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복수
사랑의 복수
  • 조규남 목사/우림복지법인 대표
  • 승인 2021.04.06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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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남 목사
조규남 목사

오전 복지관 도시락배달의 맨 끝 집은 법곳동의 김OO 할머니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말 그대로 도시락배달의 임무만 수행하면 되기에 집의 위치만 알 뿐이다. 그런데 오늘 나를 슬프게 만든 전혀 예상치 못하게 일어난 황당한 사건이 이곳에서 발생했고 그 첫째 요인은 요즘 나를 괴롭히고 있는 빌어먹을 나의 빈뇨증 때문이었다.

맨 끝 집에 다다르기 전 소변이 마려웠고, 끝 집에 다다랐을 때 마침 수령자 할머니가 문밖 의자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따끈함이 느껴지는 도시락을 전해드리면서 화장실 사용의 양해를 구했다. 응당 "그러구려. 이렇게 먼 곳까지 도시락배달 하느라 수고하시는데..." 하며 화장실 안내를 해주실 줄 알았다. 그러나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안 돼요!" 나는 너무 예상외의 반응에 스스로 놀라 "네?"하고 되물었다. "화장실 더러워지니까 안 된다고!"

그 집을 돌아 나오면서 등 뒤에 느껴지는 허탈감과 씁스레함, 심지어 모멸감에 수치심과 어떤 배신감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나 자신의 슬픈 감정이었다. 참으로 서글펐다. 감사의 마음은 그만두고라도 어쩌면 저리 이기적일까? 그 할머니에 대해 서글픈 마음이 나의 가슴 한편을 눌러왔다. 곱게 늙는다는 말이 있는데 저 할머니는 어쩜 저렇게 모진 감정으로 늙어갈까? 받을 줄만 알았지 전혀 베풀 줄을 모르는 이 노파는 무엇으로 남은 생을 채우려 할까?

이 집에 첫 봉사를 갔다 돌아올 때 우연히 마주치게 된 옆집 할아버지가 내게 성난 목소리로 "뭐 하러 이런 집에 도시락 갔다 줘요? 이런 집은 안 갔다 줘도 돼요!" 라고 말하기에 괜히 심통 부리는 심술쟁이 영감쯤으로 알고 지나쳤는데 오늘 이런 박대를 당하고 보니 평소 이 노파가 주위 이웃들에게까지 야박하게 굴었다는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나는 너무 충격이었다. 그리고 말문이 막혔다.

엊그제 복지관 도시락배달 마지막 집인 법곳동의 김OO 할머니로부터의 화장실 사용 거절로 인한 상처(?)를 받은 것의 감정 처리를 오늘 아침 기도 안에서 정화하였다. 그를 미워하는 감정보다 오히려 측은지심을 품고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강퍅하지 않을 수 없었고 또 늙고 허리도 아파 제대로 움직일 힘도 없어 꼼짝하기 싫은데, 외부인에게 화장실 안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심리적 부담감이 내게 화장실 사용을 거절한 속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예전 어머니가 꼬부랑 허리로 집안 정리하실 때 힘들어하시던 생각을 하면서 미운 마음이 사라졌다.

인간이 얼마나 간사하고 나약하며 위선적 존재인가? 이제 내 안의 문제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할머니 입장에서 스스로 반문하기 시작했다. - 아니 내가 언제 도시락배달 해 달라고 했어? 복지관 너네가 스스로 알아서 배려해 준 일이잖아. 내가 언제 당신보고 도시락배달 부탁한 적 있냐고? 당신이 스스로 당신 좋아서 자원봉사 차원으로 수고하는 거잖아? 아니 내게 뭘 바라고 이런 거야? 내게 어떤 보상을 기대하고 이러는 거냐고?! 팔십 넘어 꼬부라진 가난한 영세민 노인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던 거냐고? 그깟 화장실 사용 거절한 일로 나를 그토록 폄하해? 우리 집 화장실 내가 쓰게도 못 쓰게도 할 수 있는 게 내 권한인데 거절했다고 내가 뭐 잘못하기라도 했다는 거야? 그냥 한마디로 거절했지만, 화장실 부분은 내가 말하고 싶지 않은 게 있어 그랬는데, 내가 그걸 잘 알지도 못하는 외간 남자에게 일일이 설명해줘야 하는 무슨 의무라도 있는 거야? 안 된다면 무슨 사정이 있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것이지 그걸 갖고 내게 앙심을 품어? 자원봉사 한답시고 무슨 칙사 대접이라도 받길 기대한 거야? 뭐? 당신이 목사라고? 목사가 그렇게 속이 좁고 이해심이 없어? 그러면서 무슨 사랑이네 용서를 외치는 거야? 나 도시락배달 안 해줘도 좋으니까 그런 마음이라면 아예 여기 발길 끊어. 그래도 굶어 죽진 않을 테니까. 지도 늙어가는 주제에~“

게임은 끝났다. 내가 그를 미워할 이유가 전혀 없고 또 그에게 요구할 그 무엇도 없었다. 내게 서운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은 어쩜 내 안에 나의 자원봉사 선행(?)으로 인한 자기애로서의 보상심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내 마음속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따라주지 않은 그에게 마음의 갑질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글쎄다...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재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에게 복수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로부터 받은 거절의 모멸감을 역으로 더 큰 사랑을 베풀겠노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를 위해 더욱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에게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잡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그에게 전날의 수치(?)를 복수하기로 단단히 마음먹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의 집 문을 두드렸을 때 오늘은 그가 집 안에 있었다.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도시락배달입니다. 할머니 이름이 김OO이지요?" "네~"

"김OO 할머니, 사랑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라고 어린아이처럼 큰 동작으로 하트 모양을 그리며 친근감을 보였다. 그러자 이내 반응이 왔다. 나로서는 기대치 않았던 온화한 음성의 뜻밖의 인사가 되돌아왔다. "네, 안녕히 가세요~"

"할머니,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할머니를 무척 사랑하십니다."

그를 향한 사랑의 복수는 일단 성공이다. 그의 반응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내 안에서 진정으로 그를 향한 사랑이 움텄기 때문이다. 나 자신 안에서 느껴지는 사랑과 평안 그리고 기쁨, 이것이 믿음처럼 보이지 않는 증거로 사랑의 승리를 증거한다.

오늘은 도시락배달 가기 전에 그를 위해 기도하며 아울러 나의 빈뇨증으로 민폐를 끼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었다. 그리고 오늘은 집에서 출발 직전 소변을 본 후 도시락배달을 모두 끝내고 복지관에 도착한 후에야 용변 처리를 했으니 이 문제에서도 나는 사랑의 복수처럼 성공한 셈이다. 주께서 내 중심을 아시고 내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라는 믿음이 왔다. 사랑을 통한 믿음의 부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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