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니스트
박종호 칼럼니스트

윤동주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면서 괴로워했다. 가난한 식민지 유학생이 느꼈을 부끄러움과 풍요롭고 자유로운 민주국가에서 사는 우리가 느끼는 부끄러움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부끄럽지 않게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인은 지금껏 남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해서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이제는 남의 눈을 의식해서가 아닌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할 때다. 그러나 아직도 후진국 땟국물이 우리 사회 곳곳에 많이 남아있다. 수많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은 남부끄럽지 않게 자식을 키울 욕심과 돈을 벌기 위한 부동산 투기용 위장전입이 많았고 논문 표절 등 과거 관행처럼 했던 일들 때문이었다. 한결같이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생긴 가치관의 변화로 사회적 기준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이 지금은 용서받기 힘들다.

맹자는 의롭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않음을 미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의(義)라 했다. 국가의 부(富)는 경제인이 만들고, 나라의 흥망성쇠는 정치인의 손에 달렸다. 그 어떤 조직보다도 정치인의 정의로움이 더 요구되는 까닭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대한민국의 그 어떤 조직보다도 정치 집단이 가장 변화가 느리고 부끄러운 짓도 많이 한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당의 이익과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한 집단처럼 보인다.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지방자치제를 하면서 시의원과 도의원까지 넘쳐난다. 정치인의 숫자가 늘어남에 비례해서 그들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함은 오히려 더 두꺼워졌다. 조국은 위선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이재명의 몰염치는 평범한 사람은 도저히 이해하기조차 어렵다. 전과 4범의 전력과 김부선 스캔들, 형수 쌍욕 통화, 지역 조폭 연루설, 대장동 의혹 등 웬만한 정치인은 한가지라도 견디기 힘든 사건들이다. 그러나 이재명은 대수롭지 않게 마치 남 얘기하듯 천연덕스럽게 “그건 잘못한 것이니 사과합니다”라고 간단히 끝내버린다. 이재명처럼 평범하지 않은 정신세계 소유자에게 염치를 말한다는 자체가 무색하다. 국민의힘 윤석열도 부인의 허위경력 문제로 곤욕을 겪고 부인이 직접 사과까지 했다. 이런 대통령 후보들을 바라보는 국민이 오히려 부끄럽다.

최근 국민의힘 이준석 당 대표의 과거 행실이 문제가 됐다. ‘가로세로 연구소’의 강용석이 8년 전 이준석이 기업인으로부터 성 상납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37세의 젊은 당 대표의 정치 인생이 달린 문제다. 성(性) 문제는 민주당의 전유물로 알았는데 젊은 보수 개혁주의자가 부도덕하고 의롭지 못한 부끄러운 짓을 했다면 당연히 지탄을 면하기 어렵다. 정치인뿐만이 아니다. 이재명이 설계했다고 자랑한 대장동 사건에 박영수 특검과 곽상도 의원, 권순일 대법관, 김수남 검찰총장 등 50억 클럽 멤버라는 사람들은 전직 법조인이다. 이 세상에 비밀은 있을 수 없다. 모든 통화는 녹취되고 CCTV가 없는 곳이 없다. 부정에 대한 내부고발이 활발해지고 국민 의식 수준이 달라지면 하늘 아래 감춰질 수 있는 진실은 있을 수 없다. 문재인의 탈원전에 대한 진실도 밝혀져야 한다. 무슨 이유로 탈원전을 추진했는지, 산자부 관료와 한수원 직원이 실행한 탈원전 과정에 부당한 압력은 없었는지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대북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비핵화 요구는 강력하게 하지도 못하면서 왜 일방적으로 북한 입장만 대변했는지 밝혀야 한다. 도대체 왜 임기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 ‘종전선언’을 서둘러서 하려고 했는지와 대북 송금 사건으로 감옥까지 갔다 온 고령의 박지원을 왜 굳이 국정원장으로 만들어야 했는지, 혹시 박지원이 예전처럼 북한에 돈을 갖다 바치지는 않았는지 등의 진실을 밝혀서 역사에 남겨야 한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국민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때 시작한 교육시스템이 조금도 바뀌지 않아 불가능하다. 교육제도가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의 의식변화를 바라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다. 국민이 바뀌기 위해서는 교육부터 혁신적으로 변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교육은 오로지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한 획일적인 교육을 해왔다. 이런 교육의 폐해가 지금 사회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정직하고 양심적인 인간이 아닌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을 양성한 결과다. 오로지 성적이 모든 것을 좌우하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과만 좋으면 과정이 미화되는 사회를 만들어 왔다. 이런 사회가 수도 없이 많은 이재명과 김건희와 조국과 김의겸을 만들었다. 우리 사회의 내로남불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교육을 해왔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중용(中庸)에 군자는 “보지 않는 곳에서 삼가고(戒愼乎其所不睹, 계신호기소불도), 들리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두려워하라(恐懼乎其所不聞, 공구호기소불문)”고 했다. 즉 혼자 있을 때 스스로 몸가짐을 조심하라는 잠언이다. 수신(修身)의 최고 단계인 신독(愼獨)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럽지 않은 떳떳한 인간이 되라는 말이다. 대한민국 정치인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이해관계가 복잡다단한 사회일수록 정직한 정치인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나라와 국민이 편하고 국가가 부강해지는 법과 제도를 정치인이 만들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뒷돈을 받아먹고 야합하거나 본인 영달을 위해 부끄러운 짓을 하는 것은 국민과 국가를 배신하고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교육은 경쟁에 단련된 시험 기술자만 양성하고 인성교육에는 소홀히 했다. 이제부터라도 교육제도 개혁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지금 당장 각자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양심학교에 등록해야 한다. 정치인은 적어도 양심에 부끄럽지 않도록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해야 한다. 양심에 어긋나도 잘못인지 모른다거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한 인간을 우리는 ‘사악한 인간’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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