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 간간이 허우적대던 인생
그물, 간간이 허우적대던 인생
  • 김경희 작가
  • 승인 2021.01.19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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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환 (1938년~)

좁은 골목길을 따라갔다. 대문 옆에 혼자 서 있는 문패들을 지나 당도한 그 집 문패에 나란히 서 있는 부부 이름 ‘송용환 박영순’ 열려진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자스민 꽃향기가 두 분 계시는 내실로 안내했다. 어르신은 사모님을 곁에 두고 한가로이 누워 TV를 보고 계셨다. 어르신은 쑥스러운 미소로 인사를 대신했지만 어르신 인생의 큰 락(樂) 이었던 민물 고기잡이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는 화색(和色)이 만연했다. 어르신이 수십 년간 청성면 냇가에 수천 번을 던져 놓았던 그물, 어르신도 인생이 쳐놓은 그 그물에 갇혀 허우적거렸던 한 때를 회고하셨다.


송용환 어르신
송용환 어르신

서른한 살에 난생처음 고향마을을 벗어나다. 강원도 인제로 군대 가던 날

대처(大處)에 나가 이름을 날려야 장부의 기개가 사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금산 사람으로 83년을 살아온 나는 역사에 남을 위업을 남기지 않았지만 가정을 이루고 마을의 일원이었다. 소시민으로 사는 인생에도 희로애락과 곡절이 있다. ‘동갑내기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을 여든이 넘어서도 앉아서 받아먹으니 그것으로 족한 인생이다’라고 자부한다. 누군가 그런 나에게 졸장부라 한다면 당신은 얼마나 대장부 같은 삶을 살았냐고 되묻고 싶다.

나는 부리면에서 1938년에 태어났다. 시골에서 농사꾼으로 소박하게 살아왔다. 출생신고가 늦어 도깨비 나이를 갖고 태어났다. 우리 연배들이 서너 살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하는 고무줄 나이로 도깨비 나이라고도 불렀다.

시골 청년의 직업이 다들 비슷한 모습이라 나도 벼농사 논농사를 짓고 밭에 고추 콩 깨를 심어 수확을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을 읽어나갔다. 인생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될 무렵인 21살에 보은 사는 박씨네 여식과 결혼을 했다. 아내는 보은 한약방 집 딸이라 큰 고생 안하고 집안일을 돕다가 나에게 시집을 왔다. 중신을 섰던 분은 우리 집이 먹고 살만하다고 적당히 포장 했겠지만 살림은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다. 유복하게 살아온 아내는 나를 만나 고추 같이 맵다는 시집살이를 혹독하게 치렀다. 6남매의 맏이였던 나는 시집와서 고생하는 아내를 감싸주기에는 나도 스무 살을 겨우 넘겨 아직 그릇이 작았고 매일 살아야 하는 날들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여동생부터 남동생까지 아내가 거둬야 할 식구들이 손으로 꼽아도 여덟이었다. 우리 막내 동생 돌잔치를 봄에 하고 아내는 그 해 가을에 시집을 와서 우리 큰 아이보다 시동생을 먼저 돌보게 되었다. 여자들의 삶은 그렇게 시집 온 첫날부터 시댁을 위해 헌신하게 된다. 시집가면 어느 집 귀신이 된다는 말로 아예 못을 박았다.

1960년대 특별한 기술이나 학식이 없던 대부분의 시골 청년이 걷던 길을 나도 걸었다. 결혼 후에도 곡물 위주로 농사를 짓다가 우리 아이들이 9살 4살 되었을 때 늦은 나이로 군대에 가게 되었다. 출생신고가 4년이나 늦어 서른을 넘기고 군대에 갔다. 금산을 떠나본 적이 없던 나는 태어나서 30년 만에 처음으로 하루 종일 걸려 겨우 도착하는 곳까지 가보게 되었다. 군 복무지는 강원도 인제였다. ‘인제가면 언제 오나’ 라는 말이 있듯이 그만큼 멀고 먼 곳이었다. 태어나서 가장 멀리 떠나본 길이 군대 가는 길이었다. 인제는 오후 3시면 해가 떨어지는 첩첩산중 산골짜기였다. 새벽에 출발하면 밤중에 도착할 만 한 거리, 교통편도 마땅치 않아 터덜거리는 버스와 기차를 번갈아 갈아타며 당도하는 곳이었다.

인생이 쳐놓은 그물에 걸리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군 생활하면서 사고를 만나 뼈저리게 느꼈다. 입대 후 5개월 지난 어느 날 팔뼈가 부서지는 사고를 당했다. 내무반에 방역 소독차가 들어오다 양쪽 문이 열린 상태에서 맞은 편 문에서 바람이 불어와 하얀 연기가 내무반을 덮쳤다. 비명 소리에 소독차도 멈췄지만 이미 내 팔뼈가 부서진 후였다.

