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릉
경릉

[고양산책4] 서오릉...조선 6백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왕과 왕비의 언덕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서오릉(西五陵)은 조선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서쪽에 있는 5개의 능을 말하며 세계문화유산이자 조선 제8대 예종과 제19대 숙종 임금 등 조선조 2명의 임금이 묻혀있는 곳입니다. 예종의 능침이 창릉(昌陵)이고 숙종의 능침이 명릉(明陵)입니다.

명릉
명릉

서오릉은 또 조선 제7대 세조의 맏아들인 의경세자가 묻힌 곳(敬陵)입니다. 사실 서오릉은 564년 전 세조가 죽은 아들을 위해 능지를 직접 돌아보고 조성하면서 시작된 부정(父情)의 산물입니다. 이후 창릉, 익릉 등 다른 능들이 차례로 들어섰습니다.

의경세자는 1455년 세조 1년에 세자로 책봉된 후 20세에 병으로 죽고 세조의 둘째 아들 성종이 임금이 되면서 의경 세자를 덕종으로 추존했습니다.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가 의경 세자가 덕종으로 추존되자 인수대비가 된 소혜왕후가 덕종과 함께 경릉에 있습니다.

이외에 예종의 두 번째 왕비 안순왕후(창릉), 숙종의 첫 번째 왕비 인경왕후(翼陵), 숙종의 두 번째 왕비 인현왕후,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 영조의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의 능(弘陵)이 있습니다.

덕종의 능침
덕종의 능침

왕과 왕비가 묻혀있는 경릉, 창릉, 익릉, 명릉, 홍릉 등 5개 능 외에 순창원(順昌園), 수경원(綏慶園), 그리고 대빈묘(大嬪墓)가 서오릉 안에 같이 있습니다.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고 원은 왕세자와 왕세자빈 또는 왕의 친척 무덤이며 그 외 왕족의 무덤은 일반인의 무덤처럼 묘라고 합니다.

순창원은 제13대 명종의 아들 순회세자와 세자빈인 공회빈의 묘이고 수경원은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묘입니다.

서오릉에는 숙종의 후궁이었던 장희빈의 묘가 있습니다. 장희빈은 20대 경종의 생모입니다. 그녀는 1689년 기사환국 때 인현왕후가 폐위된 후 왕비로 책봉되었다가 갑술환국 때 다시 희빈으로 강등되었습니다.

평일 오전에 찾아간 서오릉은 시끄러운 바깥 세상과 달리 조용하고 평화로왔습니다. 매표소 바로 옆에 역사문화관이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으로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 서오릉은 문을 열어 코로나19로 답답한 마음을 풀고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창릉
창릉

능 안으로 들어가 걷다가 처음 보는 능이 명릉입니다. 사실 서오릉의 8개 능과 묘 중 가장 중요한 능이 46년간 조선을 통치한 숙종이 잠든 곳인 명릉이 아닌가 쉽습니다.

명릉의 오른쪽 편에는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이 쌍릉으로 나란히 있고 서쪽 언덕에 인원왕후의 능이 조성돼 있습니다.

명릉을 나오면 마주하는 것이 재실(齋室)입니다. 재실은 능 제사와 관련한 전반적인 준비를 하는 곳으로 왕릉을 관리하던 능참봉이 상주했습니다. 재실을 지나니 순창원이 나오고 더 가니 경릉입니다.

장희빈묘
장희빈묘

경릉에서 경사길을 걸어 올라가다 왼쪽 편에 장희빈 묘가 있습니다.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던 여인의 묘는 죽어서도 숙종과 함께 하지 못하고 외따로 떨어져 있어 쓸쓸해 보였습니다.

장희빈을 몹시도 총애하던 숙종은 질투가 심했던 장희빈을 내쫓고 무수리 최씨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인, 서인의 붕당 정치의 회오리 속에서 결국 숙종은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립니다.

대빈묘를 지나니 홍릉이 있는데 왕비의 능만 있고 영조의 능은 비어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영조가 세상을 떠난 후 동구릉의 원릉에 능을 조성해 이곳은 빈 채로 남았습니다.

창릉은 대빈묘와 홍릉을 지나 서쪽 끄트머리에 있습니다. 제3기 신도시의 이름이 된 창릉은 예종과 안순왕후의 능입니다. 창릉 밖 울타리 너머 멀리 아파트들이 보입니다. 신도시를 건설할 때 아파트를 능에 너무 가까이 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창릉을 둘러본 후 시간이 남으면 서어나무길과 소나무길을 산책하면 좋습니다. 익릉과 수경원은 오던 길을 되돌아 나오는 길에 돌아보았습니다.

재실
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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