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독자님
이동훈 독자님

[고양일보] 캐나다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해피 엔딩>이라는 단편 소설에서 말하는 행복의 기준은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자식을 기르고, 좋은 집에서 여유롭게 사는 것이다. 이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추구하는 행복의 기준과 같다.

한 물리학 박사가 환경미화원 모집에 지원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기사를 읽은 독자들은 댓글에서 그 박사의 선택을 몹시 아쉬워했다. 힘들게 학위를 취득해서 굳이 학력 제한이 없는 직업에 도전한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학창 시절 우리는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취직하라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으며 자라왔다. “공부 못 하면 힘들게 산다” 누구든 이 말 한 번 정도는 들어 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준에 맞추려고 대학에 가고 취업에 성공하는 길만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의 전부일까?

유엔 자문기구 지속 가능 발전 해법 네트워크(SDSN)는 설문을 통해 매년 국가별 행복 지수를 발표한다. 지난 2022년 설문 결과를 보면 대한민국은 146개 국가 중 59위이다. 한국의 순위는 지난 몇 년간 큰 변화가 없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행복의 기준을 가지고 어느 나라 사람보다 더 치열하게 그 기준에 맞추려 노력한다. 그러나 수치로 드러난 우리의 행복지수는 다른 나라에 비해 높지 않다. 즉, 우리가 행복이라고 여기는 기준은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행복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그 행복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것에서 행복을 느낀다.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음악을 듣는 것도 내가 행복을 느끼는 방법 중 하나다. 또 누군가는 운동할 때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한 명쯤은 공부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남들이 정해 준 기준에 따르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따라가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애트우드는 소설의 끝부분에서 독자에게 말한다. 우리의 삶에 우리의 이야기를 더해보라고. 우리가 어떻게 행복해질지는 우리 손에 달려있다. 그 누구도 나만큼 나를 아는 사람은 없다. 나는 남의 목소리에 개의치 않고 나만의 길을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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