눈앞이 캄캄했다. 다른 부위의 살을 떼어다가 조각조각 붙여서 겨우 수술을 했다. 앞길이 막막했다. 9살 4살 어린 아이들의 눈망울이 떠올라 뼈가 부서진 통증보다 아이들 생각에 한숨만 토해냈다. 농사를 직업으로 먹고 살던 시골 농사꾼이 팔뼈가 부서졌으니 기막힌 일이었다. 50년 전, 의학기술도 변변치 않던 시절, 팔뼈가 부서지는 건 앞길 창창한 서른 한 살의 나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원주 육군 병원에서 수술하고 8개월간 입원을 했다. 처음 사고 후에는 아버님 혼자 오셔서 죄스러운 마음으로 대신했다. 다음번 면회 때 아버님 뒤에서 떡보따리를 들고 서 있던 아내를 보니 미안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눈물 흘리며 훌쩍거리는 아내를 보고 있자니 난감하고 죄인이 따로 없었다. 원주 육군병원에서 8개월 치료받고 대구 육군병원으로 후송 가서 거기서 의가사 제대를 했다. 평생 불편함을 안고 살았고 아직도 손가락이 부자연스럽다.

제대 후에도 농사를 짓는 시골 농부로 살아왔다. 우리 마을은 빙어가 살던 깨끗한 천(川)이 자랑이었다.

1960년대 그 때도 냇가의 물들은 1급수로 오염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우리 동네는 생선국수로 유명한 고장이 되었다. 나는 생선국수를 좋아했고 직접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았다. 불과 5년 전까지도 즐기던 나의 큰 락(樂)이었다.

동네 입구 벚꽃나무길 옆 냇가에서 그물 던져 건져 올린 붕어, 매기, 모래무지들이 눈에 선하다. 꼬리를 팔딱거리며 그물을 뚫고 나오려던 그 그림들이 아득하다. 흔한 시골풍경이지만 눈감고 그려보면 그리움은 바로 추억이 된다. 사는 게 불편해서 문제였었지 그 시절 투박하고 촌스럽던 우리네 삶에 사람냄새가 흠씬 배어 있었다.

“던져놓은 그물 안에서 팔딱거리는 녀석들을 잡아 올리는 쾌감은 시골 살이 답답할 때마다 큰 위로가 됐어. 아내가 갖은 양념으로 만들어 주는 생선국수는 별미중의 별미였지. 생선국수가 손이 많이 가서 내장은 빼고 뽀얗게 뼈를 우려내고 또 우려냈지. 국물을 끓여서 국수를 넣어 삶아야 돼. 국물이 걸쭉해야 제 맛이 나거든. 일흔 여덟까지 낚시를 취미로 삼았어. 혼자 안 먹고 여러 사람 불러서 같이 먹었지. 아내는 생선 비린내를 유독 싫어했는데 내가 좋아한다고 수시로 생선국수를 끓여서 대접했어. 얼마나 고역이었을까. 사실 생선 비린내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못할 짓이지. 그래도 부엌에서 그릇 소리 한번 크게 안 났으니 아내가 고맙지.”

농부로 손맛 좋은 낚시꾼으로 세월을 낚다보니 엊그제 장가갔던 용환이가 60년 세월을 넘어 큰 아들이 환갑을 맞았다. 옛 어른들은 자식 환갑 때까지 살면 큰일이다 라며 오래 사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지 않았다. 엄하셨던 아버지는 회초리 들고 훈육하셨는데 명주 바지저고리를 차려 입고 다니셔서 ‘신선 할아버지’ 소리를 들으셨다. 그 아버님도 97세까지 장수하셨다. 이제는 부모가 자식 환갑을 보는 일이 예사가 되었다.

1938년생 격동의 역사 속에서 무명인으로 시골마을의 골목길을 오가며 그 시절을 지나왔지만 내 이름 석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렇게 소리 없이 사라져갈 인생이지만 아내 손길에 아이들 덕분에 나이든 나의 존재가 아직은 건재하다.

회 좋아하는 나를 위해 달마다 꼬박꼬박 아이스박스에 싱싱한 회를 담아 시골집을 찾는 아이들이 그저 고맙다. 먹을 것을 잔뜩 준비해서 두 시간을 달려 시골집에 와주는 아이들이다. 곁을 지키는 아내는 더 고맙다. 굳이 말로 드러내지 못했지만 베개 머리맡에 아내의 무릎이 자리 잡고 있으면 든든하다.

아내는 밭고랑에 한숨을 묻었지만 나는 청성면 냇가에서 그물을 던지며 한숨도 같이 던졌다. 그물 폭에 꼼짝 달싹 못하는 붕어가 내 신세처럼 처량해 보일 때도 있었다. 우리 인생도 던져진 그물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때가 수도 없었다.

슬며시 졸음이 찾아 올 때 베개 중심을 정수리에 맞춘다. 한 잠 자고 일어나도 아내는 곁을 지킨다.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는 아내의 뒷모습이 요즘처럼 어여쁠 때가 있었나 싶다.

그렇게 백년해로 하며 무명인(無名人)으로 산들 내 인생이 값없다고 하지 못한다. 이만하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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