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니스트
박종호 칼럼니스트

윤석열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후 거의 한 달 동안 지지자들을 지치게 만든 국민의힘 내홍이 끝났다. 윤석열은 당 경선이 끝나고 컨벤션 효과로 지지율이 치솟으며 이재명과의 격차를 크게 벌렸었다. 그러나 선대위 구성을 둘러싼 잡음은 지지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중도층 마음은 떠나보냈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과 달리 지리멸렬한 야당 모습에 실망한 여론은 단숨에 이재명과의 지지율 차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돌아섰다. 당연하게 보였던 지지율 격차가 이준석의 일탈과 김종인의 고집으로 순식간에 뒤집힐 수도 있다는 현실을 보여줬다. 윤석열의 리더십이 불안하게 보였고 젊은 당 대표조차 포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더구나 “그러면 여기까지입니다”라는 짧은 말을 남기고 당 대표가 잠적하고, 선거의 달인이라는 김종인은 윤석열을 다시 볼 일이 없을 것처럼 “주접을 떤다”라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화난 표정으로 내뱉었다. 모든 게 끝난 것처럼 보였다.

지난 7월 이준석은 윤석열의 입당을 촉구하면서 비빔밥 얘기를 했다. 국민의힘이 대통령 선거를 위해 준비하는 비빔밥에 윤석열이라는 당근만 들어오면 완성된다고 했다. 반문재인과 정권교체를 위해 가능한 모든 대권 주자들은 국민의힘이라는 빅텐트 안에 모여야 한다는 의미를 비빔밥에 비유한 것이다. 정당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정치 결사체다. 지역과 성별, 교육과 직업 등과 관계없이 당의 정강과 정책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비빔밥이라는 표현은 일리가 있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고명 개개의 가치와 경중은 따질 필요가 없다. 기능과 효용을 나타내는 색과 맛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값이면 구색을 갖춘 보기 좋은 비빔밥을 손님이 많이 찾을 것이다. 당 대표는 당연히 보기에도 좋고 맛도 훌륭한 잘 팔리는 비빔밥을 만들면 된다. 주방장은 음식을 잘 만드는 솜씨가 중요하지, 인물이나 인성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실력 있는 주방장은 자기 기술만 믿고 한 성깔씩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주방장의 엉덩이를 적당하게 두드려주고 잘 구슬려서 말썽을 부리지 않게 해야 유능한 식당 주인이다. 자존심이 상해도 자기가 어느 정도 요리를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절대 주방장의 비위를 건드리면 안 된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한다. 수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귀신도 모른다. 참으로 요망한 게 정치다. 정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기 생각보다 당론에 따라 말도 안 되는 법안을 지지하고, 수시로 안면을 바꾸는 뻔뻔함과 일구이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어야 정치인이 될 수 있다. 정치인들은 필요하면 언제든지 정당 이름도 수시로 바꾼다. 심지어 소속 정당마저 바꿔버리는 정치인도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을 힘들게 했던 국민의힘 내홍이 하룻밤 만에 해결이 돼서 과연 정치가 생물이란 걸 보여줬다. 윤석열은 경선에 패한 후 선대위에 합류하지 않던 홍준표를 전격적으로 만났다. 홍준표 코치대로 바로 다음 날 울산으로 달려가서 이준석과 극적인 화해를 했다. 같은 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던 것처럼 보였던 김종인까지 윤석열을 돕겠다고 나섰다. 윤석열의 결단력과 리더십및 포용력이 한순간에 빛을 발했다. 불안했던 12월 6일의 국민의힘 중앙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도 무사히 끝났다. 이제 모든 것이 후보를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며 선거에 대한 모든 책임도 오롯이 후보가 져야 한다. 비빔밥을 완성코자 했던 이준석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이제부터는 윤석열이 선거판을 요리해야 한다.

윤석열은 요리를 잘한다. 단순히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진심으로 요리를 즐기고 남을 위해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윤석열은 100가지 중 99가지가 다르더라도 정권교체 열망만 같다면 힘을 합쳐야 한다고 했다. 이런 윤석열에게 국민 통합과 정권교체를 위한 섞어찌개를 주문한다. 온갖 재료를 담아서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가 만든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갈등과 불화를 녹여낼 수 있는 섞어찌개를 만들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대한민국을 지역과 이념으로 나누고 빈부 차이로 국민을 갈라치고 남녀와 세대 간의 갈등을 조장했다. 야당과 타협과 협치를 통한 공생이 아니라 오직 자기들만의 독단으로 국민이 정치에 대한 염증을 느끼게 했다. 국민에게 정신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생존의 고통을 주었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전라도와 경상도의 벽도 허무는 섞어찌개를 끓여야 한다. 남녀 갈등과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넓은 간격을 메우고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같이 먹을 수 있는 섞어찌개를 만들어야 한다. 여야 간 불통과 싸움이 아닌 대화와 교섭 및 타협과 절충이라는 대의 정치의 기본이 이뤄질 수 있는 정권교체를 위해 반드시 안철수도 녹아든 섞어찌개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당은 섞어찌개와 같이 다른 맛이 섞이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정당이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재료만 넣고 자기 식구들만 맛있게 먹었다. 이웃집의 배고픔과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식구들 배만 채웠다.

윤석열은 대한민국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정치를 해야 한다. 야만의 정치가 아닌 문명의 정치를 해야 한다. 야만의 정치는 법치가 실종되고 상식이 안 통하고 공정하지도 않으며 오직 내 편만을 위해 높은 담장과 대문을 만들어서 생각이 다른 사람은 절대 들어올 수 없게 한다. 또, 내 편이 아니면 상대가 누구건 모두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야만의 정치다. 나와 다른 생각도 인정해 주고 자신의 잘못은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정직한 정치가 문명정치다. 국민은 독재가 야만의 정치이기 때문에 싫어한다. 야만의 정치는 국민의 생각이 미개할 때는 통한다. 그러나 깨어있는 문명 국민은 야만의 정치를 견딜 수가 없다. 염치없고 불공정하고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하지 않으며 거짓과 위선이 판치는 야만의 정치는 앞으로 이 땅에 존재해선 안 된다. 윤석열의 대한민국은 법치와 공정과 상식과 자유로운 경쟁과 개개인의 개성이 빛나는 문명정치를 통해 선진국으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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