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니스트
박종호 칼럼니스트

공자의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의 요점을 물었다. 공자는 “足食, 足兵, 民信(족식, 족병, 민신)”이라고 대답했다. 요즘 말로 “넉넉한 경제력과 튼튼한 국방력 그리고 국민의 신뢰”라고 할 수 있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이 셋 중에서 부득이하게 하나를 버린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공자는 兵(병)을 버리라고 했다. 다시 “양식과 신뢰 가운데 부득불 하나를 버린다면 어떤 것을 버려야 합니까?”라고 묻자, “당연히 양식을 버리고 신뢰를 남겨야 한다.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그 나라는 한순간도 존립할 수 없다”라고 했다. 신뢰야말로 어떤 상황에서도 최후까지 양보할 수 없는 정치인의 최고의 가치이자 덕목이라는 말이다. 최근 한국의 정치와 정치인을 보면 과연 이들에게 신의(信義)라는 게 있는지 의심스럽다. 국회의원이란 사람들이 국민에게 신뢰를 주기는커녕 수준 이하의 말과 행동으로 국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고 나라를 걱정하게 만든다. 서로 진영을 갈라 죽기 살기로 싸우기만 하고 나라의 안위와 국민의 눈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공천과 선거 승리만 중요하다. 이런 국회의원이 왜 300명씩이나 필요한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과감한 정치개혁이 필요하다.

정치인의 신뢰는 이미 너무 많이 무너졌다. 온갖 범죄 혐의가 있는 이재명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됐고, 낙선하자마자 민주당 텃밭인 인천 계양의 국회의원이 됐다. 이재명의 범죄 혐의에 대한 방탄복을 입히기 위한 꼼수라는 비난 여론이 높았지만, 민주당과 이재명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민주당 대표로 옹립하여 완전하고 안전한 지하 벙커에 완벽하게 숨길 준비를 하고 있다. 국민의 불안한 마음과 따가운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이런 사람에게 정치인의 신의를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다. 국민의힘 이준석의 신의 없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준석은 26살 어린 나이에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10년 동안 정치인으로서 큰 고생 안 하고 야당 대표가 돼서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옛날부터 소년등과(少年登科)는 중년상처(中年喪妻), 노년빈곤(老年貧困)과 함께 인생 3대 불행으로 꼽히는 악재다. 중년에 처를 잃고 홀아비가 되는 것이나 노년에 돈이 없어 겪는 고통에 견줄 만큼 큰 화근이 소년등과라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사회 경험도 많지 않고 인격이 채 성숙하기도 전에 정치판에 들어와 거둔 성공은 이준석이란 인간을 완전히 망가지게 했다. 나이는 30대지만 노회한 정치인보다도 더 교활하고 신의를 지키지 않는다. 지난 10여 년간 이준석은 신의보다 배신의 정치에 더 익숙해진 것처럼 보인다. 예전에 “유시민은 맞는 말을 해도 싸가지없게 하는 재주를 가졌다”라고 같은 당 국회의원이 얘기한 것처럼 이준석도 사사건건 싸가지없는 대응으로 지지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심지어 성 상납 의혹과 이 사실을 무마하기 위한 행동으로 당 윤리위원회에서 당원권 정지를 당하자 법원으로 달려갔다. 자신이 당 대표로 있던 정당을 향해 똥물을 퍼붓고 등 뒤에 비수를 내리꽂는 형국이다. 정치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염치도 없고 신의도 지키지 않는 비열한 처신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게 나오는 것은 지지자들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신뢰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윤석열을 선택한 많은 국민은 문재인 정권의 수많은 비리를 낱낱이 밝혀내고, 비정상적으로 틀어진 나라를 하루빨리 제자리에 돌려놓기를 바랬다.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 후보가 가장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뽑아줬지만 100일이 지나도록 과거 문재인 정권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범죄행위에 대해 신속하게 단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실망감이 솔직하게 드러났을 뿐이다. 민심은 천심이다. 옛날 당나라 태종이 위징이란 신하에게 어찌하면 명군이 될 수 있는지 물어봤다. “겸청즉명이요 편신즉암(兼聽則明 偏信則暗)”이라 답했다. 즉 “여러 가지 의견(意見)을 두루 들으면 명군이 되고 한쪽 말만 들으면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혼군(昏君)이 된다”는 말이다. 검찰에만 몸담았던 윤석열 대통령이 명심해서 들어야 할 얘기다. 취임 3개월이 넘도록 장관과 검찰총장 자리가 비어있다. 인사실패라고 비난받는 이유다. 인사 난맥과 고집스럽게 자기 스타일을 고치려 하지 않는 태도는 하루아침에 바뀌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소통의 창을 개방해서 여러 의견을 두루 들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통해 초기의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국민의 숨소리까지 새겨들어 국정에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단 바닥까지 떨어진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고 국민이 잘할 거라고 믿었던 공정하고 상식과 정의가 살아 숨 쉬는 나라를 만드는 일부터 해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면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다.

지금 한국의 정치판에는 믿고 따르고 존경할 만한 정치인이 안 보인다. 여당과 야당 모두 심각한 인물난을 겪고 있다. 30대의 당 대표에게 질질 끌려다니면서 표류하는 국민의힘이나 범죄 혐의가 가득한 이재명 외에는 대통령 후보도 없고 당 대표조차도 뽑을 수 없는 민주당이나 한심하기는 오십보백보다. 두 당은 항상 비상 상황이고, 비상대책위 없이는 정상적인 당 운영이 힘든 정당이다. 민주당은 이재명을 지키기 위해 당헌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양이원영 의원은 의총에서 "우리는 권력을 잡기 위한 정치 조직이지 성직자 조직이 아니다. 도덕주의 정치에서 벗어나자"라고 했다. 귀를 의심케 하는 수준의 말이다. 임종성 의원도 "우리가 성직자를 뽑는 게 아니지 않으냐"고 이재명을 위한 방어를 했다. 국회의원은 대표적인 공인이다. 막대한 국민 혈세로 월급을 주며 나라를 위해 봉사와 희생을 기대하고 국민이 선출했다. 국회의원은 일반 국민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적 기준과 정직과 공정함, 스스로에 엄격하고 불철주야 국민을 섬겨야 하는 자리다. 그렇게 열심히 국가를 위해 일하라고 피 같은 국민의 돈을 주는 자리다. 하지만 야당 국회의원의 목적이 고작 권력을 잡는 것이고 중대 범법자도 당 대표로 뽑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수준이라면 지켜보는 국민이 불쌍하다. 국민에게 믿음은 못 주더라도 배신감과 자괴감은 들지 않게 해주는 게 정치인의 최소한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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