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니스트
박종호 칼럼니스트

소설가 전광용은 1962년 ‘꺼삐딴 리’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주인공 이인국은 의사다. 해방 전에는 힘 있는 일본인 환자만을 치료하면서 부유한 생활을 했다. 한반도가 해방되고 평양에 소련군이 진주하자 그는 친일파로 몰려 감옥에서 모진 고생을 한다. 감옥에서 배운 소련말로 우연히 소련 장교의 병을 치료해주고 극적으로 풀려난다. 은혜를 입은 소련 장교의 주선으로 아들을 모스크바에 유학을 보내지만 이내 6.25 전쟁이 일어나서 아들과 연락도 끊기고 전쟁통에 아내는 죽는다. 홀로 남한으로 피난 온 주인공은 힘 있고 돈 많은 환자만 치료해 큰돈을 번다. 그러다 4.19가 일어나자 미국으로 이민 간다는 줄거리다. 소설 속 주인공은 상황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일신의 영달을 꾀하는 카멜레온 같은 기회주의자다. 그는 일본 식민지 시대에는 일본인에 붙어서 성공하고, 해방 후에는 소련 장교의 도움으로 김일성 공산 치하에서 살아남고 미군정 하의 남한에서도 성공한다.

최근 그런 인간을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봤다. 김원웅 광복회장이다. 그의 지금까지의 행적과 발언들을 보면 어떻게 이런 인간이 광복회장이 되었는지 불가사의 한 일이다. 독립유공자의 아들임을 자처한 김원웅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정권이 시작되던 1972년에 민주공화당 사무처에 공채 7기로 들어간 뒤 유신 시대가 끝난 1980년에 민주정의당 창당에 참여한다. 이후 요직을 거쳐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전국구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박정희와 전두환 군사정권 때 정치를 한 김원웅의 카멜레온 같은 변신은 이때부터 화려하게 시작된다. 20여 년간 몸담았던 당을 떠나 1990년 돌연 민주당에 입당하여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다. 16대 선거인 2000년에는 민주당의 공천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다시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바꿔 당선된다. 2004년 제17대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이 불리해지자 열린우리당으로 다시 당적을 옮긴 뒤 당선된다. 대전 대덕구의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좌우를 넘나들며 수시로 당적을 바꿔가며 국회의원을 한 인물이다. 김원웅은 당대 권력에 붙어서 오직 자신의 영달을 위해 이념과 정당을 쉽게 바꿔버리는 ‘꺼삐딴 리’의 삶을 살았다.

그런 김원웅이 지난 5월 21일 이재정이 교육감으로 있는 경기도교육청이 주관하는 '친일 잔재 청산 프로젝트‘ 활동에 참여한 고교생을 대상으로 “소련군은 해방군이지만 미군은 점령군”이라는 발언을 했다. 평소 그의 종북주의적 역사관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독립유공자 아들이라는 김원웅의 부친 김근수는 독립운동 업적과 자료가 없고 모친도 이모 전월순의 공적을 도용해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가짜 유공자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런 의혹이 사실이라면 독립유공자를 사칭한 사기를 감추기 위해 역설적으로 더 극렬하게 반일과 반미, 친북을 주장했는지도 모른다. 마치 김원웅 망언의 메아리처럼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7월 1일 고향 안동의 ‘이육사문학관’에서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 정부 수립 단계와 달리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 세력들이 美 점령군과 합작해서 다시 그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래서 깨끗하게 나라가 출범하지 못했다”라고 했다. 포퓰리스트 이재명의 역사관을 보여준 발언이었다. 이재명이 왜 해묵은 친일 논란을 일으키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군의 反이재명 연대를 의식한 표를 얻기 위한 발언인지 아니면 평소의 역사 인식인지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해방 후 71년이 지났다. 진영 간 대립이 첨예한 때에 새삼스럽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광복회장 김원웅과 여당 유력 대통령 후보인 이재명이 친일 청산을 외치는 까닭은 무엇이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한국인에게는 뼈에 새겨진 고통이고 잊힐 수 없는 아픔이다. 무능한 통치자 때문에 나라를 찬탈당하고 36년 동안 죄 없는 백성이 고통당했다. 1910년 이후 이 땅에 살고있는 모든 사람은 일본인이었다. 손기정도 일장기를 달고 베를린올림픽에서 일본인으로 우승했다. 식민지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을 지금의 잣대로 “친일” 여부를 단죄하자고 한다.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단편적 역사 인식이다.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심지어 북한이 정통성을 가진 정부라 주장하는 좌파들은 그들이 불리할 때 더 적극적으로 친일 청산을 주장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역사 인식이 더 문제다. 문재인은 죽을 때까지 전향하지 않았던 북한 하위조직인 통일혁명당 간부 신영복을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쟁범죄자 김원봉이 국군의 뿌리고, 제주 4·3폭동은 ‘먼저 꿈꾼 자’들을 국가가 폭력으로 탄압한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역사 인식이 이러하니 조국은 일본을 향해 죽창가를 부르자고 선동한다. 김원웅의 미 점령군 발언은 본인의 과도한 좌 편향성으로 인해 위험해진 광복회장 자리를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김원웅이 진짜 독립유공자의 아들인지 확인 해야 한다. 광복회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하기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김원웅이라는 이름을 청산해야 한다.

친일 청산을 주장하는 김원웅은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쉽게 당적을 바꿨던 자신의 변절부터 설명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박정희가 만든 유신헌법을 공부해서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새로운 인생을 개척했다. 친일을 비난하고 친일파를 척결하자는 사람이 유신독재는 반대하면서 유신헌법을 공부해서 판사가 되고 변호사가 됐다. 적극적으로 친일한 것은 가려내야 하지만 단지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공부해서 공무원이나 군인이 되고 판검사가 된 사람들을 비난할 수 있는가? 일제로부터의 해방도 우리 힘으로 찾은 것이 아니다. 미국이 전쟁에 이겨서 우연히 찾아온 해방이고 독립이다. 전쟁이 없었다면 해방과 독립도 없었다. 극일은 입으로 하는 구두선(口頭禪)이 아니다. 실력을 키워 조용히 일본을 이기면 될 일이다. 중국 후한말 왕부는 잠부론(潛夫論)에서 “一犬吠形 百犬吠聲(일견폐형 백견폐성: 한 마리의 개가 무언가를 보고 짖으면 다른 많은 개가 그 소리만 듣고 따라 짖는다)”고 했다. 진정한 친일 청산과 극일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냉정하게 다시 생각할 때다.

전쟁 직후 한국은 필리핀보다도 못 살았다. 그런 한국의 삼성전자가 일본의 전자산업을 이겼고,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이 일본의 조선업을 이겼다.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었다. 두 번 다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눈치를 보지 않을 만큼 힘을 키우는 것이 진정한 친일 청산이다. 입으로만 하는 친일 청산은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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