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86세 김순례 어머니 Ⅱ
[자서전] 86세 김순례 어머니 Ⅱ
  • 고양일보
  • 승인 2021.11.0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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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철학자, 헛헛한 올가미를 벗어버리자 그득하니 마음이 滿船(만선)이다

가끔씩 글쟁이가 아니라 그림 그리는 화가로 변신하는 날이 있다. 그날도 마음의 물감을 풀어 정물화 한 점 그렸다. 나란히 옹기종기 앉은 장독대, 투박한 항아리였던 장독대를 한 폭의 그림 속에 앉혔다. 낮은 담장 아래 봉숭아꽃 옆에 앉혀 놓으니 근사하다.

“어르신 봉숭아꽃 너무 예쁘네요. 잘 가꾸셨어요.”

“아니 내가 안 심었어. 저절로 폈어.”

비바람이 휘몰아쳐도 눈보라가 밀려와도 때마다 그 날이면 알아서 착착 자기 자리를 지켜.

변덕스럽고 궂은 날 좋은 날 유난떠는 사람들보다 훨씬 양반이야“

어르신도 꽃들에게 인생을 배우고 우리는 집안의 철학자가 된 어르신에게 또 배운다.

자연은 어느새 우리와 지경을 달리한다.

86세 김순례 어머니
86세 김순례 어머니

■ 여북하면(오죽하면) 절간으로 갔을까!

수원, 여주, 이천을 전전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아들이 장가갈 때가 돼서 나를 찾아왔다. 그래도 잘 자라줘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많았는데 나는 한 번 더 인생의 회오리바람을 맞고 또 쓰러졌다. 아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피눈물을 또 흘려야 했다. 더 이상 살아갈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 머리 깎고 중이 되려고 절간으로 들어갔다. 스님이 눈을 지그시 감고 한마디 건네셨다.

“이미 세상을 알아버려서 절에서 못산다.”

고 받아주지도 않았다.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 것인지. 절에서도 안 받아줘, 목숨은 거둬가지도 않아 야속하고 가혹하고 내 인생은 그저 암흑이었다.

그때가 우동 한 그릇 500원 할 때인데 육수 내고 내버리는 국물을 떠먹으면서 버텼다. 나 사는 것도 기막힌데 어떤 맹인 엄마 품속에 아이가 배고파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저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국수 한 그릇 먹이고 나는 그 끼니를 굶었다.

낮은 담장 밑, 꽃들에게 배우다
낮은 담장 밑, 꽃들에게 배우다

■ 낮은 담장 밑, 꽃들에게 배우다

절간까지 들어갔다가 다시 세상으로 내몰려 고향으로 24년 전에 돌아왔다. 산전수전을 다 겪고 환갑 무렵에 안식처를 찾아 돌아왔다. 윗분들이 돌아가셨지만 나이 들어 찾은 우리 집은 어머니 품처럼 따뜻했다. 살면서 하도 폭폭한 일들이 많아서 그때마다 일기를 써놓았는데 이사 다니면서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가 어려웠다.

혼자 있던 나에게 친구가 남편을 소개해줬다. 월남에도 다녀오고 군인으로 제대해서 대전 라쌍데 백화점에 근무하는 건실한 사람이었다. 둘 다 혼자 있는 사람들이라 친구가 주선을 하고 우리는 같이 나이 들어가기로 언약을 했다. 그 인생을 돌고 돌아온 것이 지금의 착한 남편을 만나려는 고행길이 아니었다 싶다.

나도 옥천 와서 부지런떨면서 일을 했고 남편이 내 일도 도와주면서 차차로 정이 들었다.

프로포즈 하면서 3천 원짜리 국수를 사줬지만 소박하고 인정 있는 마음에 같이 등 긁어주면서 나이 들기로 했다. 사실 여자는 남자의 부속품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부속품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릴 수도 있지만 그건 남편을 위해 내 욕심도 내어주고 남편을 돋보이게 해주는 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라는 말이다. 폼나는 말을 잘 몰라서 내 방식이 언어다.

간간이 마당에 핀 꽃들을 보면서 나도 저 꽃처럼 순하고 예쁘게 살았을까? 나에게 묻는다.

사람한테 밟혀도 군말 없이 예쁘기만 한 꽃들을 보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희로애락이 들끓는, 봉숭아꽃 한 송이만도 못한 우리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절로 혀끝을 찬다.

젊어서는 나도 꽃이었지만 척박하고 거친 황무지에서 살아내느라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꽃이었다. 오히려 지금 남편을 만나 나이 들어가면서 만개한 꽃이 되었다. 나를 꽃처럼 예뻐해 주고 떠받들어주니 그저 고마운 양반이다.

때때로 밤이면 툇마루에 나와 휘영청 뜬 달을 보고 있자면 온 세상의 희로애락을 지그시 품고 아무 말 없이 세상을 비춰주는데 나는 남들한테 한 줄기 빛이 되어 준 적이 있었나 나에게 묻는다. 꽃이며 달이며 말 한마디 할 줄 모르지만 우리 인간의 지경을 넘어섰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눈물이 가득 고였다가 차고 넘쳐서 주루룩 흘러내릴 때가 많다.

하지만 이제 그 눈물은 애통한 마음을 담지 않았다. 꽃처럼 예쁜 할매로 살아가는

마당예의 24시간이 너무 고와서 흘리는 눈물이다.

나도 이제 더 이상 활짝 필 일은 없다. 그저 어여삐 지는 일만 남았다.

어느 당나라 시인은 한 조각 꽃잎이 날려도 봄빛이 깎인다고 했다.

낮은 담장 밑에 동그마니 앉은 봉숭아 꽃잎이 촘촘히 달려 그 어여쁨에 내내

눈길이 멈춘다. 그래 평생 나를 가르치고 지켜준 건 키 작은 봉숭아꽃이었어. 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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