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니스트
박종호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정치가 급변하고 있다. 기성 정치판이 30대 젊은 야당 당 대표 이준석의 출현 이전과 이후로 갈릴 것이 분명한 때, 광주에 또 다른 토네이도가 몰아쳤다. 전남대 86학번 운동권 전력의 자영업자가 문재인 정권의 경제 실정과 많은 잘못들을 조목조목 꼽으며 광주와 호남이 변해야 한다고 피맺힌 울분을 쏟아냈다. 그는 개·돼지로 살 수 없어 용기를 냈다고 했다. 6월 12일 광주광역시 4.19 혁명기념관에서 열린 ‘만민토론회’에서 광주에서 ‘커피루덴스’라는 까페를 운영하는 광주 토박이 배훈천 씨(53세)가 자신의 이름과 업소명을 밝히면서 “문재인 정부 지지 기반인 광주에서 현지인의 입으로 들려주는 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유익할 것 같아서 용기를 냈다”라고 했다. 한국 정치에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변화의 쓰나미가 기성 정치판에 밀려오고 있다.

기존에 보수를 지지하지 않던 20~30대와 호남 민심이 바뀌고 있다. 절대 무너지거나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철벽같은 젊은 층의 마음이 지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재·보궐선거를 기점으로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문재인 정권은 조국과 윤미향으로 각인된 위선과 내로남불, 꼭 필요할 때는 사라지거나 말을 잊어버리는 대통령의 무능, 부동산 가격폭등과 소득주도성장으로 파탄 난 서민경제, 장관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설쳐댄 이 정권 탄생의 주역인 586들의 무지와 독선, 밖에서는 고립되고 안에서는 욕먹는 외교, 주적인 북한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못 하는 국방 등 어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 문재인이 묻던 “이게 나라냐?”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이 만들려고 하고 꿈꾸던 나라는 이런 것이냐고. 역설적으로 그런 대통령의 무능이 한국 정치를 어느 때 보다 역동적으로 변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36살의 이준석이 한국 헌정사 초유의 최연소 당 대표라는 역사적인 일을 만들자, 생각지도 못한 일이 호남의 심장 광주에서 일어났다. 광주시민 배훈천 씨는 “진짜 서민의 삶을 하나도 모르는 패션 좌파들이 ‘시급 1만 원’도 못 줄 것 같으면 장사 접어라”라고 했다고 분노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가족을 위해 목숨 걸고 일한 적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김영삼 정부 때 자영업을 시작해서 문재인까지 6번의 정부를 겪으면서 이런 무능하고 위선적이고 사업이 안되게 하는 정부는 처음이라 했다. 분명히 호남에 배훈천 씨와 같이 생각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맹목적인 민주당 지지가 아닌 합리적,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국민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싫어하던 국민의힘이 변하고 있다. 당 지도부가 수시로 호남을 찾고 518 묘역을 방문해서 518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서로 변하지 않으면 국가의 미래가 없다.

그리스 신화에 사람이 죽어서 죽음의 세계인 명계(冥界)로 갈 때 건너야 하는 5개의 강이 있다. 그중 하나가 ‘레테의 강’이다. 레테의 강물 한 모금을 마시면 과거의 기억과 전생의 번뇌를 모두 잊는 ‘망각의 강’이다. 이제 우리도 레테의 강을 건너야 한다. 과거에 얽매여 앞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가는 퇴행의 역사가 아닌 미래를 위한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 아픈 기억과 쓰라린 고통을 모두 망각의 강에 던져 버려야 한다. 곪은 부위는 도려내고 부러진 뼈마디를 붙여서 건강한 몸을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작은 몸뚱이에 얼마나 많은 못된 짓을 했는가? 스스로 너무 자학했다. 반목과 불신 대신 화합과 믿음으로 국가의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한다. 우리 조상들이 그 모진 세월 이겨내고 세계 10위의 대한민국을 남겨 줬듯이 우리도 후손들에게 조그만 자랑거리는 물려줘야 할 것 아닌가.

이준석이 탄핵의 강을 건넜다. 이제 세월호의 강도 건너고 518과 천안함의 강도 건너자. 용서는 피해자의 몫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을 ‘喪明之痛(상명지통)’이라 한다. 자식을 잃고 너무 슬피 울어 눈이 멀어버린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의 얘기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어버린 천안함 부모의 슬픔을 생각해서 이제는 노란 리본을 뗄 때다. 모든 아픈 상처는 레테의 강에 흘려보내고 새날을 시작하자. 비난과 반목으로는 미래가 없다. 동서고금의 역사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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