 그 아내는 이런 남편하고 오랫동안 한 집에 살다보니 남편 다루는 것은 이골이 나서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가 항상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조심 아내의 지시에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외관상 전혀 이상할 것 없습니다.

다만 가끔 엉뚱하게 우주와 삼라만상을 다스리는 천주(天主)와 특별 교신을 한다고 말하여 이상하게 취급될 뿐입니다.

그가 주로 교신하는 것은 '예수님의 누님'입니다. 나는 예수의 어머니라고 일컫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예수의 누님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의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에 좀 얼떨떨하고 이상하게 됩니다. 나는 그가 교신하는 내용을 통해 내가 받지 못하는 하늘의 신령한 계시를 받을 수 있을까 하여 아주 진지하게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의 '예수님의 누님'과의 교신을 적은 기록노트를 자세히 살핍니다. 거기에는 내가 알 수 없는 그만의 또 다른 세계가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그를 '종교망상증'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합니다.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난 Y역시 조현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는 1970년대 초에 SKY대의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재원이었지만 발병으로 인해 가족과도 헤어져 끝내 외로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대학시절 친구들은 우리나라 정계에서 한 자리씩 하던 사람들이었으나, 그는 결국 '힘있는 자'의 대열에 들지 못 했으며 '힘없는 약자'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나와는 근 15년을 친구로 지내왔었습니다. 그의 아파트에 가서 바둑도 두고, 일산시장 지하다방에 마음에 드는 연변 아가씨 하나가 새로 종업원으로 왔다고 하여 대신해 아가씨에게 그의 마음을 전해주는 역할도 해주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습니다. 그가 가족과 헤어졌을 때 어린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그 아들의 성장과정을 먼발치로 지켜보며 그리움으로 안타까운 심정을 내게 토로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며 사랑하던 그의 아들에게 그의 사랑을 대신하여 전해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들을 좋아하고 내 측근으로 두고 싶어 하는 것은 나의 편안함과 편리함이라는 '숨겨진 이기심'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서로를 상대적 경쟁자로 생각하고 경쟁력의 싸움을 하는 현대의 피곤한 삶 속에서 적어도 이들과 있는 동안만큼은 이러한 경쟁구도의 삶에서 겪게 되는 불필요한 일들을 비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함께 있는 것이 편하고 좋을 뿐입니다.

나를 좋아하고 또 내가 좋아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내 측근의 사람들에게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한결 같이 착하다는 것입니다. 심성들이 온유하고 착해 남에게 속임을 받을지언정 속일 줄 모릅니다. 때로 멸시받기도 하지만, 그들 자신이 다른 누구에게 나쁜 마음으로 대하는 일은 없습니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이들을 어렵게 만든 요소 중의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 내가 천국에 입성하게 된다면 그건 분명 나를 향한 이들의 선함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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