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아티스트, 전시한 본인의 작품을 배경으로
이정호 아티스트, 전시한 본인의 작품을 배경으로

구자현 발행인(이하 구 발행인) : 먼저 생애 첫 전시를 축하드립니다. 1969년생이면 50대 초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고 경제적으로도 아이들 교육문제로도 힘든 때, 하필 코로나19로 사회 전반적으로 혹한의 시기에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굳이 이 시기를 택한 이유가 있나요?

이정호 아티스트(이하 이 아티스트) : 제가 거짓말하거나 윤색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좀 우발적으로 결정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1년여 전에 명동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던 후배와 식사 약속을 잡았다가 금번 제 첫 개인전을 연 혜화아트센타를 방문하였는데 갑자기 저도 전시를 하면 좋겠다란 생각이 불쑥 들더라구요. 그래서 관장님과 바로 계약서류에 사인했죠. 그것도 1·2관 전관을 쓰는 조건으로요. 1주 후 제정신이 돌아와 2관만 쓰는 조건으로 변경했는데, 아마도 50대 들어서 새로 바뀐 인생 구호인 “일단 저지르고 보자”에 충실한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가장 직접적인 동기는 아버지께 인생의 보람이나 재미를 드리고자 함이 컸습니다. 당신의 아들을 비싼 등록금을 들여 졸업시킨 것이 헛된 노력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보고 싶었던 것이지요. 꿈이니 뭐니 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이고요. 그런데 계약 당시 코로나가 이리 오래 갈 줄은 몰랐습니다.

구 발행인 : 세상을 살다보면 학교 때의 꿈은 접는 경우가 많죠. 작가님도 우리나라 미술의 메카인 홍익 미대를 졸업하고도 지금은 목수라는 건축노동자로 육체적으로 힘든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 아티스트 : 제가 학부로 졸업한 예술학과가 1987년에 처음 신입생을 받았으니 89학번인 저는 3기인 거죠. 남자라서 군대를 2년 6개월 꽉 채워 제대하고 복학한 것이 한참 서태지가 뜨기 시작한 1993년의 일이고, 졸업한 것이 X세대 붐의 정점이었던 1996년입니다. 첫 기수가 1991년 졸업하고 미술시장에 취업한 후 5년의 시간 동안 노른자위 취업 자리는 이미 자리가 다 차 있고 남아있는 취업 자리는 박봉에 허드렛일이나 해야 하는 작은 영세화랑들 뿐이었죠.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취업한 곳이 지금은 LG패션에 합병된 ‘캠브리지’라는 고급 기성양복을 생산·유통하는 회사 홍보실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한 주요 업무는 ‘캠브리지 오픈 골프선수권대회’ 기획 및 진행, 광주와 영등포 직영점에 있던 캠브리지 갤러리를 관장이란 직함을 가지고 운영하는 일이었지요. 그 후 몇 가지 기획전시를 제가 손수 기획하고 작가를 초대하여 진행하다가 IMF 사태 이전에 일찍 구조조정 당해 고향집에 가서 철공소를 운영하는 아버지 보조일을 하며 미래의 나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테리어가 뭔지 모르게 멋있는 작업일거라는 인상 하나만으로 서울에 상경하여 친척의 친구가 운영하는 작은 인테리어 회사에 취직하여 약 15년간을 인테리어 엔지니어로서 먼지밥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창업을 하거나 현장 대신 영업을 선택해야 하는 나이가 된 시점에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무언가를 다시 고민하다가 휴일도 없이 일하느라 개인적인 여가생활이나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테리어 회사 직원보다는 하루 8시간 작업 이후로 프리한 목수이자 가정 주부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이 6년여 정도 되네요.

구 발행인: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를 수도 있죠. 요즘은 100세 시대니까 더 열정적으로 작품활동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작가님이 디지털 작품을 시작하게 된 동기나 배경이 궁금합니다.

