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니스트
박종호 칼럼니스트

세계는 무한 경쟁으로 피가 튀는 살벌한 무대다. 1등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 올림픽은 냉정한 경쟁을 통해 순위를 결정한다. 올림픽에서는 메달을 못 따더라도 참가에 의미를 둔다. 그러나 경제올림픽에서는 1등을 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올림픽 메달은 국력에 비례하듯 국가 경제력은 무역 규모로, 과학과 기술 수준은 노벨상 수상자 숫자로 평가한다. 한국 무역 규모가 지난 10월 중 1조 달러를 넘어 세계 8위를 기록했다. 60년대 수출품이 가발뿐이던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한국은 반도체와 조선,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에서 세계 1등 제품이 많아졌다. 삼성 이건희는 1993년 프랑크푸르트 임원 회의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든 것을 다 바꿔라”라고 선언하고 대대적인 변화와 혁신을 했다. 이후 삼성전자의 반도체와 가전제품은 세계 1위가 됐다. 한때 전 세계를 무대로 압도적인 기술력을 자랑하던 일본의 가전제품도 삼성과 LG가 가볍게 눌러버렸다. 이처럼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 죽을 각오로 개혁해서 오늘날의 한국 경제를 만들었다. 자랑스럽고 국민이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최근 K-컬처의 발전이 눈부시다. 한국을 의미하는 K-○○ 라는 한국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류(Hallyu)라는 이름으로 음악, 영화, 드라마, 웹툰, 음식까지 널리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한류 덕분에 전 세계에서 한글을 배우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국 기업들을 백악관에 초청해 미국에 직접 투자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고 한국 가수가 빌보드차트 1위를 하고 그래미상 후보가 됐다. 한국이 만든 영화에 전 세계인이 열광한다. 이렇게 한국 문화예술의 능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세계 1위의 제품도 많아졌다. 한국의 경제와 문화, 예술 분야의 발전은 눈부신데 유독 한국의 정치와 외교는 나날이 퇴보하고 있다. 이건희는 1995년 베이징에서 특파원들과의 대담에서 “우리나라 행정력은 삼류, 정치력은 4류, 기업경쟁력은 2류”라고 정치를 비난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재계 총수가 해외에 나가서 이런 말을 했겠는가? 26년이 지났다. 이류 기업이라던 삼성전자를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만든 지하의 이건희에게 지금의 한국은 어떠냐고 묻는다. “문화는 일류가 됐고, 기업도 일부가 일류가 됐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관료집단과 행정력은 오히려 4류로 떨어지고, 정치 수준은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다”라고 말할 것이다. 모든 분야가 예전보다 많이 발전했는데 유독 정치만 퇴행했다. 정치인들은 수십 년 정치에 몸담은 자기들 대신 정치를 생각지도 않던 검찰총장을 왜 국민이 야당 대통령 후보로 불러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한국은 1996.12.12일 OECD 회원국이 됐다. 당시 13,403달러였던 1인당 명목 GDP가 현재는 35,195달러(IMF, 2021.10월 추정치)다. 경제력으로 선진국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그러나 자신 있게 한국이 선진국이라고 얘기하기가 껄끄럽다. 선진국이란 경제력은 물론 이를 뒷받침할 문화·예술 및 국민의 수준이나 삶의 질이 높은 국가를 말한다. 경제력으로는 분명 선진국인데 국민은 모두 못살겠다고 한다. 예전보다 삶의 수준은 높아졌는데 행복 지수는 낮다. 국민의 교육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눈만 뜨면 접하는 정치 수준은 하류다. 한국 정치에 타협과 협치가 없다. 오직 정권을 잡기 위한 편 가르기로 국민이 나라 걱정을 하게 만든다. 경제력과 문화 수준은 대학생인데 행정력은 중학생, 정치는 초등학생 수준 밖에 안 된다. 코로나 사태는 행정 무능을 그대로 보여줬다.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이 안 보인다. 문재인 정권은 코로나 초기 방역에 실패하고 오직 국민에게 방역 책임을 떠넘겼다. 말 잘 듣는 국민은 지난 2년 동안 가게 문 닫으라면 닫고, 만나지 말라면 안 만나고, 마스크 쓰라고 하니 철저하게 마스크를 썼다. 의료진의 몸을 사리지 않는 헌신과 국민의 협조로 다른 나라에 비해 확진자와 사망자가 현저하게 낮았다. 이것을 두고 문재인은 ‘K-방역’이라고 전 세계에 자랑했다. 마치 뛰어난 행정력과 자신의 지도력에 의한 영광인 것처럼 많은 예산을 들여 광고까지 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방역 정책은 번번이 한두 박자씩 늦었다. 선진국이 화이자와 모더나 등 ‘mRNA 백신’을 확보할 때 청와대 방역기획관이 된 기모란은 “백신 구매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라고 했다. 보건 비전문가인 박능후 장관도 백신 구매를 미뤘다. 나중에 시기를 놓쳐 화이자와 모더나를 구매할 수 없게 되자 어쩔 수 없이 효력이 떨어지는 아스트라제네카를 구매했다. 많은 나라가 백신을 일찍 맞고 위드 코로나를 할 때도 한국은 철저한 사회적 거리두기만으로 확진자를 줄였다. 그 결과 2년 가까이 영업을 못 한 자영업자의 비명이 높아지자 문재인은 확진자 만 명까지도 괜찮다면서 지난 11월에 ‘위드 코로나’를 시작했다. 위드 코로나 한 달여의 결과는 처참한 실패다. 병상 확보도 안 하고, 부스터 샷도 없는 이것이 문재인 정부 K-방역의 실상이다. 지금까지 국민과 의료진의 노력으로 버틴 것이지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처한 것이 거의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정통 관료와 각 부 장관의 목소리가 안 들린다. 월성 원자력 폐쇄 문제를 백운규 장관에게 소신껏 보고한 산자부 공무원은 “너 죽을래?”라는 말을 듣고 자료를 조작했다. 최근에 온 나라를 벌집 쑤신 것처럼 시끄럽게 한 요소수 부족도 산업통상자원부 직원들은 미리 대처했어야 했다. 하지만 장관이 비겁한데 먼저 나서서 소신껏 일할 공무원을 찾기는 쉽지 않다. 기획재정부 장관 홍남기는 대통령 비위 맞추는 ‘소신 꺾기’로 부끄러운 역대 최장수 장관이 됐다. 나라 곳간을 지켜야 하는 기재부는 엄청난 국가부채와 마구잡이로 늘어나는 추경 예산에 대해 누구 하나 소신 있는 목소리를 못 낸다. 장관이 줏대가 없으니 직원의 침묵은 당연하다. 문재인 정권 초기 적자국채 발행을 폭로한 신재민 기획재정부 사무관은 ‘공무상 비밀 누설’ 및 ‘공공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재부로부터 고소·고발당했다. 공무원 신분으로 정책의 부당함을 밝혔다가 정부로부터 고소당해서 사표 쓰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다. 이런 풍토에서 공무원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뭔가 해주기를 기대하기는 무리다. 행정력이 4류가 된 이유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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