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만서
박만서 은퇴경제연구소장

[고양일보] 요즘 워라벨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라는 말의 앞글자만 따서 만든 조어이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말이다. ‘월화수목금금금’의 패턴으로 직장 생활을 했던 시니어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꿈만 같은 이야기이지만 지금은 버젓이(?) 저녁과 노을이 있는 평온한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개인이나 직장이 모두가 노력하는 시대다.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연령 분절적인 삶을 살아왔다. 태어나서 20대 중반까지는 부모님 슬하에서 양육을 받으며 홀로서기를 준비한 교육의 시기였고, 20대 중반부터는 가정을 만들며 직장에 들어가 성공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노동의 시기였으며, 은퇴 후 60세가 넘어서야 비로소 쉴 수 있는 여가의 시기를 만나게 되었다. 

문제는 막상 쉬면서 즐기려 하니 노는 것도 배움이 필요한 것인 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사회적 연령범주에 따라 교육, 일 그리고 여가를 각각의 분리된 시기로 사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전체 생애 내내 이들을 적절히 조정하고 배분하는 통합적인 체계를 구축할 때 노후의 행복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고령사회이다.

그렇다면 이쯤하여 여가가 무엇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우선 시간적 측면의 정의로 여가는 ‘남는 시간’이다. 그래서 늘 여가는 뒷전으로 밀렸다. 주된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하는 그 무엇에 불과하니 전혀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한편 활동적 측면에서 보는 여가는 본인이 자발적으로 즐기는 모든 활동을 가리킨다. 내가 원해서 즐기는 것은 모두 여가이니 생각보다 여가가 다양한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여가생활은 상당히 한정적이다. 이는 2020년 2월 5일에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국민 여가활동 조사’의 내용을 보면 잘 나타나는데, 전년도 한국인이 주로 하는 여가활동으로 TV시청이 71.4%로 가장 많고 뒤를 이어 잡담이나 통화하기, 인터넷 검색, 산책하기, 쇼핑, 낮잠자기 순이었다. 

그런데 이 같은 여가활동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혼자하는 활동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 비율은 54.3%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가활동은 혼자 할 때에 비해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어 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가급적 함께하는 여가활동을 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편 한국인의 평균 여가시간은 평일 3.5시간, 휴일 5.4시간으로 조사되어, 2016년에 비하여 평일과 휴일 각 0.4시간이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아마도 주5일 근무제와 워라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진 영향으로 보인다. 다행스런 현상이다.

여가는 중요하다. 특히 일에서 물러난 시니어에게 있어서 여가활동의 질은 대단히 중요한 삶의 척도라 할 수 있다.

사람이면 누구나 스트레스를 겪게 되는데 물론 시니어도 예외는 아니다. 스트레스는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관리할 수 있다. 또한 스트레스가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다. 좋은 스트레스도 있기 때문이다. 즉 적당한 긴장감을 주고 일을 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해 줌으로써 새로운 일을 감당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이를 ‘유스트레스’(eustress)라 한다. 이와 반대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주는  (우리가 싫어하는) 스트레스는 ‘디스트레스’(distress)라 하는데 이를 이기는 방법이 바로 여가활동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스트레스를 피하는 방법을 한 두 가지씩은 알고 있다. 어떤 사람은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며, 어떤 이는 음악을 듣거나 어떤 이는 잠을 자고, 또 술을 마시기도 한다. 모두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결국 스트레스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함으로써 기분을 좋게 만들어 이전의 나쁜 감정, 즉 스트레스를 없애려 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여가활동인 셈이다. 이제 이러한 여가활동을 최소한 5가지 이상 다양하게 갖고 상황에 따라 즐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신적인 활동보다는 신체적 활동으로 확장시켜야 할 것이다.

스트레스는 정신과 신체의 균형인데 어느 한쪽이 치우치면, 예를 들어 화가 나면 정신이 올라가서 균형을 잃게 되는데 이때 이 무너진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신체를 올려주어야 한다. 곧 운동을 통해 신체의 열을 올려서 균형을 갖게 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생겼을 때 신체를 올리는 대신, 여전히 정신적인 것- 먹기, 수다, 음악 감상, 음주 등 –이어서 균형을 맞추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니까 풀리는 느낌이 드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불균형을 축적하는 것이다. 이제 신체적인 활동, 곧 내게 적합한 다양한 운동 등을 배우고 익히도록 하자.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여가꼴이 있다. 우선 혼자 놀 때 행복한 혼자즐김형과 함께 놀 때 행복한 함께즐김형이 있다. 또 정신적인 것을 추구할 때 행복한 정신즐김형과 신체적인 것을 할 때 행복한 신체즐김형이 있다. 이들을 조합해보면 혼자정신형(SM), 혼자신체형(SP), 함께정신형(GM), 함께신체형(GP)의 네 가지 여가꼴이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어디에 해당되는 것인지 그리고 내가 어떤 여가꼴에 해당하는지 잘 살펴보아 그와 유사한 여가활동을 확장해 보자. 시니어들은 방안에 앉아 그저 TV시청에 몰입하지 말고 – 혹자는 이를 스스로 고려장하는 행위라고까지 표현한다 – 적어도 일주일에 3시간 이상 하는 활동을 5가지 이상 만들어 여가 파트너와 함께(배우자와 함께라면 더욱 좋다!) 하루에 5시간 이상의 여가를 갖도록 하자. 

미시시피대 의대에서 하루5시간 이상 여가를 즐기면 암 예방율이 무려 49%에 이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여가활동은 그야말로  천연항암제인 것이다. 스트레스도 풀고 암도 예방하는 무료 백신을 맞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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