이 아티스트: 사실 제가 처음부터 미술작가를 꿈꾸며 디지털 작업을 한 건 아니었죠. 처음엔 SNS에서 소통의 한 도구로 시작했지요. 그 시작은 포털에 있던 김연아 팬카페였습니다. 팬카페엔 연아 선수에게 반한 팬심을 담아 조공하는 아름다운 일들이 빈번했는데 저는 연아 선수의 경기 사진 중에 맘에 드는 사진을 선택하여 그림판에서 마우스로 선을 긋고 색을 입혀 그림을 완성해 조공하였는데 회원들 반응이 좋더라구요. 그런 와중에 디시인사이드에 있는 피겨갤과 김연아갤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이외수갤을 알게 되고 오늘의 유머(오유)라는 커뮤니티도 알게 되고 이외수 선생의 팬사이트에 있는 정겨운 게시판(정게)도 알게 되어 본격적인 SNS 폐인의 길로 접어 들었지요. 그때가 2006년경인데 그 시점이 제가 아이들을 모두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다시 인테리어 회사 직원을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사실 인테리어에 신물이 나 있던 터라 회사일 보다는 새로이 눈앞에 펼쳐진 커뮤니티 세상에 급속히 맘을 뺏기게 되었고 현재의 안착지인 페이스북에 이르게 됩니다. 타인과 차별화된 포스팅을 위해 오직 제가 생산한 사진과 그림을 넣어 짧은 단상과 함께 제 담벼락을 채웠는데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그때 시작한 연재물이 <페북 사람들>이라는 디지털 초상화 작업이었고 그와 더불어 점점 나만의 에로틱한 작품들을 선보이다가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구 발행인: SNS시대가 낳은 작가인 셈이군요. 작가님이 체험한 디지털 미술작업의 가장 큰 매력과 다른 미술작업과의 차별성은 무엇입니까?

이 아티스트: 경제성과 민첩성, 그리고 시간의 효율적 사용에 있습니다.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핸드폰과 컴퓨터로 작업하다 보니 미술 재료 비용이 전혀 들지 않고 그림 그리고 싶을 때 언제 어디서나 즉각적인 작업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형태와 색채의 창조적 재구성이 거의 무한대로 제게는 가능한지라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완성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줍니다.

처음 디지털 미술을 시작한 SNS컨텐츠 제작에 가장 최적화된 도구인 셈이죠. 그래서 저를 미술작가로 타인에게 소개할 때 “저는 손이 아닌 눈으로 그리는 작가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단지 선택할 뿐이죠.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작품의 소스가 되는 사소한 이미지들을 찾아 내는 센스와 고도의 집중력에 있습니다. 다른 작가들이 한 달 내내 매달려야 하는 효과를 저는 단 몇 분만에 응축하여 보여줘야 하니까요.

구 발행인: 맞는 말이네요. 미술작품도 시대상을 반영해야겠죠. 이 시대에 가장 익숙한 핸드폰이나 아이패드를 활용하는 것도 미술작품에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발상의 전향이 이루어져야겠죠. 그런데 페미니즘과 미투가 이슈인 현 상황에서 여간해선 논란이 될 위험성이 있는 에로티시즘을 표방하고 전시 제목도 색계로 짓는 도발을 감행하셨는데 그 이유와 배경이 궁금합니다.

이 아티스트: 아무런 제약이 없는 상태로 빠르게 작업을 하다 보니 내가 어떠한 부분에 관심이 있는지가 드러나게 되더라구요. 그게 바로 에로티시즘이었구요. 변형된 이미지의 선택 과정 중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군요. 그래서 금번 전시 중 젊은 관객에게는 제 작품을 요약하면 요즘말로 ‘기승전에로’라고 표현하니 바로 공감하더라구요. 사실 제가 가진 모든 예술관의 핵심은 자연스러움과 진솔함에 있습니다. 인간이 하는 작업인지라 당연히 인위적인 결과물일 수 밖에 없지만, 머리가 아닌 작가의 자유로운 감각에 기댄 표현에서만이 그동안 작가에게 농축된 에너지를 발현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모든 사람이 가진 가장 중요한 인생의 질문중의 하나인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란 말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응답의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저는 제게 가장 흥미롭고 자연스러운 에로티시즘을 선택했습니다.

구 발행인: 전시 제목이 색계인데 이제 좀 이해가 됬습니다. 특히 디지털 프린트 방식이다보니 기존의 작품들과 많은 차이점이 있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이 아티스트: 즉흥적인 인상의 작업이다 보니 표현의 다양성에 비해 작품의 내적 심화 과정의 결여는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또한 수많은 디지털 프로그램 기능의 극히 일부만을 사용하여 만들어지는 이미지에는 그 표현의 다양성과 출력물의 질에서도 한계가 있는 것이죠. 이러한 부족한 부분을 다음 전시에서는 충족하고 저만의 대표 캐릭터 작품을 확립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한 과정으로서의 전시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정호 아티스트의 작품
이정호 아티스트의 작품

구 발행인: 제가 작품을 보니 독특합니다. 미술작품이라는 것이 꼭 정해진 틀은 없겠죠. 새로운 시도 아주 좋아 보입니다. 다음 전시도 기대되고요. 앞으로 지속적인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이 아티스트: 언제나 즐겁게 노력하겠습니다. 이제 막 걸음을 땐 무명의 작가에게 귀한 시간과 지면을 할애해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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