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니스트
박종호 칼럼니스트

[고양일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일어난 지 3주가 됐다. 3일 안으로 끝내겠다고 러시아가 호기롭게 시작한 전쟁이 우크라이나 국민의 결사 항쟁으로 쉽게 끝나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절대적으로 월등한 군사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쉽게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목숨을 건 저항에 군사 강국 러시아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국제적 망신을 당하고 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 한 사람의 무모한 결정이 세계적인 경제 혼란과 러시아의 국가부도 위기를 불러왔다.

일방적으로 침략당한 우크라이나의 극렬한 저항의 중심에는 코미디언 출신의 젤렌스키 대통령이 있다. 44살의 젊은 대통령의 리더십은 정치 경험이 전혀 없던 코미디언 출신이기 때문에 더욱 빛난다. 젤렌스키는 공학 교수인 아버지와 공학자인 어머니를 둔 키예프 국립경제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한 수재다. 전공과 달리 자신이 좋아한 배우의 길을 가던 중 '국민의 일꾼'이라는 드라마에서 청렴하고 공정한 대통령 역할을 맡아서 전국민적인 인기를 얻었다. 젤렌스키는 드라마처럼 2019년에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영웅은 난세에 탄생한다. 대통령이 된 젤렌스키는 전쟁 바로 전까지만 해도 국정 운영을 의심받는 국제적인 조롱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군사 대국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당당하고 용기 있게 맞선 젤렌스키는 하루아침에 국제적인 영웅이 됐다. 젤렌스키는 지도자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91년에 소비에트로부터 독립한 우크라이나 국민은 대통령을 믿고 목숨 걸고 조국을 지키겠다고 싸우고 있다. 독립 당시 전 세계 3위의 핵무기 보유국이었던 우크라이나는 독립과 동시에 러시아와 평화협정을 맺고 핵무기를 포기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독립 31년 만에 평화협정을 무시하고 침략한 것이다. 절대적으로 군사력 열위에 있는 우크라이나로서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국민이 맨몸으로 거인과 싸우는 중이다. 우크라이나의 비극적 전쟁 상황이 실시간으로 마치 게임처럼 생생하게 전 세계에 방송된다.

핵으로 겁박하는 북한을 머리 위에 두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먼 나라에서 벌어진 전쟁의 참상이 절대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진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자신을 지킬 힘이 없는 나라는 절대 평화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5년간 북한을 상대로 남북 화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북한은 시도 때도 없는 욕지거리와 미사일 발사로 무시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올해에만 북한은 각종 미사일을 9발이나 동해상으로 쐈지만 대통령과 국방부는 한마디 항의도 못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던 북한과의 ‘종전선언’이 얼마나 무모하고 무의미한지 알게 해준 반면교사다. 죽기 살기로 핵에만 매달리는 북한의 위협에 아무런 구속력 없는 문서가 어떻게 평화를 담보하고 나라를 지켜준다는 말인가.

고종은 112년 전 518년 역사의 조선을 무기력하게 일본에 넘긴 조선 최후의 왕이다. 하루아침에 나라를 빼앗기고 겪은 35년간의 일제 식민지는 지금까지도 역사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아직도 앙금처럼 남아있는 친일청산 문제와 시도 때도 없이 튀어 나오는 극일의 외침은 항상 국민의 마음속에 무겁게 올려진 커다란 바윗덩어리다. 역사에는 한일 병합조약을 맺은 이완용 등 을사오적이 역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나라를 망친 책임은 국가지도자인 조선의 왕에게 있지, 일개 신하의 잘못이 아니다. 적어도 국가는 어느 날 갑자기 망하는 게 아니다. 망해가는 전조가 끊임없이 나타나지만, 무능한 군주와 용기 없는 신하들이 애써 외면할 뿐이다. 구한말이 그랬다. 성리학의 높은 울타리 속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 온 조선의 무능한 위정자들 탓에 백성은 이유도 모른 채 나라 없는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야 했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군주를 잘못 둔 백성이 운명의 기구함을 탓할 뿐이다.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0.73%라는 역대 최소 표 차이로 희비가 갈렸다. 나라가 반반으로 나누어진 형국이다. 자기가 지지했던 대통령이 근소한 차이로 패하고, 그 어느 때 보다 치열한 선거였기에 후유증이 너무 크다. 처음 겪는 선거 부작용이다. 우울증세가 있거나 뉴스도 보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동창과 친구 사이도 서먹서먹해진 경우가 많다. 가뜩이나 코로나 사태로 지난 2년간 사회적 교류가 막혀있던 사람들의 허전하고 우울한 마음은 이번 선거를 통해 더욱 심한 사회적 갈등을 겪게 되었다. 새로 대통령이 된 윤석열은 반분 된 나라를 어떻게든 무난하게 통합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출발한다. 정권교체를 바랬던 국민의 가장 큰 불만이었던 비상식적으로 벌어졌던 많은 일 들이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그리고 전 국민이 함께 미래의 꿈을 같이 바라볼 수 있도록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서 국민통합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국정 운영은 많은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상식적이고 공정하고 정직하게 하면 된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는 전 국민의 존경을 받는 정치인이 거의 없다. 1948년 제헌국회 이후 74년이 지났다. 수많은 정치인이 나라를 위해 일해왔지만, 정작 국민의 존경을 받고 훌륭한 정치인으로 추앙받는 대통령이 없다.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군군신신(君君臣臣)이라고 답한다. 즉 왕은 왕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말이다. 왕답다는 것은 왕으로서의 빼어난 능력과 통치력 그리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등이고 신하는 왕과 나라에 대한 충성과 선공후사의 공정심 및 왕에게 직언할 수 있는 용기 등이 신하다움이라 할 수 있겠다. 현대의 대통령과 장관 및 공무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5,000만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자리다. 밤잠을 설쳐가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걱정해야 하는 자리다. 5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대통령 취임식은 단지 산 정상에 오른 의식을 치르는 날이다. 그날부터 내려갈 날을 거슬러 세어가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어떤 대통령으로 남을지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치 신인답게 기존의 낡은 정치의 두꺼운 껍질을 깨뜨리는 개혁적인 대통령, 퇴임 후에 국민의 존경을 받는 대통령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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