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남 목사
조규남 목사

이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뗄 수 없는 코로나19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우리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등은 이제 아주 자연스럽게 생활화되어가고 있고 사람들은 코로나와의 싸움이 장기화 되면서 지쳐가고 있어 경계심도 무디어진 느낌입니다. 이에 정부는 조만간 ‘위드 코로나’(with corona) 방향으로 방역 방침을 전환해야 할지를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를 바라보며 코로나로 인한 현재의 난관이 극복된 후를 기대하고 기다리며 인내해 왔습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지나가고 새로운 패턴의 새로운 삶이 이어지리라는 생각은 보류되고, 우리의 일상적 삶에서 자연스럽게 코로나 바이러스의 생존과 영향력을 인정한 채 코로나가 없는(without corona) 세상이 아니라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위드 코로나’의 세상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코로나 백신이 나왔음에도 우리는 이 세기말적 시대에 새로운 동반자로 코로나와 타협하는 수준에 와 있습니다.

인간의 끊임없는 욕심과 죄악이 오늘 코로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현실을 초래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이러한 현실(위드 코로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우리 나름대로의 삶을 가꾸어가야 할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을 좀 더 냉철한 이성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시기는 성경적 관점에서 종말의 시대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종말 시대의 징후들이 그대로 여실히 우리가 목도할 수 있도록 우리 눈앞의 현실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산불과 홍수 등의 자연 재해들은 마지막 심판 때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떨고 있는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간이 그토록 내세우던 과학의 진보가 현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종말에 일어나는 자연 재해들은 결국 인간의 욕심에 의한 결과이지만, 이보다 더 극명하게 인간의 죄성을 말해주는 것이 바로 전쟁입니다. 세상은 평화를 원합니다. 우리 누구나 모두 평화의 세상을 원합니다. 그러나 이 평화에 대한 염원은 단순한 희망사항에 그칠 뿐 인간은 끊임없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최신의 살인 무기들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국가들마다 핵무기 개발을 비롯한 살상 무기들을 개발하여 만들어내는 데 서로가 경쟁하고 있습니다. 앞다투어 살상 무기들을 개발하고 있는 한 이 땅 위의 평화는 없습니다. 국가 서로 간에 협정을 맺은 평화 조약들은 어느 때고 자국의 군사적 이익을 위해서는 아무 쓸모없는 망상에 불과합니다.

이제 우리는 무기 싸움의 전쟁을 통한 외부적 양상과 더불어 내부적 싸움에도 생명을 걸고 임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몸 안의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입니다. 핵무기 등 무기로 인한 과시와 싸움은 국부적인 전쟁으로 그칠 수 있지만 코로나와의 전쟁은 전 세계가 똑같이 당하는 팬더믹(pandemic) 잔쟁이라 나 혼자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일로 다가옵니다.

이 어려운 종말의 때에 사람들은 교회를 향해 인류가 겪고 있는 이러한 고통에 현실적인 아무 대답도 못하고 있는 교회의 무기력을 보면서 ‘무능한 교회’에 대해 희망의 기대감을 버렸습니다. 고통을 겪고 있는 인간들을 그대로 바라보기만 한 채 아무런 도움이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하나님에 대해 그리고 십자가의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과연 너희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라고 반문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면서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는 하나님을 믿고 따라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항변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표적을 구할 때 하나님 역시 우리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사실 저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볼 수 없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보기 원한다고 말씀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이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도 그리고 하나님이 이미 우리 삶 속에 들어와 베풀어주신 은총의 표적들을 보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총의 표적들을 볼 수 있는 믿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습니까? 내게 주시는 믿음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믿음을 가진 이후에는 내 삶의 자리에서 믿음이 자라고 움직일 수 있도록 수많은 자기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고난당한 그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여기에 십자가의 신비와 비밀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역설입니다.

세상이 교회에 대한 기대감을 버린 것과 같이 내 인생도 그러한 때가 있었습니다. 내가 하나님 은혜로 세상을 다시 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세상에서 철저히 버려진 사람이었습니다.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장 밑바닥에 처하게 되었을 때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떠나고 나만 홀로 덩그러니 외진 섬에 격리되어 유배된 듯한 고독감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세상이, 사람들이 더 이상 나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고 외면하게 된 바로 그 시점에 나는 진리 안에서의 진정한 지유를 누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들 앞으로의 삶에 새로운 동반자가 되어 함께 살아가는 일은 정말 싫은 노릇입니다. 그러나 싫건 좋건 우리는 이 사실을 마음에 담아두고 새로운 삶의 불쾌한 변화를 각오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삶의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것은 내 삶 속에서 나를 괴롭히는 코로나와의 싸움에 소진하기보다는 새로운 희망으로 힘을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의 위로의 동반자를 찾는 것입니다.

‘전능자의 그늘’의 저자 엘리자베스 엘리엇의 가르침은 이 어려운 종말의 시대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질문에 답해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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