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만서 은퇴연구소장
박만서 은퇴경제연구소장

은퇴는 매우 위험한 변화이다. 이전까지의 환경과 전혀 다른 삶의 환경에 들어서는 것, 그것도 아주 급작스럽게 들어서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우리는 매우 큰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은퇴 리스크’는 이러한 위험을 지적하고 경고하는 용어이다. 은퇴 후 삶에 찾아드는 위험 요소들은 많지만, 대표적인 것들로 노화에 따른 중대한 질병의 발생, 경제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다가 도리어 겪게 되는 금융사기와 창업 실패의 위험, 그리고 가족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맞게 되는 황혼이혼 등을 꼽을 수가 있는데, 그중 황혼이혼이 비록 그 발생빈도는 다른 것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이혼 후의 자산 및 생활비의 변동 측면을 고려해 보면 그 경제적 위험도와 심각성은 오히려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황혼이혼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20’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지속 기간이 20년 이상인 부부의 황혼이혼 건수는 3만 8446건으로 전체 이혼 가운데 34.7%를 차지했다고 한다. 이는 지난 1999년의 2.4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왜 20년 이상을 함께 산 배우자와 이혼을 할까? 그것은 은퇴와 큰 관련성을 맺고 있다.

은퇴한 사람들은 은퇴 후에 깊은 상실감을 갖게 되고 이로 인해 커다란 정신적 혼란을 겪게 된다. 그리고 이로부터 생기는 부정적 감정을 자신의 배우자 또는 자녀 등 주변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표출하게 된다. 이를 ‘은퇴증후군’이라 한다. 이러한 남편의 행동에 대해 아내들은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불만을 쏟아내게 되고 때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다양한 질환을 앓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은퇴남편 증후군’이라 부른다. 이 둘이 여과 없이 부딪히면서 총성 없는 전쟁이 일어나고 이것이 일상화되면 이는 두 사람을 견딜 수 없는,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뜨리게 된다.

직장에서 좋은 실적을 내면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시니어일수록 오히려 원만한 가정생활을 영위하기가 더욱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다. 성공한 남성일수록 몸과 마음이 기업 문화에 최적화되어 있고, 사고방식이 모두 직장에서 요구하는 대로 체화되어 있어 가정에서도 직장생활처럼 행동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기업에서 환영받던 전략 수립의 능력과 추진력, 그리고 비판의식 등은 가정에서는 결코 환영받지 못할 덕목들이다. 가정은 결코 목표를 수립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달려가는 목표지향적 결사체가 아니다. 가정은 오히려 주관과 가치관이 다른 두 주체가 만나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가운데에서 서로에게 만족을 주고받는 관계지향적 공동체이다.

인간에게 행복한 삶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라고 한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사회적동물이라고 이미 이천삼백년 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였다. 75년간 성인 발달 연구를 통해 행복의 조건을 연구한 하버드 의대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행복한 삶을 산 사람들은 그들이 의지할 가족과 친구와 공동체가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누구나 대인관계를 잘 맺고 싶어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성격, 가치관, 기대, 이익 등 다양한 요소들의 충돌이 좋은 관계 맺기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인관계의 핵심은 이 같은 요소들의 충돌을 회피하거나 최소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자신과 상대의 성격이나 가치관, 또는 선호 등을 아는 것은 이러한 충돌을 예상할 수 있게 하고 이를 통해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격이나 가치관 검사를 해 보는 것은 좋은 관계 맺기에 매우 훌륭한 전략이고, 어쩌면 필수적인 선결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검사 도구들로는 MBTI, 교류분석, 에니어그램, 가치관검사 등을 들 수 있다. 혹시 배우자와, 자녀와 형제 또는 사회적 관계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같은 도구를 꼭 한번 활용해 보자. 그리고 난 다음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보자.

몸이 아프면 열이 나듯이, 마음이 아프면 화가 난다. 불(火)이 많으면 재(炎)가 되는데 여기에 말(言)을 얹으면 담(談), 즉 이야기가 된다. 서로(相) 이야기를 나누면 곧 상담(相談)이 되어 화를 없애주는 것이다.

이런 말이 생각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지금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곧바로 소통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서로의 성격과 가치관을 알고 그것을 서로 존중해 주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 소통이 가능해지고 행복한 노후생활이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성격검사, 한번 해 보고 대화를 나누어 보자! 다른 방법보다 가성비가 매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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