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시대의 종언(終焉)을 기대한다
청와대 시대의 종언(終焉)을 기대한다
  • 박종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2.0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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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 칼럼니스트
박종호 칼럼니스트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윤석열은 “청와대를 해체하고 대통령실을 광화문 청사에 두겠다”라고 약속했다. 5년 전 문재인도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그러나 경호상의 문제 등을 이유로 실천하지 않아 문재인이 지키지 못한 수많은 헛약속 중 하나로 끝났다. 만약 윤석열이 청와대 시대를 끝내겠다는 공약을 지킨다면 역사적 상징성이 대단히 큰 사건이 될 것이다. 청와대 터는 고려 숙종 때 ‘도선비기’에 따라 서경인 송악에서 삼각산의 기운이 강한 한양으로 천도하기 위해 1104년에 남경(南京) 궁궐까지 조성했으나 실행되지 않았다. 1392년 조선이 들어서자 한양으로 도읍을 정하고 원래 남경 궁궐터에 경복궁을 지으려고 했으나 터가 협소하여 경복궁은 조금 아래 남쪽으로 자리를 잡고 남경 궁궐터는 경복궁 후원이 되었다. 임진왜란(1592~1598) 때 소실된 경복궁은 고종 때에 흥선대원군이 중건하면서 경복궁 후원 터를 경무대(景武臺)라 명명했다. 일제는 1939년에 경무대에 조선총독부 총독관저를 지어서 조선을 통치하고 해방 후에는 미군정 사령관인 존 하지 장군의 관저로도 쓰였다. 역사적으로 부끄러운 총독관저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가 되어 경무대라 불렀다. 경무대는 4.19 혁명으로 이승만 하야 후 윤보선 대통령 때 청와대로 개명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노태우 시절인 1991년에 일제 총독관저를 허물고 새로 지은 것이다.

미국 대통령 집무실은 하얀 벽 때문에 백악관(白堊館)이라 부르고 청와대는 푸른 기와지붕을 이고 있어 청와대(靑瓦臺)라 부른다. 미국 국민에게 친근하고 가까운 백악관과 달리 청와대는 지금도 구중궁궐(九重宮闕)이라고 말할 때가 있다. 문이 겹겹이 많아 접근하기 어렵다는 뜻의 구중궁궐은 임금이 사는 대궐을 말한다. 21세기에도 구중궁궐이란 말을 듣는 것은 청와대가 폐쇄적이고 권위적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또 다른 중의적인 의미는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박근혜가 그랬고 문재인이 그랬다. 청와대는 권력만 있고 소통이 없다. 청와대 안의 대통령은 수석과 보좌관의 인의 장막 속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주재의 국무회의는 형식적이고 청와대 수석이 모든 정책을 만들고 결정했다. 청와대 발언이 세질수록 각 부처 공무원들의 역할은 축소되고 수동적으로 됐다. 특히 문재인 정권의 행정부는 청와대 586 수석들의 정책에 대해 지난 5년 동안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낸 장관이 거의 없었다. 초기 김동연 기재부 장관만이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뿐이다. 대통령 후보 시절의 문재인은 소탈하면서 소통도 잘할 것 같고 권위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안하게 국민의 마음을 잘 알아주고 보듬어 줄 것 같았다. 그러나 대통령 문재인은 오히려 이전 정권보다 더 권위적이고 독선적이었다. 국민과는 불통이고 국민의 아픈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남 얘기하듯 하는 유체이탈식 화법은 부동산 가격 폭등에 화나고 코로나로 지친 국민의 염장을 질러댔다. 자랑할 일이 있을 땐 반드시 나타나지만 곤란한 경우에는 청와대에서 나오지 않았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낸 청와대 시대를 마감하고 광화문 시대를 연다는 것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 지난 80여 년간 청와대는 식민지와 미군정을 거쳐 대한민국 건국과 4.19와 5.16, 산업화와 유신독재, 민주화 투쟁과 문민정부 시대를 지나 명실공히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는 것을 묵묵히 지켜봤다. 대통령의 말로가 안 좋은 것은 풍수지리상 터가 안 좋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제도가 잘못된 게 아니라 운영하는 사람의 잘못이듯 청와대 터가 안 좋은 것이 아니라 역대 대통령이 통치를 잘못했기 때문이다. 광화문 시대는 선진국의 문턱에서 좌우 진영의 덫에 걸려 미래로 나가지 못하고 정체해 있는 한국 정치사에 획기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권위적이고 불통의 닫힌 공간에서 공개적이고 민주적이며 소통이 가능한 열린 공간으로 나오는 기회가 될 것이다. 대통령이 아침 일찍 집무실로 출근하고 행정부 각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수시로 회의하는 모습을 국민이 TV로 볼 수 있게 된다면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든든하고 믿음직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청와대 시대의 청산은 한 시대가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 권위의 시대에서 자유와 민주의 시대로, 닫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불통에서 소통으로, 독재에서 민주로, 과거에서 미래로, 복수의 정치에서 화합의 정치로, 분열의 정치에서 통합의 정치로, 무너진 법치를 바로 세우고 공정과 상식의 시대로 가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은 다양한 계층의 의견과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와 소수의 자기 진영 이익이 아닌 대다수 국민을 만족시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대통령은 지엽적이고 단편적인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큰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가 돼야 한다. 대다수 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인 먹고사는 경제문제는 경제 전문가와 기업인에게 맡기고 국민통합의 큰 정치를 해야 한다. 권위주의와 독선으로 빛을 잃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회복시켜야 한다.

새 시대의 대통령은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이념 갈등과 빈부 갈등, 노사갈등, 세대 갈등, 남녀 갈등 등 사분오열된 국론을 치유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오히려 과거 어느 때 보다 심한 분열과 반목을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 후보의 자질 문제뿐만 아니라 부인들의 문제도 시끄럽다. 수준 이하의 대통령 선거는 지켜보는 국민의 눈을 흐리게 하고 마음을 어둡게 한다. 과학 문명은 발달하고 사회는 나날이 발전하는데 오히려 선거 수준은 갈수록 퇴보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공정과 정의를 실현하고 국민에게 희망과 꿈을 주는 정책을 펴야 한다. 눈앞의 인기 때문에 빚을 내서 돈을 뿌리는 대통령이 아닌 미래를 위한 고통의 눈물과 노력의 땀을 함께 흘리자고 외치고 설득하는 대통령이 돼야 한다. 수많은 잘못이 있었던 과거 역사와의 단절을 위해서라도 청와대가 아닌 광화문 대통령 집무실 시대가 반드시 열리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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