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가와지볍씨 박물관’전시실 벽에 걸려있는 출토지 모형 사진
고양 가와지볍씨 박물관’전시실 벽에 걸려있는 출토지 모형 사진

[고양일보] “한번 훼손된 유물은 다시 원형대로 복구되기 어렵다”라는 말은 전 세계 역사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또한 개발과정에서 발굴된 유적과 유물 보존 관련해 지자체와 문화재청의 말은 믿을 게 못 된다는 속설도 있다. 특히 유물 출토지 소유권이 지자체와 토지공사, 그리고 개인 등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태에선 유적지 보존 가치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공사가 중단되고 유적지를 온전히 보존한 사례를 최소한 우리나라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1991년 일산 지역이 신도시로 개발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일산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약 5020년 전 우리 조상이 재배한 볍씨가 출토됐다. 지금의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송포동 일대에서 총 331톨의 고대 볍씨가 출토됐다. 그중 발굴 당시 가와지1지구(현 대화동 2190-1 빌라 사이길)에서 출토된 12톨은 5020년 전 신석기시대에 재배된 볍씨로 밝혀졌다. 당시 발굴팀이 국내·외 권위 있는 고고학 연구단체에 의뢰해 공식 확인한 결과다.

고양 가와지 볍씨가 5000여 년의 세월을 견디고 우리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지도 벌써 30여 년이 흘렀다. 한 세대가 훌쩍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 청소년들은 한반도의 벼농사 시작과 관련된 역사에서는 기존과 같은 내용을 배우고 있다. “한반도 벼농사 기원은 신석기시대가 아닌 청동기시대”라고 선생님은 가르치고 학생은 배우고 있는 것이다.

3학년 사회과 탐구학습자료 『우리고장 고양 탐구』(경기도 고양교육지청 발간)
3학년 사회과 탐구학습자료 『우리고장 고양 탐구』(경기도 고양교육지청 발간)

이와 관련해 고양시 초등학교 3학년 사회과 탐구학습자료(경기도 고양교육지청 발간)에는 “고양은 한반도 벼농사의 기원이자 문명의 발원지였다. 특히, 고양지역은 최초의 재배 볍씨가 한반도 전체로 퍼져나간 육종포의 중심지다.(중략)가와지는 일산서구 대화동, 송포동 일원의 지역 이름으로 기와집이 있는 곳이란 뜻이다”라는 정도로 기록돼 있다. 이 정도가 그간의 결실이라면 결실이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이마저도 관심을 가지고 가르치는 학교와 선생님이 얼마나 될 것인지, 학생은 또 배운 내용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발굴 당시의 출토지를 보존하고, 그곳에 박물관을 세워 출토된 당시의 식물과 생활도구 등을 활용해 당시의 생활상을 재현한 공원을 만들었다면 상황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박물관을 찾은 학생들이 5000년 전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당시의 공간을 재현한 공원에서 뛰놀며 체험학습을 할 수 있었다면, 볍씨가 출토된 장소에 세워진 박물관에서 가와지볍씨 국제학술회의를 매년 열었더라면 고양 가와지볍씨의 역사적 의미를 확산시키고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좀 더 유리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가와지 볍씨가 갖는 의미도 고양시를 넘어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에 있는 고양시농업기술센터 ‘고양가와지볍씨박물관’외부에 설치돼 있는 움집. 출토당시 신석기시대 주거지를 재현한 것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에 있는 고양시농업기술센터 ‘고양가와지볍씨박물관’외부에 설치돼 있는 움집. 출토당시 신석기시대 주거지를 재현한 것

가와지 볍씨가 갖는 역사적 의미가 큼에도 불구하고 출토된 지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중요성이 시민들에게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지자체장들의 일관성 없는 정책도 한 몫 했다. 전임 강현석 시장(6,7대)은 가와지 볍씨 출토 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사회적으로 이슈화됐었던 점, 최성 시장(8,9대)은 가와지볍씨를 알리는 것을 자신의 공약으로 내세웠던 점, 그리고 현 이재준 시장 입장에서 보면 시간이 많이 흘러 이슈가 사라졌다는 점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고양시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선사유적지 및 유물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선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한편 고양시노업기술센터는 최근 김창성씨(54,작곡가)와 의기투합해 집중해온 프로젝트 하나를 최근 완성했다. 가와지볍씨를 알리는 방법을 기존보다 업그레이드시킨 것인데, 3D영상으로 가와지볍씨 홍보영상을 제작한 것이다.

농업기술센터 담당자의 말에 따르면 어린 학생들이 가와지볍씨를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데서 출발했다고 한다. 고양농업기술센터가 주관하고, 김 대표가 의뢰를 받아 동요를 만들고(작사·작곡) 율동을 더해 3D영상으로 경쾌하게 구현했다.

이와 관련해 농업기술센터 담당자는“우선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은 효율성을 고려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들이 가와지볍씨에 관심을 갖고 박물관에 가자고 부모님을 조르는 일이 생긴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입니다”라며 “부모 욕심에 자녀 손목 끌고 오는 것과는 다르다”라고 강조했다. 후자는 자녀들이 거부하면 다시 방문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효과가 떨어진다는 의미다.

농업기술센터가 기획하고 김창성 대표가 작사·작곡한 동요에 경쾌한 율동을 더해 3D영상으로 구현한 가와지볍씨 홍보영상. 고양시 관내 유치원 및 초·중고에 배포 예정이다.(김창성 대표 제공 영상 캡쳐/https://youtu.be/TTd6dIBY6Ho)
농업기술센터가 기획하고 김창성 대표가 작사·작곡한 동요에 경쾌한 율동을 더해 3D영상으로 구현한 가와지볍씨 홍보영상. 고양시 관내 유치원 및 초·중고에 배포 예정이다.(김창성 대표 제공 영상 캡쳐/https://youtu.be/TTd6dIBY6Ho)

좀 있으면 푸르른 5월, 어린이날도 얼마 안 남았다. ‘고양 가와지볍씨 박물관’이 부모님 손 붙잡고 소풍 오는 어린이 관람객들로 붐비기를 기대해 본다. 하긴 너무 붐벼도 문제긴 하겠다. 코로나 시국 아닌가.

고양 덕양구 원흥동(3호선 원흥역) 소재 ‘고양 가와지볍씨 박물관’
고양 덕양구 원흥동(3호선 원흥역) 소재 ‘고양 가와지볍씨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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