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남 목사/우림복지법인 대표
조규남 목사/우림복지법인 대표

복지관을 통한 사랑의 도시락 배달 봉사를 나가기 시작하면서 거울 앞에서 눈 화장(?)에 신경쓰게 됐습니다. 보기 싫게 삐죽 뻗친 흰 눈썹은 뽑아버리고, 눈 가장자리의 주름은 다리미질 하듯 손으로 꾹꾹 눌러 마사지를 하고 나면 기분상으로도 좋아져서 그 느낌 그대로 마스크를 쓴 채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향해 눈웃음을 지어봅니다. 코로나19 마스크로 눈 아래 부분은 가리고 있어서 얼굴 표정으로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는 것은 오로지 눈빛밖에 없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짧은 인사의 순간만이라도 이용자들의 마음을 잡고 싶기 때문입니다. 입으로 먹는 도시락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따뜻해지는 사랑이 전달되기 바라서입니다.

내가 맡은 봉사 구역은 복지관으로부터 자동차로 움직여야만 하는 외곽 지방의 다섯 세대인데, 세 번째 가게 되는 대화마을의 이(Lee) 할머니는 갈 때마다 내 마음을 기쁘게 해주십니다. 오늘도 내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미리 문밖에 나와 기다리면서 반가운 얼굴로 도시락을 건네 받습니다. 그리고 꼭 한마디를 던지십니다. "에구, 아직도 두어 집 더 가야겠네~" "오늘은 도시락이 더 커 보이네" "코로나 예방주사 맞았수?" 나도 목소리의 톤을 높여 경쾌한 대꾸를 합니다. "저는 할머니 얼굴 뵈면 괜히 기분이 좋고 힘이 나서 봉사할 맛이 납니다. 맛있게 드세요~"

이 할머니로부터 기분 좋은 배웅을 받으며 다음 순서의 집을 향해 가는 도중 마지막 집인 법곶동 김 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며 금세 우울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무표정 무응답의 표독스런 정도로 쌀쌀맞은 그녀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오늘도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지난 주간부터 병원에 입원해 계신 탓에 마지막 순서인 그녀의 집은 갈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문득 그녀의 신상이 궁금해지고 염려가 되었습니다. '아니, 얼마나 아프시기에 계속 병원을 들락거리며 또 입원까지 하신 걸까?' 그러자 갑자기 혹 이대로 그녀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뒤숭숭해졌습니다. 그리고 몇 번 만난 적 없는 그녀이지만 더욱 관심이 쏠렸습니다. 내 사랑(?)을 거절한 그녀이기에 더욱 그럴지 모릅니다.

다시 한번 그녀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이해의 폭을 넓혔습니다. - 내가 만일 저렇게 병원을 들락거릴 정도로 몸이 불편하고 곁에서 제대로 도와주는 사람 없이 홀로 사는 독거노인이라면 누구에겐들 웃는 얼굴로 대하겠는가? 내 몸이 아프고 힘들면 모든 것이 귀찮고 싫은 것이 아닌가. 사랑이고 뭐고 다 귀찮고 이에 응대하는 것마저 힘들어 피하고 싶을 뿐이다. 잠시라도 나와 얼굴을 대면하게 됐을 때 그녀의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에 힘들어 인상을 찌푸리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그렇겠구나...

인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이 없는 사람들에게 인간은 단순한 육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a passing breeze that does not return)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한 번 후~ 하고 입김을 부시면 모두 허공에 흩날려 버릴 바람과 같은 존재가 인간이요, 우리의 삶입니다. 이런 허무한 존재인 우리에게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시어 멸망의 길에서 돌이키게 하셨습니다(시 78:38).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제한된 삶의 테두리에 갇혀 있는 무력한 육체인지를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한 번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 육으로 난 것은 육일뿐이기에, 이제 춘풍이 일렁이는 봄의 언덕에 올라 성령의 바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 바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지만 생명의 바람으로, 다 낡을 대로 낡아 쓰러져 가는 빈집 같은 영혼에게 새 힘을 주어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 지금 우리에겐 새 힘이 필요하고 새 생명의 싹이 움돋는 은총의 표적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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