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니스트
박종호 칼럼니스트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윤석열이 0.8% 차이로 힘들게 이겼다. 유례없는 최악의 ‘비호감 선거’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국민의 선택을 어렵게 만든 선거는 이번 한 번으로 족하다. 두 번 다시 있어서도 안 된다. 역대 선거 역시 치열했지만, 이번처럼 서로 죽기 살기로 선거를 치른 적이 없었다. 대통령 후보는 물론 국민도 이렇게 뚜렷하게 편을 가른 적이 없었다. 정권교체 요구가 높았던 것은 지난 5년간의 실정(失政)에 대한 불신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이 볼 때 지난 5년 동안 문재인 정권이 약속한 공약이 제대로 지켜진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라는 공약만 지켰다고 생각한다. 해방 후 70여 년 만에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의 역대 정부는 조금씩이라도 미래를 향해 전진해 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과 이념에 물든 정치로 지난 5년간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놨다. 국가가 국민을 편안하고 윤택하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국민이 나라를 걱정하게 했다. 문재인은 전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라 그를 지지하는 국민만을 위한 대통령처럼 보였다. 국정은 전문가가 아닌 정치적 이념을 같이하는 ‘586 세력’ 동지들이 나라를 주물러 왔다. 그 결과 양쪽 진영의 극심한 불신과 파국적 대립만 남았다. 이번 선거 결과가 극명하게 보여준다.

국민의 고통은 삶의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들의 폐업은 속출하고 청년 일자리는 없어졌다. 28번의 부동산 정책으로 집값을 두 배로 올려서 집 없는 서민과 청년들은 내 집 마련 꿈도 꾸지 못하게 만들었다. 기업 금고에는 돈이 넘쳐나지만, 민노총이 두려워 투자하기도 두렵다. 애국하는 심정으로 기업을 운영해온 기업인을 백안시하는 정부의 반기업 정책은 해외로 투자의 눈을 돌리게 했다. 핵으로 무장한 북한이 수시로 미사일을 쏘아대며 위협하지만 남의 집 마당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 구경하듯 했다. 국민은 북한에 대해 항의 한번 제대로 못 하는 정부와 무능한 군인을 믿지 못하게 됐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탈원전을 밀어붙여 중국산 태양광으로 전국의 산하를 뒤덮고 흑자기업인 한전을 10조 이상의 빚더미 위에 올려놨다. 혈맹인 미국과 우방인 일본과는 벽을 쌓아 멀리하고 중국에는 만절필동(萬折必東)의 정신으로 사대(事大)했다. 측근의 잘못은 ‘내로남불’로 처리하고 자기편의 이익을 먼저 챙겼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가 어렵게 지켜왔던 국가채무비율 40%를 무시하고 5년간 400조 이상의 빚을 내서 국가채무비율 50%를 넘겼다. 1,000조가 넘는 국가부채는 후임 정부와 청년세대가 부담해야 할 무거운 빚더미다. 이렇게 수많은 문제가 정권교체 요구를 높여 놓았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74년,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45년이 지났다. 그동안 대통령제와 4.19 후 잠깐의 내각제 및 유신 시절을 거쳐 1987년 이후 5년 단임제의 시대에 살고 있다. 선진국 중에서 대통령 단임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은 지난 45년 동안 나름대로 민주적 정권교체를 성공적으로 잘 해왔다. 하지만 대통령 한 사람의 능력에 따라 국가의 모든 일이 좌우되는 제왕적 대통령제는 어떤 방법으로든 손을 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제도의 잘못보다는 운영하는 사람의 잘못이 클 때가 많다. 한국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이 큼에도 불구하고 내각제를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정서가 있다. 역사 교과서를 통해 조선 시대의 사색 당쟁을 배우고, 현재 양당이 이전투구의 정쟁을 일삼는 것을 본 국민은 통합과 양보가 절대적인 내각제가 과연 한국에서 가능한 제도인지 의심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통합과 협치의 정치를 보여줘야 한다. 동서로 완벽하게 나눠진 선거 결과가 보여주듯 지방색이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윤석열과 이준석이 그 어느 때보다 호남에 공을 들였지만, 호남의 벽은 강철보다 강했다. 호남의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은 대통령으로서 호남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어떤 정부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정치인 출신이 아닌 윤석열이기에 기존의 낡은 정치를 버리고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다. 낡은 집을 수리해서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비용이 들더라도 깨끗하게 허물고 새로 집을 짓는 게 낫다. 하지만 역사의 연속성을 가진 국가를 깨끗하게 새로 짓기는 불가능하다. 어떻게 해서든 새집처럼 깨끗하게 수리해서 써야 한다. 그래서 개혁이 혁명보다 어려운 일이다. 기존 정치에 물들지 않은 윤석열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이 과감한 정치개혁은 때 묻지 않은 정치 신인에게 믿고 맡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윤석열은 공정과 상식을 내걸고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었다. 법치와 자유민주주의, 정의로운 사회 실현을 위한 많은 약속을 했다. 윤석열의 당면 과제는 지난 정권에서 왜곡되거나 잘못된 일들을 하루빨리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이다. 행정 수반으로서 각 행정부처 전문가인 공무원에게 소신껏 일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결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책임을 묻는 책임 행정이 자리 잡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많은 국민이 정권교체를 강력하게 원했던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윤석열이 짊어질 역사의 무게는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국가 개조를 위해, 명실상부한 선진국을 만들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똑같이 역사의 짐을 진 국민에게도 땀과 눈물을 요구해야 한다. 눈앞의 이익인 당근을 줄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해 채찍도 휘둘러야 한다. 대통령이 솔선수범하면 현명한 국민은 기꺼이 고통을 분담할 수 있다. 이런 노력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당장 윤석열 앞에는 어려운 경제를 살려야 하는 문제가 있다. 왜곡된 주변국과의 외교 관계도 복원하고 주적 앞에 무력해진 군인정신도 되살려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기업인의 투자 의욕을 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정상적인 민노총이 진정으로 노동자를 위한 노조로 바뀔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법에 따라 원칙적으로 대응하면 된다. 대통령의 자리는 명예보다는 고난이, 영광보다는 상처만 남는 외로운 자리다. 국민이 부른 윤석열은 누구에게도 정치적 빚이 없다. 오로지 국민에게 빚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법에 따라 상식적으로 공정하게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다. 국민만 바라보고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한 윤석열이기에 정의롭고 상식적이며 합리적으로 통합의 정치를 할 수 있다. 윤석열은 국민을 섬기는 정직한 머슴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을 상머슴으로 삼아 모든 공무원이 국민의 머슴이라는 자세로 일한다면 대한민국은 진정한 선진국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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