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니스트
박종호 칼럼니스트

과정은 불안했지만, 결과는 아름다웠다. 오세훈과 안철수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후보 단일화에 성공했다. 아주 드문 경우다.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과 자살로 서울시장을 다시 뽑는 보궐선거다. 오세훈과 안철수와 박원순이 10년 만에 서울시장직을 두고 다시 만났다. 세 사람의 관계는 기묘하다. 10년 전 오세훈은 민주당의 전면적 무상급식에 반대하면서 ‘저소득층에 대한 선별적 복지’를 주장했다. 시장직을 걸고 주민 투표를 제안했다. 민주당의 ‘투표 안 하기 운동’ 등 적극적인 반대로 투표율이 미달하고 오세훈은 시장직을 내려놨다. 자신이 한 약속을 지켰다. 오세훈이 떠난 자리에 안철수가 압도적인 야당 후보가 되었다. 그러나 안철수는 사회운동가였던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자리를 양보했다. 생각지도 않던 박원순은 우연히 서울시장이 됐고 10년이 흘렀다.

‘權不十年’이란 말처럼 청렴과 공정의 상징인 박원순은 시장이 된 지 10년 만에 여비서 성추행으로 고소당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빈자리를 ‘시장직을 내던진’ 오세훈과 ‘시장직을 양보한’ 안철수가 10년 만에 다시 만났다. 좌파 시장을 만든 두 사람이 좌파 정부를 타도하기 위해 다시 만난 것이다. 이런 경우는 의도적으로 연출해도 만들기 어려운 우연이다. "정치는 生物"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밀리던 오세훈은 나경원을 꺾고 제1야당 후보가 되었다. 여론 조사에서 항상 선두였던 안철수를 오세훈이 이기고 안철수는 깨끗이 결과에 승복했다. 참으로 보기 드문 보수 후보의 단일화 성공이다. 아름답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라는 정치 격언이 생겼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는 부패하고 보수는 분열했다. 대통령 선거는 말할 것도 없고 교육감 선거도 단일화된 좌파 후보가 분열된 우파를 압도적으로 이겼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이 좌파 교육 시험장으로 변했다. 2017년 대선에서 안철수와 홍준표로 분열된 우파는 문재인에게 졌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김문수와 안철수로 분열된 우파가 박원순에게 졌다. 그런 우파가 이번에 단일화를 이룬 것이다.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두고 대한민국 수도 서울과 제2의 도시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이해찬은 민주당의 100년 집권을 자신 있게 얘기했다. 그런 민주당의 서울특별시장과 부산직할시장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성추행으로 물러났다. 우연이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상징하는 바가 크다. 겉과 속이 다른 좌파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2015년 민주당 문재인 대표는 "재선거 원인 제공자는 후보를 내면 안 된다"라고 하면서 당헌을 개정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선거법 위반이 아닌 추악한 성추행으로 인한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위해 당헌도 개정했다. 대통령이 자신이 한 말조차도 지키지 않는다. 역시 좌파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그때 그때 다르다. '내로남불' 이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번 보궐선거 의미는 단순히 남은 임기 1년의 시장직 문제가 아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천심을 알아보는 상징적 선거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든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고 '586 주사파'를 척결할 수 있느냐?”를 묻는 선거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선거다. 오세훈과 안철수의 단일화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안철수는 10년 전과 달리 정치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졌지만, 원칙 있게 졌다”라고 깨끗이 승복했다. 통 큰 정치인의 모습이다. 앞으로 변화될 야권구조에서 안철수의 역할이 기대되는 이유다. 윤석열은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차기 대통령’ 여론 조사에서 단연 선두다. 중도를 아우를 수 있는 안철수와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어떻게 움직일까를 국민이 주시하고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미래는 예측해 볼 수 있다. 국민의 신뢰를 잃고 야당다운 투지를 보여주지 못한 ‘국민의힘’에 실망한 우파는 차라리 윤석열과 안철수를 중심으로 우파와 중도를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당을 만드는 것을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단일화에서 보듯이 무력해도 102석의 제1야당의 힘은 강했다. 정치는 명분과 실리 싸움이다. 국민의힘은 윤석열과 안철수가 당당하게 들어올 수 있는 명분을 주어야 한다. ‘정권 교체’ 만큼 확실한 명분이 없다. 대권 주자가 없는 제1야당으로선 정권 교체를 위해 반드시 윤석열과 안철수를 영입해야 한다. 분열해선 안된다. 소중한 자산인 안철수에게 상처를 줘선 안된다. 법치와 정의와 공정의 화신이 된 윤석열에게 최대한의 예우를 해야 한다. 김종인 이후 새로운 당 대표가 삼고초려의 자세로 이들을 모셔야 한다. 중도와 보수를 아우르는 빅텐트(Big Tent; 여러 정치 세력의 힘을 모으는 연합 정치)를 만들어 새로운 당을 만들어도 좋다. 그리고 국민의 공감대도 얻고 당내 불만을 없애기 위해 윤석열과 안철수와 당내 후보들이 ‘미스터 트로트’ 방식으로 대통령 후보를 뽑는다면 우파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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