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니스트
박종호 칼럼니스트

[고양일보] 어이가 없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꽃같이 아름다운 청춘들이 비명 속에 떠났다. 좁고 긴 어두운 골목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옴짝달싹 못 한 채 압사했다. 모든 재난 사고가 그렇듯이 대형참사는 예상치 못한 장소와 시간에 발생한다. 1971년 대연각 화재와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가 그랬으며 2014년 세월호 사고가 그랬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그런 대형참사들과는 다르다. 충분히 예측 가능했고 사전에 막을 수도 있는 인재(人災)였다. 설마 젊은 청춘들의 할로윈 축제에 이런 참혹한 사고가 나리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경찰만은 그런 안이한 자세를 가져서는 안 됐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파수꾼이어야 할 경찰은 사전에 예상하고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했다. 사고 당일 137명의 경찰이 투입됐다고 한다. 주로 마약 및 범죄 단속을 위한 경찰이라고 한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눈앞에 보이는 상황을 보고 어느 경찰 한 명 나서서 인파를 통제하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없다. 경찰은 일반시민과 보는 눈이 달라야 한다. 현장에 있던 시민이 위험을 감지하고 신고까지 했는데 같은 곳에 있던 그 많은 경찰은 도대체 무얼 했다는 말인가. 더구나 지휘체계 부재로 경찰청장이 대통령보다 더 늦게 보고를 받았다. 담당 용산경찰서장은 현장에 보이지도 않았다. 365일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깨어있어야 할 경찰 조직이 재난구조가 주 업무인 소방서보다도 대응이 늦고 지휘계통이 무너진 조직이 돼버렸다. 민중의 지팡이란 말이 무색하다.

경찰(警察)이란 단어는 경계하고 살핀다는 의미다. 항상 깨어있는 의식으로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고 경계하는 게 경찰의 임무다.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자리여서 사명감이나 소명 의식 없이는 할 수 없는 직업이다. 더구나 경찰공무원은 일반 공무원과 달리 행정을 집행하는 기관이다. 경찰의 행정 활동을 공권력(公權力)이라고 한다. 공권력은 치안유지 등을 위해 국민에게 명령,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경찰의 공권력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이미 오래됐다. 경찰이 술 취한 사람에게 얻어맞고,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하는 데모대가 경찰저지선을 우습게 안다. 살인사건 현장에서 도망가는 모습도 보여줬다. 치안유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주어진 권한마저 행사하지 못하는 것은 경찰의 무능이다. 이번 사태는 경찰의 소명 의식이 바닥에 떨어졌다는 방증이다. 전대미문의 이태원 참사는 112 신고를 받은 경찰부터 행정안전부 장관까지 경찰 지휘체계 안에 있던 모든 경찰공무원의 무능과 안일함 때문에 발생했다.

선진국은 제복 입은 직업에 대한 국민의 존경심이 크다. 그들의 국가기여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군인과 경찰에 대한 존경심은 특별하다. 특히 군인은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 전사(戰士)며 국경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군인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적을 죽이는 훈련을 하고, 한순간도 방심하면 안 되는 조직이다. 따라서 평화로운 시기에는 군인의 존재감이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수시로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쏘고 핵으로 위협하고 도발할 때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는지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적의 도발에 무기력하면 이미 군인이 아니다. 평화기가 너무 오래되다 보니 군인다운 군인이 안 보인다. 단순히 직업인으로서의 군인만 보이고 투철한 상무 정신으로 무장된 진정한 군인 보기가 어렵다. 군기 빠진 군대는 문재인 정권의 친북 정책도 한 원인이다. 군인은 정치에 좌우되지 않고 오직 국방과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각오가 없으면 안 된다.

군대는 전쟁이 발생해야 대응하는 수동적 입장이다. 그러나 경찰은 사전에 능동적으로 사고와 범죄를 예방해야 하는 조직이다. 당연히 그래야만 국민을 더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365일 예리하게 경계하고 세심하게 살펴서 사전에 범죄와 사건을 막는 게 유능한 경찰이다. 유능하지 않더라도 주어진 공권력을 제대로 행사해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 경찰 본연의 임무다. 2010년 101,108명이던 경찰은 2020년 126,227명(경찰청 통계)으로 25%나 증가해 조직은 비대해졌다. 하지만 늘어난 수치만큼 치안이 더 강화된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이번 이태원 참사는 변명의 여지 없이 관할 경찰의 잘못이 가장 크다. 용산경찰서는 당연히 지역 사정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지형적으로 위험한 좁고 비탈진 길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했다. 특히 사건 하루 전날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걸 보고도 사전에 아무런 대비가 없었다는 건 직무 유기이고 업무 태만이다. 당일 112 신고 상황을 보면 경찰의 무능과 안일함이 도를 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고 4시간 전부터 압사할지도 모른다는 다급한 시민의 신고를 접하고도 아무런 대처가 없었던 건 상식적으로도 이해하기 어렵다. 경찰 조직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하룻밤 사이에 귀한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에게 이태원은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은 원통하고 비통한 이름이 됐다. 전 국민 뇌리에도 잊히기 어려운 참혹한 트라우마가 됐다. 지금까지 우리는 대형 사고가 난 뒤에야 항상 뒤늦은 대책을 세우곤 했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이다. 사고가 터진 다음에 대책을 세우는 건 미련한 일이다.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고 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가려서 관련자를 엄벌해야 한다. 군기 빠진 군인과 무사안일의 매너리즘에 빠진 경찰에게 국민이 각성의 육모방망이를 매섭게 들이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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