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니스트
박종호 칼럼니스트

공자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천하를 다스리는 방책을 일개 선비(士)의 신분으로 개진한 선구자다. 공자의 선례가 있자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노자, 묵자, 열자, 맹자, 장자, 순자, 한비자 등이다. 공자의 유가(儒家)를 비롯해 소위 제자백가(諸子百家) 시대가 열리고 이들의 주장은 백가쟁명(百家爭鳴)이 됐다. 인과 의의 덕치(德治)를 주장한 유가와 겸애(兼愛)를 주장한 묵가, 무위(無爲)의 도가와 달리 법가는 엄격한 법치(法治)를 주장했다. 법가의 대표적인 인물은 상앙(商鞅)과 한비(韓非)다. 법치를 주장한 한비의 학설을 바탕으로 진시황은 중국 최초로 통일 제국을 세울 수 있었다. 제자백가의 다양한 이론 가운데 국가 통치에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것은 법가의 법치였다. 상앙과 한비가 주장한 법치는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무사(無私) 정신과 지위 및 인간적인 관계를 고려해서는 안 되는 냉철한 법 정신이 중요하다. 인정이나 사사로움이 끼어들면 법치가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5년 전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세우며 집권했다. 그 결과 전직 대통령 박근혜와 이명박뿐만 아니라 대법원장과 국정원장 등 수많은 공직자를 감옥에 보냈다. 박근혜는 4년 9개월, 1,737일 동안 감옥에서 보냈다. 재임 기간보다 더 긴 시간이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17년형을 선고받고 83세의 나이에 아직도 감옥에 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정권교체는 복수극이 돼 버렸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전직 대통령의 퇴임 이후는 비참했다. 망명하거나, 암살당하거나, 자살하거나 감옥에 갔다. 멀쩡하게 제대로 정권교체가 된 경우가 드물다. 복수는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야만 행위다. 민주주의는 ‘사적인 복수’를 금하고 ‘공적인 차원’의 사법 질서를 통해 정의를 구현한다. 이것이 법치다. 2,400여 년 전에 상앙이 주장했던 법치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차이라면 상앙의 법치는 왕권 강화 수단으로 쓰였지만, 현대 민주주의의 법치는 개개인의 자유와 사회 정의를 위해 쓰인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수많은 권력형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울산시장 선거 공작,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2조 원 규모의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태양광 사업 비리, 대장동 개발 비리, 성남FC 후원금 사용처, 백현동 용도 변경 의혹 등 수많은 사건이 판사 서랍에서 잠자고 있거나 검찰이 뭉개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친정부 성향의 판사와 검사에 의해 제대로 된 사법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공정과 정의를 외치며 집권한 문재인 정부에서 “법치가 무너졌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전 정권의 적폐를 열심히 수사한 공로로 검찰총장이 된 윤석열은 문재인의 당부처럼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다가 조국 수사를 기점으로 한순간에 타도 대상이 됐다. 문재인은 공약대로 임기 내내 검찰개혁을 한다면서 공수처도 만들고 검찰 조직의 힘도 뺐다. 하지만 어렵게 만든 공수처는 실적이 거의 없고 능력은 부족한 껍데기 수사처가 됐다. 그동안 문재인이 주장한 검찰개혁은 민주주의를 위한 법치 구현을 위한 개혁이 아니라 정권 보위를 위한 개악임이 드러났다. 어쩌면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문재인과 민주당은 여전히 검찰개혁을 주장할지도 모른다. 윤석열이 없는 검찰은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무력하다. 검찰개혁 역시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집행하는 사람의 자질 문제다. 정권 눈치나 보고 출세를 위해 영혼을 파는 비겁하고 이빨 빠진 칼을 든 검사들이 충성스러운 사냥개도 아닌 ‘정권의 푸들’ 노릇을 하는 한 검찰개혁은 요원하다.

선거를 한 달 앞둔 2월 9일, 윤석열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 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해야죠. (수사가) 돼야죠.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당연히 대통령은 수사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이런 발언에 대해 “현 장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 불법으로 몰았다”며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했다. 그러나 야당 후보가 전임 정권의 불법과 비리를 법대로 처리하겠다는데 왜 화를 내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해찬은 “윤석열, 어디 감히 文 정부 적폐란 말 입에 담느냐”고 했다. 전 정권의 적폐는 당연해도 문재인 정권은 무결점이라는 얘기다. 내로남불의 끝판왕이다. 속담에 ‘방귀 뀐 놈이 성낸다’라는 말이 있다. 잘못한 사람이 반성은커녕 도리어 성을 낸다는 뜻이다. 적반하장도 같은 뜻이다. 겁먹은 개가 사납게 짖는다. 죄가 없는 사람은 경찰과 검찰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문재인은 “당연한 일이다. 누구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법에 따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라고 의연하게 말하는 게 적폐 청산 대통령으로서 당연한 것 아닌가. 과거에 이재명도 "적폐와 불의를 청산하는 게 정치 보복이라면, 그런 정치 보복은 맨날 해도 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적폐(積弊)란 오랫동안 쌓인 폐단이고 청산(淸算)이란 서로 간의 채권·채무 관계를 깨끗하게 정리하거나 과거의 잘못된 관계나 일들을 깨끗이 씻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적폐 청산과 정치 보복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과거의 잘못을 정리하는 게 적폐 청산이고, 큰 잘못이 아닌데 죄를 만들어 억울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 정치 보복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다. 유독 한국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제로 한 이유도 부정과 부패를 막자는 의미가 크다. 권력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욕심이 나는 요물이기 때문이다. 모르는 산을 오를 때에는 하산할 수 있는 체력을 남겨놔야 한다. 험하고 높은 산일수록 더욱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산악 사고의 대부분은 체력이 고갈된 하산길에 발생한다. 대통령의 자리는 가장 험하고 높으며 누구도 가보지 않은 위험한 산이다. 누가 올라가든 내려갈 때를 준비해야 한다. 경치 좋다고 언제까지 산꼭대기에 앉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산길을 걱정 안 했다면 초보자가 애초에 무리하게 높은 산에 잘못 올라간 거고, 가이드가 있었는데도 조난을 당한다면 무면허 가이드에게 잘못 안내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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