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니스트
박종호 칼럼니스트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뽑는 기준은 身, 言, 書, 判(신언서판)이다. 신(身)은 그 사람의 용모와 풍채를, 언(言)은 언변을, 서(書)는 공부한 정도를, 판(判)은 문리를 통해 사물을 분별하는 판단력을 본다. 2022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후보의 경쟁이 뜨겁다. 여당은 이미 이재명이 후보로 결정됐다. 야당은 네 사람이 최종 후보를 결정하기 위한 토론회를 치열하게 하고 있다. 국민은 TV를 통해 후보들의 표정과 행동을 보고(身), 말을 들어보며(言), 상대방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얼마만큼 정확히 알고 있는지 그 사람의 지적 능력을 본다(書). 최종적으로 토론회 전체를 통해 얼마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판단해서 선택한다(判). 기업조차도 우수한 직원을 뽑기 위해서 반드시 면접을 본다. 하물며 한 나라를 책임지고 국민의 삶과 운명을 좌우하는 대통령은 신언서판의 가장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서 판단해야 한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현직 도지사로서 경기도 국정감사에 직접 나와서 단군 이래 최대의 토건 비리라는 대장동 게이트에 대해 직접 답변했다. 야당 의원의 질문에 시종 비아냥대고, 일부러 크게 헛웃음을 터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답변만 했다. 과연 대통령으로서의 자질과 품격을 갖춘 후보인지는 이재명의 신언서판을 보고 국민이 판단할 문제다. 야당의 홍준표 후보는 시종일관 윤석열에 대한 검증이라는 명목으로 당사자의 능력과 문제가 아닌 처가 문제와 도덕성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보수를 궤멸시킨 사람이라고 비방만 한다. 급기야 윤석열이 “5선 국회의원과 도지사 출신답게 격을 갖춰달라”고 했다. 아무리 다급해도 대통령 후보다운 품격을 보여줘야 한다. 원희룡 후보는 대장동 게이트를 쉽게 잘 설명해서 ‘대장동 1타 강사’라는 말을 듣는다. 원희룡의 송곳 질문에 유승민과 홍준표가 쩔쩔맨다. 국민은 토론회를 통해 후보들의 말을 들어보고 각 후보의 신언서판을 판단할 것이다.

신언서판 네 가지 모두 중요하지만, 그중에 말이 가장 중요하다. 말은 그 사람의 학식, 인품, 성격 등 사람 됨됨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논어(論語)는 말(言)을 논한다는 뜻이다. 논어의 핵심 정신은 끊임없이 자신을 닦아 사람을 잘 다스리기 위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제왕학이다. 그러나 논어의 많은 부분이 사람을 보는 안목인 지인지감(知人之鑑)에 대한 말씀이 많다. 말을 해보면 상대방을 알 수 있다. 말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를 뽑기 위한 경선은 후보들의 말 잔치다. 대통령감으로서의 가능성과 자질과 경륜을 정해진 짧은 시간에 말로써 보여줘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잘할 수 있고 뛰어 난지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말만 현란하게 잘한다고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공자님도 “환심을 사기 위해 교묘하게 말을 잘하고, 보기 좋게 꾸민 낯빛을 한 사람 중에 진실로 어질고 덕망이 있는 사람은 드물다 (巧言令色 鮮矣仁, 교언영색 선의인)”고 하셨다. 경선 토론 때 여론조사 1위는 비교적 여유롭게 토론에 임하지만 쫓아가는 사람은 마음이 급하다. 정치인에게 선거는 자신의 정치생명을 건 건곤일척의 승부다. 선거에서 지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선거 승리를 위해 온갖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이유다.

국민의 눈이 어둡고 귀가 얇으면 흑색선전이 통한다. 하지만 수준 높은 국민에게는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다. 서울시장선거 때 민주당 후보 박영선은 오세훈을 상대로 매운탕과 페라가모 구두 얘기만 하다가 선거에서 졌다. 국민의힘 당 대표경선 때 나경원은 자신의 역량과 당을 이끌고 나갈 비전 대신 이준석에 대한 비난만 한 탓에 당 대표가 되지 못했다. 후보의 자질과 능력을 보여주는 말 대신 비방의 말만 했기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을 보여준다. 무능하거나, 무지하거나, 부패한 대통령을 뽑아서 고생하는 것은 그런 사람을 선택한 국민의 수준 탓이다. 대장동 게이트로 앞날이 불투명한 이재명은 형과 형수와 통화한 쌍욕이 아직도 자주 들린다. 전화 속 이재명의 말은 보통 사람이 평생 한 번도 들어보기 힘든 험한 욕이다. 이재명은 화가 나고 흥분해서 그랬다고 사과했다. 화가 날 때마다 험한 쌍욕을 하고 거친 말을 쏟아낼 정도로 절제력도 없고 되지도 않는 비유로 가볍게 말장난이나 하는 사람이 대통령 후보라는 사실이 불안하다.

나이 들었다고 어른 노릇 잘하는 게 아니듯 정치를 오래 했다고 정치 잘하는 것도 아니다. 홍준표나 유승민보다 나이도 어리고 정치경력이 짧은 원희룡은 상대 후보에 대해 조목조목 공약 내용을 확인하고 자신의 대안을 제시한다. 정확한 근거 없이 말한 정책에 대해서는 검토도 안 해보고 공약을 내놓은 거냐고 다그친다. 토론하는 방법이나 정책 제시 등이 가장 뛰어나다. 윤석열이 부러워하는 능력이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홍준표는 정치에 몸담은 세월만큼의 경륜과 자질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많이 아는 것 같은데 말만 현란하고 깊이가 없어 보인다. 유승민은 토론을 잘하지만 경제 전문가라는 틀 속에 자신을 매몰시키고 있다. 토론을 가장 못 할 것 같았던 윤석열은 생각보다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선거에 나서는 후보는 국민에게 자신의 능력을 가감 없이 보여주면 된다. 판단과 선택은 국민이 한다.

국민을 무서워하고 민심이 천심인 것을 아는 정치인이라면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국민을 우습게 알고 가볍게 보기에 막말도 하고 험한 말도 한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는 천금과 같은 품위와 격조가 있어야 한다. 정치인의 말은 권위적으로 들려도 안 되고 무식하게 보여도 안 된다. 화려한 달변이 아니어도 괜찮다. 하지만 눌변은 곤란하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인은 말을 길게 할 기회가 많지 않다. 정치인의 말은 짧고 간결하면서도 강력하게 자기 뜻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내년 대선까지 많은 시간이 남았다. 국민은 각 당을 대표하는 후보의 신언서판을 잘 보고 판단해서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대통령 선거에 나라의 명운이 달렸다. 본선을 앞둔 대통령 후보들의 묵직하고 품격있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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