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신의 네 번째 시집 『우산이 없어도 좋았다(창비)』를 발표한 후 일산‘책방이듬’에서 4월19일 낭독회를 가진 서홍관 시인(국립암센터 원장·63)
최근 자신의 네 번째 시집 『우산이 없어도 좋았다(창비)』를 발표한 후, 일산 ‘책방이듬’에서 지난 19일 낭독회를 가진 서홍관 시인(국립암센터 원장·63)

“그의 시 대부분은 일상의 찰나를 포착해낸 것으로 쉽게 읽히는 것들이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석양’ ‘전원교향곡’ ‘산마르코 광장’은 비교적 난해하지만, 시인의 진면목이 잘 드러난 시들이라 할 수 있다”

서홍관 시인(국립암센터원장·63)의 네 번째 시집 『우산이 없어도 좋았다(창비, 2020.12)』에 수록된 시를 읽고 솔출판사 임우기 대표(문학평론가·66)가 내린 평이다.

일산 ‘책방이듬’에선 서홍관 시인을 초청해 지난 19일, 낭독회를 가졌다. 저녁 7시부터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이 날 낭독회는 1부에선 초청 시인의 자작시 낭송과 문객들의 시낭송이 있었다. 이어진 2부에선 하재일 시인의 시낭송(최초의 인간), 임우기 대표의 시낭송(전원교향곡)과 시평(詩評)이 이어졌다.

의사의 업적1, 아이가 준 선물, 슬픈 노래를 듣는 사람들. 시인의 자작 시 3편 낭송 후 이어진 희망 찾기, 메시지로 남겨주세요, 의사의 업적6, 기러기 등 문객들의 시 낭송이 끝나자, 책방 언니 김이듬 시인의 사회로 시인에 대한 질문공세가 이어졌다.

지난 19일, 책방이듬’의 『66회 일파만파 낭독회』 당시 서홍관 시인의 ‘의사의 업적6’을 낭독하고 있는 정상호 씨(환경엔지니어)
지난 19일, '책방이듬’의 『66회 일파만파 낭독회』 당시 서홍관 시인의 ‘의사의 업적6’을 낭독하고 있는 정상호 씨(환경엔지니어)

문객들의 질문은 “의사의 길과 시인의 길에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은 데, 그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 왔는가?” “의사로서만 아니라 여러 가지 업무를 병행하느라 바쁜 중에 언제 시를 쓰는가?”등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문객들의 다양한 질문에 대한 시인의 답변은 간결하고 명료했다. 서 시인은 의사의 길과 시인의 길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37년간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면서 얻은 결론은 인간을 이해하려고 시를 쓴다는 것이며,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곧 인간을 진료하는 것”이라고 시인은 말했다.

서 시인에게 있어 시작(詩作)은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세상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부조화를 안으로 곰삭히는 과정이다. 시인은 세상과 소통하며 맞닥뜨린 갈등과 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해 실천 철학으로 화이부동(和而不同, 군자는 남과 화목하게 지내기는 하지만 무턱대고 남의 의견에 동의해 무리를 지어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미/논어 자로편)을 선택했고, 그의 시들은 화이부동의 과정을 거처 나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 세상과 소통하고 화합하면서도 한편으론 세상과 맞서면서 자신의 뜻(正義)을 굽히지 않고 표출하기 위해선 큰 용기가 필요하다. 시인은 이와 관련해 해탈을 언급했다.

서 시인은 “화이부동을 실천하기 위해선 결국 해탈이 필요한데 인간은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 쉽지 않습니다. 저도 20대부터 줄곧 고민해 왔지만, 아직 해탈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다음 생에서나 가능할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서홍관 시인이 자신의 삶의 철학이기도 한 공자의 화이부동(和而不同)과 해탈에 대해 낭독회에 참석한 문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서홍관 시인이 자신의 삶의 철학이기도 한 공자의 화이부동(和而不同)과 해탈에 대해 낭독회에 참석한 문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한편 연작시 ‘의사의 업적6’을 낭송한 문객 정상호씨(58, 환경엔지니어)는 “외롭고 쓸쓸한 세상에서도 기쁘게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다소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시인은 10여 분 정도 다소 긴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아마도 연작시 ‘의사의 업적6’ 탄생 배경과 깊은 관련이 있어서인 듯 보였다.

