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니스트
박종호 칼럼니스트

역사는 미래를 보는 거울이다. 어제 없는 오늘은 없다. 역사 공부는 과거의 사건을 반면교사 삼아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미래는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이상하게도 역사는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1910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 조선은 주자 성리학의 나라였다. 유교는 공자가 인(仁)과 덕(德)으로 천명(天命)에 따른 이상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체계화한 학문이다. 성리학은 송나라 주희가 공자의 유교 사상을 ‘성(性)·의리(義理)·이기(理氣)’ 등의 형이상학 체계로 만든 신유학이다. 성리학은 ‘性命 義理의 學’의 준말로 ‘주자학’이라고도 한다. 수신학(修身學)이면서 통치학인 주자학은 조선왕조의 역성(易姓)혁명을 뒷받침하는 통치 이념이 되었다. 1392년 이성계가 세운 조선은 1910년에 일본에 나라를 뺏길 때까지 518년간 왕조가 유지됐다. 근대 단일 왕조 국가로서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조선사 500여년 동안 백성은 전란과 변고 없이 배부르고 마음 편하게 잘 살았던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역사책 어디에도 태평성대를 구가했다는 좋은 시대는 보기 어렵다. 19세기 들어 세상은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급변하는데 주자학의 나라 조선은 개방과 개혁 대신 목숨 걸고 ‘위정척사(衛正斥邪)’를 외쳤다.

조선은 불행하게도 스스로 근대화의 도도한 물결에 올라타지 못했다. 1800년대의 동아시아는 서구의 영향으로 급격하게 봉건사회가 붕괴하고 강제적인 근대화의 파고가 쉴새 없이 밀려 들어왔다. 조선과 일본이 세계의 중심이라 생각했던 청은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무기력하게 패했다. 전쟁 패배는 기존의 동아시아 질서마저 무너뜨렸다. 일찍부터 네덜란드로부터 신기술과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을 통해 막부시대를 끝내고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제를 시행하면서 이전의 일본과는 전혀 다른 근대국가로 변모했다. 획기적인 개혁과 새로운 학문과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19세기 말에는 동아시아의 패권을 가질 정도가 되었다. 격변하는 근대개화기의 3~40년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 주자학의 나라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조선이 자발적,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근대화는 일본의 식민 통치를 통해 이 땅에 들어왔다.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세계정세에 눈이 어두운 암군(暗君)과 백성의 안위는 뒷전인 위정자 탓에 조선의 죄 없는 백성은 35년이나 나라 없는 고통을 겪었다. 바깥세상과 철저하게 담을 쌓고 오로지 주자 성리학의 세계에 갇혀 새로운 문물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다.

조선이라는 518년간의 주자학의 나라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35년 동안의 일본 식민 지배는 연합국의 도움으로 끝났다. 해방된 남한 땅에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북한 땅에는 공산주의 ‘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이 세워졌다.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는 동안 북한은 ‘주체사상’의 김씨 왕조가 3대째 통치하며 갈수록 삶이 피폐해져 제2의 고난의 행군을 준비하고 있다. 조선이 주자학의 폐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역사에서 사라진 것처럼 김씨 왕조도 똑같은 길을 가고 있다. 외부 세상과는 벽을 높이 쌓고 자가 발전 동력은 떨어져서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한 닫힌 나라다. 당 간부와 군부 등 한 줌도 안 되는 김씨 왕조의 일부 선택된 사람을 제외한 수많은 인민은 굶어 죽어가지만 아무런 해결 방법도 없다. 마치 과거 조선이 그랬던 것처럼 북한의 곳간이 텅 비어있기 때문이다.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재정이 고갈되어 나라에서 관료들 급여를 지급하지 못했다고 한다. 나라의 관료들은 온갖 명목의 세금으로 백성의 고혈을 짜내서 급료로 충당했다. 백성이 도탄에 빠진 이유다. 조선말에 이르러서는 이미 국가 기능을 상실했다고 한다. 백성을 굶기는 국가는 나라도 아니다. 북한 사정을 정확하게 알기 어렵지만 아마 조선 시대 말기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폐쇄되고 고립된 사회에 사는 사람은 비교 대상을 못 봐서 자신의 불행을 알 수가 없다. 개혁과 개방을 거부하고 변화를 두려워한 조선이 역사에서 사라졌듯이 북한의 자멸은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다. 나라가 없어지는 순간까지 주자학의 봉건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조선처럼 ‘주체사상’과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유일한 수단인 ‘핵무기’를 놓지 못하는 북한의 종말이 멀지 않아 보인다.

최근 들어 통일에 대한 담론이 사라졌다. 문재인 정권의 북한 유화책은 무참하게 실패했다. 애당초 ‘핵’은 북한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최후의 보루다. 무엇보다 3대 세습국가와 어렵게 피와 땀으로 민주화를 이룬 대한민국과는 정상적인 통일 논의가 어렵다. 단순하게 협상테이블에서 통일을 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통일은 어느 한쪽의 정성과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 더구나 70년 이상 이념적으로 전혀 다른 국가로 살아온 남과 북의 통일은 더 험하고 요원하다. 이념은 피 보다도 진하다. 한번 붉게 물든 사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세습왕조 국가 북한과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통일은 북한 체제 붕괴 없이는 불가능할 것 같다. 더구나 분단 세월이 길어지면서 남아있는 이산가족도 점차 줄어들면서 통일에 대한 욕구도 약해졌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2021년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가운데 4명만이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2~30대의 40% 정도는 통일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대화조차 거부하고 체제가 전혀 다른 북한과 “굳이 왜 통일해야 하는가?”라고 얘기하는 국민도 많다. 북한이 주체사상을 버리지 않고 김씨 왕조가 계속되는 한 평화적인 통일은 불가능하다. 서양은 모두 오랑캐라고 ‘위정척사’만 외치던 조선말의 비참한 상황과 주체사상을 고집하며 문을 닫아걸고 고난의 길을 가고 있는 북한의 현재 상황이 마치 데쟈뷰를 보는 듯하다. 북한의 붕괴든 무모한 침략이든 어느 날 갑자기 닥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상황을 대비해서 튼튼한 국방력과 여유롭게 북한을 수용할 수 있는 강력한 경제력을 키우는 일이 당면 과제다.

저작권자 © 고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