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니스트
박종호 칼럼니스트

‘못 박기’란 말이 있다. 연장 가방을 옆에 차고 못질만 제대로 할 줄 알면 목수 대접을 받는다. 못질은 삶과 죽음의 경계도 만든다. 사람 사는 양택을 지을 때와 음택에 들어가는 관뚜껑을 덮을 때도 못질을 한다. 기본적으로 못질은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 시키기 위해 사용한다. 추상적 의미의 못질은 ‘남의 마음에 상처를 줄 때’다. 또 다른 뜻으로 ‘서로의 약속을 다짐할 때’ 사용한다. 마음에 상처를 주는 못질 중에도 자식이 부모에게 모진 말을 할 때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라는 말을 한다. 부모 가슴에 박힌 못은 좀처럼 뽑기 힘들지만, 자식이기에 참고 견디며 산다. 정치권에서 좋아하는 ‘못 박기’도 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 부처 기자실을 폐쇄하면서 "다음 정권에서 기자실이 되살아날 것 같아서 확실히 대못질해버리고 넘겨주려 한다"라고 했다. 또 제주도 서귀포시의 혁신도시 기공식 연설에서 “제 임기 안에 첫 삽을 뜨고 말뚝을 박고 대못을 박아버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때 국민은 처음으로 대통령의 입에서 “대못을 박는다”라는 말을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어법은 거칠고 솔직했다. 노무현은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해서 좌파 진영과 젊은 유권자의 절대적인 지지로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좌파 진영 선봉인 노무현은 대통령이 된 뒤 국가를 통치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반미면 어떻냐던 노무현은 국익을 위해서 좌파 지지자들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강정 해군기지 건설과 한국군의 이라크파병을 강행했다. 평소 반미주의와 친북주의적 발언을 했지만, 정치인으로서 국가를 위해 진영 논리에서 벗어난 결정을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대통령이었다. 노무현 정신을 이어받았다는 민주당은 노무현의 정신이 아니라 이름만 빌렸다. 노무현처럼 국가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라를 망가뜨리려고 작정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정책을 양산했다. 문재인은 노무현 정권의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으로서 노무현의 거친 말투에 국민의 거부감이 거센 것을 옆에서 지켜봤다. 지난 5년간 문재인은 노무현의 거친 말실수를 반면교사 삼아 말없이 대못을 박아왔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대못을 나라 곳곳에 박아놨다. 누구든지 못을 박기는 쉽다. 그러나 잘못 박힌 못은 빼기가 어렵다. 설령 뺀다 해도 못 자국이 보기 흉한 상처로 남는다.

문재인의 가장 대표적인 ’대못 박기‘는 탈원전을 빙자한 원자력산업 말살이다. 문재인은 안전성을 문제 삼고 발전 비용이 싸지도 않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세계 제일의 원전 기술을 보유한 한국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중단시켰다. 원자력 대신 태양광으로 대체한다고 전 국토의 70%가 산지인 한국의 산을 파헤치고 저수지를 덮었다. 또 다른 ’소득 주도 성장‘이란 대못으로 자영업자와 영세 중소기업들의 폐업을 유도했다. 문재인 케어라는 이름으로 무차별적으로 보험 혜택을 늘려서 흑자였던 건보재정을 단숨에 적자로 만든 의료보험 대못도 박았다. 무엇보다 국민이 삶에서 절실하게 느끼는 대못은 부동산에 박은 대못이다. 멀쩡하게 안정되어 있던 부동산을 잡겠다고 26번이나 대책을 세워서 부동산가격을 폭등시켰다. 그렇게 해서 2020년과 비교해 3배나 폭증한 5조7,000억의 종부세를 걷는다. 지난 10년 동안 징수한 종부세와 비슷한 금액이다. 결국 돈 퍼주는 포퓰리즘을 위해 부동산가격을 폭등시키고, 종부세와 재산세를 올려서 충당하려고 대못을 박은 것으로 보인다. 그 돈으로 국민 위로금을 주고 유권자의 표를 산다. 또 다른 대못은 엄청나게 늘어난 공무원이다. 정부가 일자리 만든다고 공무원을 대폭 늘려서 일 안 하고 앉아 있는 공무원이 남아돈다. 문재인의 임기 중 마지막 대못은 ’종전선언‘이 될 것 같다. 대북 관계는 더 나빠졌는데 뜬금없이 종전선언에 목을 매고 있다.

좌파는 대못의 위력을 안다. 그래서 국회 180석으로 많은 대못을 박아 놨다. 정권이 바뀌면 이렇게 박힌 대못 뽑기에 많은 시간이 들어갈 것이다. 세계는 4차, 5차 산업을 향해 앞서서 뛰어가는데 우리는 제자리에 주저앉아서 못 뽑기만 하게 될지도 모른다. 문재인의 민주당은 현금을 살포해서 표를 얻고 국민을 없는 자와 있는 자로 편 갈라서 장기 집권을 꾀했다. 그래서 20년, 50년 집권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번 깊이 박힌 대못의 위력을 알기에 자신 있게 장기 집권을 욕심낸 것이다. 하지만 몇 년 사이에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이 바뀌었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는 차고 넘쳤다. 반면에 국민의힘은 지지율 5%가 넘는 후보조차 없었다. ‘좌파는 부패로 망한다’라는 말처럼 민주당은 자멸했다. 안희정을 필두로 박원순과 오거돈이 성 추문으로 자살하거나 감옥에 갔다. 문재인의 복심으로 촉망받던 김경수는 드루킹 사건으로 감옥에 있다. 대장동 특혜의혹의 핵심 인물인 이재명은 선거법 위반으로 경기도 지사에서 물러날 위기에서 권순일 대법관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해서 대통령 후보가 됐다. 과연 이재명이 대장동 특검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대장동 몸통이 모두 감옥에 있는데 스스로 설계자라고 자랑한 이재명이 안전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좌파의 대못이 박히는 걸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철저히 무능했다. 국민의 정권교체 열망은 뜨거운데 내세울 후보조차 없었다. 만일 윤석열이 아니었다면 도대체 누가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단 말인가. 지난 5년간의 문재인 정권 실정은 선거로 심판받으면 된다. 그러나 온 나라 곳곳에 박혀있는 대못 뽑는 일은 차기 정권이 책임질 일이다. 아무렇게나 함부로 할 수도 없다. 못 박는 일보다 깨끗하게 뽑는 일이 몇 배 더 어렵다. 어쩌면 영원히 상처와 흔적이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차기 대통령은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깊숙이 박힌 대못을 정형외과 의사처럼 잘 뽑고, 솜씨 좋은 성형외과 의사처럼 흉터가 안 남게 수술을 잘해야 한다. 엉터리 목수 180명이 잘못 지어 놓은 집을 깨끗이 허물고 새집을 지을 수 있으면 제일 좋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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