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길종 어르신, 40년 명맥에서 ‘기름질 옥(沃)’의 의미를 찾다①
유길종 어르신, 40년 명맥에서 ‘기름질 옥(沃)’의 의미를 찾다①
  • 김경희 작가
  • 승인 2022.03.03 0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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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유길종

여과지로 우려낸 삶, 불순물이 없어 정갈함으로 방점을 찍다.

옥* 지업사의 미닫이문을 열었다. 작은 난로 위에서 끓고 있는 양은 주전자, 옹기종기 둘러앉은 친구들, 끓고 있는 물처럼 친구의 담소도 따뜻한 훈기를 담고 모락모락 피어난다. 소박한 시골 점방(店房)을 그린 풍경화 한 편이다

도라지 물을 올려놓았지만 하루 종일 끓여서 마시고 물 붓고 또 마시고 물 부어서

사모님이 “이제 맹물됐어요”라고 하시며 싱겁다는 표정이시다. 맹물이 아닌 불순물이 없이 여과된 물이라고 말한들 따져 물을 이도 없을 것이다.

인생도 진한 삶을 살고 여과된 물만 남은들 어떠냐 옹기종기 모여서 한 모금씩 목을 축여주며 끝까지 그 몫을 해낸다. 옥* 지업사 유 사장의 친구들도 도란도란 둘러앉아 훈훈한 품으로 서로를 안았다.

나이 들어 맹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도라지 물을 다 우려낸 후라 역할을 다하고 맹물이 되었다. 맹물만 남았든 기저는 고사리 물이었다. 지금 어르신의 삶도 여과지로 우려낸 삶, 불순물이 없어 정갈할 뿐이다.

40년의 명맥, 옥* 지업사 ‘기름질 옥(沃)’의 의미를 찾다

작은 부락, 집이 아홉 호뿐이었던 고향에서 1969년도에 꿈 한번 펼쳐보겠다고 읍내로 나왔다.

한 자리에서 40년 동안 지업사를 하고 있다. 공간도 사람도 물건도 그대로, 40년 동안 옥* 지업사는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같이 나이 들어가는 친구들의 정담이 오가는 사랑방으로 남았지만 1980년대 경기 좋을 때는 옥수 지업사의 미닫이문이 매일 정신없이 열고 닫혔다. 로라(롤러)가 다 닳아 삐그덕 거리는 파열음이 옥수 지업사의 활황을 소리로 말해주고 있었다. 일의 양이 많아서 다 쳐내질 못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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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신부가 절하느라 얼굴도 보이지 않지만 그날이 생생하다

말하면 뭐 할까 곤궁한 유년 시절

5남매 중 가운데, 위로 누나 둘, 동생 둘이었는데 사는 건 말도 못했다. 쌀밥은 구경도 못하고 풀 죽만 겨우 먹고 살았다.

6.25전쟁 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려서 어머니 손을 꼭 붙잡고 다녔는데 그때가 전쟁인지도 몰랐다.

하루는 저녁에 인민군이 들이닥쳐 아랫방 윗방을 뒤지더니 총 세워놓고 군홧발 뻗고 밥 내놓으란다. 서릿발 같은 으름장에 어린 나도 벌벌 떨었다. 겨우 예닐곱 살 되었을까 어린 나이에도 아련한 기억이 있는 것 보니 놀란 가슴이 틀림없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총소리에 소름이 돋고 심장은 오그라들었다. 식구들과 같이 어디론가 피난을 가서 그 집 작은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소리도 못 내고 벌벌 떨고 있었다. 총소리에 숨이 턱턱 막혔다. 어린 나이에 전쟁은 내가 만난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매일이 전쟁이고 우리가 사는 여기가 전쟁터였다. 그 삶의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자가 되었다. 승부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막판에 코로나라는 녀석과 한 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나만 벌이는 전쟁이 아니니 위로하고 잘 버텨보련다.

유년을 기억하려면 어머니 생각에 하늘을 또 높이 올려다보아야 한다.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아서... 곤궁한 살림에 일찍 떠나신 아버님 몫까지 책임져야 하는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감히 짐작이나 했을까.

흰쌀밥은 동네에서 큰 소리께나 치는 사람들이 먹고, 우리 같은 소작농의 자식들은 풀죽이나 먹고 살았다. 살림이 조금 펴서 농사로 먹고 살았지만, 보리 콩 조금씩 입질이나 하고 좁쌀 정도가 양식이었다. 겨우 한숨 돌리는 시점에 청성・청마 초등학교 다니면서 부모님을 도와 주었다. 어린 나이에 다들 집안일을 거드느라 그때는 열 살만 되도 애 어른이었다.

청년, 먹고 살길을 찾아 대전 철도국, 기관차 조수로

집안 살림이 곤궁해서 먹고 살 궁리 중에 나는 대전 철도국에 취업을 했다. 철도국에 근무하고 월급을 받아보니 딱 쥐꼬리만 했다.

기관차 조수로 취직을 하고 기관사 옆에 앉아 신호를 봐가면서 기관사를 도왔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는데 씽씽 달리는 기차 안에서는 간간이 청춘의 끓는 피를 식히기도 했다.

누런 봉투에 담긴 첫 월급을 받고 입에 바람을 훅 넣어 봉투를 벌려보니 15,000원인가 종이 몇 장 달랑 들어있었다. 입에 풀칠이나 하는 꼴이라 청춘의 시간을 기관차 조수로 계속 묻어두기에는 암담했다. 다시 고향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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