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정 연세대학교 실내건축(구 주거환경학) 박사
구미정 연세대학교 실내건축(구 주거환경학) 박사

2021년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었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시간에는 늘 해맞이, 해넘이 행사들로 전세계가 북적였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조용히 가정에서, 온라인으로 그 북적임이 대체됐다. 정동진, 간절곶 등 강원도 주요 해맞이 도시들에서는 방문객을 통제하고 해가 뜨는 것을 실시간 생중계하기도 했다. 고양시의 대표적인 해맞이 장소는 행주산성이다. 많은 시민들이 새해의 첫 해를 보기 위해 방문했을 이곳은 또한 고양시를 대표하는 역사유적지이다.

행주내동 덕양산에 위치한 행주산성 초입에 한옥문을 지나면 오른쪽에 권율장군의 동상이 보인다. 칼을 기대어 힘찬 기백으로 서있는 이 동상을 지나 직진으로 가다보면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나지막이 오르는 언덕길을 걷게 된다. 등산이라기보다 산책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이 길을 따라가면 눈앞에 한강과 붉은색 아치가 아름다운 방화대교가 펼쳐진다. 그리고 같은 길로 조금 더 올라가면 얼마지 않아 행주대첩비가 있는 정상에 도달한다. 고양시민에게 행주산성은 자유로와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멋진 장소이다. 하지만, 고양시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입장에서 행주산성은 꼭 방문해야 하는 명소일까? 만약 그렇다면, 행주산성은 자연경관이 매력요인일까? 아니면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무찌른 권율장군의 이야기가 매력적인 것일까?

도시를 방문할 때 오래된 박물관, 유명한 작품이 있는 미술관, 훌륭한 건축물 또는 멋진 자연경관 등에서 우리는 방문하고자 하는 동인(動因)을 갖는다. 이런 다양한 매력요인들은 소위 ‘~카더라’라는 스토리와 결합하면 더 큰 힘을 얻는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인어공주 동상, 이탈리아 로마의 트레비 분수,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등은 그 도시를 대표하는 명소이자 매력요인이다. 실제 방문해 보면 그 크기나 위치, 수많은 인파 등으로 기대한 바에 못 미칠지라도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방문 인증샷’을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어릴 때부터 들어 온 지고지순한 인어공주의 사랑을 눈으로 확인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분수에 동전을 던지며 첫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기도 하며, 천재 화가 다빈치가 남긴 눈썹 없는 여인의 초상화를 보며 ‘이게 왜 명화인지’ 생각해 보기도 한다.

우리는 역사책보다는 야사에 관심을 가지고, 교과서보다는 소설책에 더 흥미를 느낀다. 권율장군이 임진왜란 때 승리를 거둔 장소라는 역사적인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여인들이 행주치마로 전쟁을 도왔다는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로 인한 픽션을 더 오래 기억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선시대 전장인 이곳이 사실은 삼국시대 축조된 것이라는 사실은 또 다른 호기심을 낳게 한다. 힘이 있는 스토리에는 플롯, 등장인물, 배경 등의 여러 조건들이 요구되지만 그 콘텐츠는 다시 웹툰, 소설, 영화 등 여러 형태의 제작물로 확대, 재생산되어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소비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콘텐츠를 소비한 사람들이 실제 그 곳을 방문하여 인증샷을 남겨 또다시 온라인에서 소통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도시마케팅을 위한 스토리텔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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