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
보수와 진보
  • 박종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6.2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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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 칼럼니스트
박종호 칼럼니스트

모든 사물과 개념에는 바른 이름(正名)이 필요하다.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스승에게 물었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께 정치를 맡기려 하는데,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라고 묻자 공자가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라고 답했다. (子路曰 衛君 待子而爲政 子將奚先, 子曰 必也正名乎)” 현재 우리가 쓰는 말 중에는 서구의 새로운 문명과 개념들을 중국과 일본이 받아들일 때 오역된 용어가 많다. 영어의 ‘Conservatism’을 ‘보수(保守)’로 번역한 것이 대표적인 오역으로 보인다. 원래 ‘Conservatism’이란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지키는 주의’라는 의미다. 당연히 ‘보존(保存)’으로 번역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보수라고 번역한 탓에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한다’라는 ‘수구적(守舊的)’ 뉘앙스가 강하게 되었다. 사회·정치적 진보 변화에 대한 반동분자의 의미로 옛것을 그저 지킨다는 의미의 수구는 ‘Reactionary’라는 단어가 있다. ‘보존’과 ‘보수’는 의미상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보수 꼴통’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었다. 보수주의는 개혁을 통한 발전과 진보를 추구하면서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은 지킨다는 의미다.

인간이 집단생활을 하면서 형성된 계급사회는 소수의 지배계급과 다수의 하층민으로 구성되었다. 왕과 귀족 등의 지배계급을 위해 하층계급은 노동을 제공하고 배고픔을 해결했다. 이들에게는 자유가 없었다. 하층민은 항상 배가 고팠다. 인류의 숙원인 배고픈 문제는 영국의 산업혁명(1760~1820년)에 의한 기술혁신과 새로운 제조공정으로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고 산업화가 발달하면서 해결되기 시작했다. 중국은 19세기까지 압도적인 인구와 기술력으로 전 세계 산업생산의 약 30%를 차지한 절대 강자였는데 정작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일어났다. 영국 시민에게 있던 자유가 중국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1215년에 왕권을 제한한 ‘마그나카르타(the Great Charter of Freedoms)를 제정하고 17세기에는 세계 최초로 국민에게 자유를 주었다. 자유는 인간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고 다양한 선택과 경쟁을 통한 풍요를 가능케 하였다. 개인의 자유는 타인(영주나 왕과 귀족들)을 위한 것이 아닌 오직 자신을 위한 노동을 통해 이윤 극대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대였다. 그러나 모택동 공산당 정권이 집권하면서 국민으로부터 자유를 빼앗았기에 2%대로 폭락했다. 이후 거의 세계 최빈국이던 중국은 1970년대 후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중국 사회에 경제적 자유가 회복되면서 단기간에 G2가 되었다. 이처럼 ’자유‘는 인류를 풍요롭게 하는 절대적인 요소다. 인간에게 ‘풍요’와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했다. 자유는 인간의 ‘자족감’과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게 되었다. 자유에 의한 풍요는 ‘배고픈 자’를 줄이는 데는 큰 역할을 했지만, 필연적으로 ‘배 아픈 자’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배 아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와 낙오자를 위한 배려와 일정부분의 자유 제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진보주의자'라 한다. 'Progressive‘는 ’약자를 위해 한 걸음 더 나간다’라는 뜻이다. 다수의 행복과 인류의 번영을 위해 필요한 ‘자유’와 ‘선택의 권리’ 및 ‘다양성’을 인정하는 게 보수주의고 이때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불공평’을 교정하기 위해 ‘공평과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 진보다. 따라서 어느 사회든 보수나 진보 한쪽 바퀴만으로는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보수와 진보는 사회 발전을 위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두 개의 바퀴인 것이다.

진보와 보수는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에 차이가 있다. 보수가 추구하는 이념이 ‘자유’라면 진보는 ‘평등’을, 보수가 세상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진보는 ‘힘없고 약한 부분’을 강조해서 본다. 보수는 ‘시장경제와 작은 정부’를 추구하지만, 진보는 자유를 필요에 따라 제한하는 ‘통제경제’와 공무원을 늘리는 ‘큰 정부’를 추구한다. 보수는 경쟁이 많을수록 좋고 자유와 경쟁이 보장되는 ‘사기업’을 추구하지만, 진보는 약자를 위해 경쟁은 최소화하고 약자를 돌보기 쉬운 ‘공기업’을 원한다. 보수는 ‘감세 정책’으로 개인에게 부가 돌아가도록 하지만, 진보는 약자를 돕기 위한 돈이 많이 필요해서 ‘증세’할 수밖에 없다. 보수는 규제는 줄이자고 하지만 진보는 평등을 위해 규제를 강화하려고 한다. 보수의 복지는 ‘성장’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지만 진보는 약자를 위한 ‘보편적 복지’를 추구한다. 보수는 자유에 수반되는 의무로서 법과 질서를 ‘매우 중요시’하지만 진보는 약자를 참작해서 법과 질서를 ‘덜 중시’한다. 보수는 공동체 이익에 반하는 ‘동성애와 낙태 등을 반대’하지만 진보는 개인의 약점을 동정하여 찬성한다. 이처럼 보수와 진보는 추구하는 방향에 근본적 차이가 있다. 이는 이념의 대립이 아닌 정책적으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기에 사회 발전 정도에 따라 적절하게 혼합하여 적용되어야 한다.

​한국은 해방 후 미국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럽게 이념적으로 우파가 되었고,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은 북한은 공산주의 좌파가 되었다. 좌파는 평등을 추구하고 사회계급과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정치적 입장으로 기존 기득권인 우파에 대립하는 개념이다. 좌파라는 말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 급진적인 몽테뉴 당이 의회의 왼쪽에 위치한 데서 유래하였다. 이들이 기득권층과 주류세력으로부터 버려진 사람들의 편에 서서 사회의 변동을 추구하였기에 ‘좌파’라는 이름이 생겼다. 보수가 진보의 모든 정책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진보의 좋은 정책은 시대의 변화와 시기에 맞는 단계에서 적용해야 한다. 국가 재정이 어려운데 무작정 복지에 예산을 퍼줄 수 없는 이유다. 성장 없는 분배는 모두를 가난하게 할 뿐이다. 포퓰리즘 정책을 쓴 남미의 좌파와 그리스의 무분별한 복지는 국가 재정을 파탄시켰다.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일부 품목의 수출이 견인한 것이다. 선진국도 아니고 아직 경제적 맷집도 허약하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좋은 진보 정책은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그 시기가 문제일 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 보다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의 대립이 심하다. 보수와 진보의 진영싸움이 격해지고 있다. 국민은 서로 편이 갈라져서 대화가 안 되고 친구와 동창 모임에선 정치 얘기를 못한다. 진보라는 민주당이 국회 다수당이 되자 다른 당의 의견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다수결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런 민주당이 북한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할 말도 못한다. 우리의 주적인 북한은 단순한 공산주의 좌파가 아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3대 세습 왕조다. 이런 북한에 동조하는 종북좌파와 순수한 진보는 확실하게 구분해야 한다. 진보는 받아들일 수 있는 가치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종북좌파’는 분명 배척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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