고(故)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316일 동안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서 치료받다 사망했는데, 서울대병원 백선하 교수는 사인을 신장기능 이상으로 적어 발표했다. 이에 일부 서울대 의대생들은 ‘선배님들께 의사의 길을 묻습니다’라는 대자보를 붙였다. 당시 국립암센터 의사였던 서 시인은 ‘잘못된 사망진단서를 강요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라는 칼럼을 경향신문에 기고했다. 이 칼럼을 읽고 찾아온 40대 환자와 나눈 이야기를 시로 쓴 것이 ‘의사의 업적6’이다.

(…) 며칠 뒤 사십대 남자 환자가 진료를 받고는,/선생님 신문에 쓰신 글 읽었어요.//그런데요 선생님,/다음에 제가 올 때도 선생님이 여기 계실까요? //박근혜 정부가 국립암센터 의사를 가만두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었습니다.//나는 그분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나도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나도 맷집이 있어요.//다음에도 나를 볼 수 있을 겁니다.(…)//(‘환자의 업적6’중에서)

서홍관 시인이 연작시 ‘의사의 업적6’탄생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홍관 시인이 연작시 ‘의사의 업적6’ 탄생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편 이날 행사에 참석한 솔출판사 임우기 대표는 시인의 ‘전원교향곡’을 낭독한 후 시인의 시작(詩作)과 시성(詩性)에 대한 생각을 참석한 문우들과 공유했다.

“서 시인의 시들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찰나를 포착해 언어로 형상화한 것들이 많은데, 대부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네 번째 시집 『우산이 없어도 좋았다』에 수록된 ‘석양’ ‘전원교향곡’ ‘산마르코 광장’ 같은 시들은 다소 난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산마르코 광장’은 그의 잠재의식 속에 내재된 무의식의 본질을 끌어내 보여준 시로써 시인의 진면목이 잘 드러난 시라고 하겠습니다”고 평했다.

임 대표는 “시인은 이번 네 번째 시집 5부에 수록된 시 ‘산마르코 광장’에서 『산타 루치아』를 부르는 베네치아 청년이/곤돌라를 타고 지나갈 때/눈빛을 아껴가며 서로를 보았던가 라는 표현을 통해서 빛나는 시적 본성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 시속에 너도 나(화자) 자체도 알 수 없는 미궁에 빠져있다”라며 “어떤 상황에서 시인이 이 시를 쓰게 됐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서 시인은 시작(詩作) 당시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면서 “구체적인 인물을 만나고 헤어진 것이 아니라 예전의 수많은 헤어짐들, 지키지 못한 약속들, 이루지 못한 소망 같은 것들이 함축돼 있는 시”라고 말하면서 “지금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당시 몹시 외로웠던 생각이 난다”고 말해 장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솔출판사 임우기 대표(문학평론가·66)가 서홍관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우산이 없어도 좋았다』를 읽은 감상을 문객들과 공유하고 있다.
솔출판사 임우기 대표(문학평론가·66)가 서홍관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우산이 없어도 좋았다』를 읽은 감상을 문객들과 공유하고 있다.

서 시인의 시들은 짬짬이 메모하는 습관의 결과물이다. 시인은 업무 시간 외 휴식 시간엔 주변 공원을 산책하며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핸드폰이든 어디든 메모해 두는 습관을 유지해오고 있다. 이렇게 모아 둔 기억들을 기회가 생기면 정리해 시집으로 내왔다.

사실 이번 네 번째 시집은 코로나 시국 덕을 좀 봤다. 코로나로 잡혔던 약속도 다 취소되고 찾아오는 환자들도 뜸해 시간적 여유가 생겼기에 가능했다. 그 간 시간이 날 때마다 노트북, 핸드폰, 메모지 등 여기저기에 메모해 뒀던 생활 속 찰나들을 찾아내 정리한 후 시집으로 펴낸 것이다.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우산이 없어도 좋았다』가 탄생한 배경이다.

서홍관 시인(국립암센터 원장·63)의 네 번째 시집 『우산이 없어도 좋았다』표지
서홍관 시인(국립암센터 원장·63)의 네 번째 시집 『우산이 없어도 좋았다』표지

 

 

저작권자 © 고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