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이수자 어머니(1936년~), 석양보다 노을이 좋아①
[자서전]이수자 어머니(1936년~), 석양보다 노을이 좋아①
  • 김경희 작가
  • 승인 2022.09.24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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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꽃 같은 시절이 있다. 어머니댁 낮은 담장 밑으로 키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낮 달맞이꽃, 소담스런 맨드라미, 과꽃, 이름도 어여쁘고 자태도 얌전하다. 이수자 어머니도 그런 분이셨다.

■ 거짓말, 저 열아홉 살이에요

“열아홉 살이에요”

시집가서 이웃 형님들이 몇 살이냐 물으면 열아홉 살 이라고 거짓말을 줄곧 했다.

열다섯 살에 시집왔다고 말하기가 너무 창피했다. 입하나 덜겠다고 오라버니가 보낸 시집이라 더군다나 키 작은 내가 열다섯 살 때는 언뜻 보면 열 살짜리 계집아이로 밖에 안 보였다. 그런데 시집을 간다니 더군다나 신랑은 덩치가 산만했다. 초례상에서 나는 창피하기만 해서 눈을 들 수가 없었다.

첫날밤에는 신랑이 옆에만 오면 엉엉 울어대느라 새 신랑도 어이가 없어서 우리는 첫날밤도 결혼하고 여섯 밤을 지난 후에 치렀다. 남편이 점잖은 양반이라 나를 애기처럼 생각하고 존중해주었다.

군대 생활 중 휴가 나와서 결혼식을 하게 되어 휴가 마지막 날 나는 남편의 여자가 되었다.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데면데면 하다가 남편이 군대로 복귀 하는 날 어찌나 서운한지 마을 어귀까지 쫓아가면서 울고 또 울었다.

남편을 보내는 마음이 아니라 내 울타리가 되어줄 큰 오라버니가 떠나는 마음이었다.

경기도 연천으로 군복무를 하러 간 남편을 보내고 나는 시집에 홀로 남았다.

■ 아 가여워라, 가련한 생태계에 갇힌 여자들

이제는 헛웃음만 나오는 시집살이 또 시집살이.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가 더 얄밉다고 했나. 고추보다 더 매운 건 시누이 시집살이였다. 남편은 위로 누나가 셋, 아래로 여동생이 둘이었다. 같은 여자인데 어쩌면 그리도 매정한지...내 등에 누에를 넣는 건 예삿일이고 얼음 깨고 빨래해서 널어놓으면 숯검댕이를 마른 옷에 묻혀놓기가 다반사였다. 장난을 넘어선 패악질이었다.

옆 동네로 시집간 시누이는 본인도 시집살이를 하면서 나를 못 잡아먹어서 난리였다.

앙갚음을 나에게 하듯이...

우리 할머니가 우리 어머니에게 시집살이를 대물림하고, 다시 시어머니가 우리에게 시집살이를 대물림하는 가련한 생태계에 갇혀서 여자들은 살아왔다. 밭농사와 잠실을 하던 시댁이라 일거리가 너무 많았다.

잠자고 있으면 등 뒤에서 뭔가 꼬물꼬물 엉겨 붙는 느낌이 든다. 누에가 기어 다니고 있다. 처음에는 까무라치게 놀랐지만 나중에는 귀여운 녀석을 손에 살며시 잡고 놓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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