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첩비가 있는 덕양산 정상에서 바라본 한강 조망.  미세먼지가 짙어 흐릿하게 보인다.
대첩비가 있는 덕양산 정상에서 바라본 한강 조망. 미세먼지가 짙어 흐릿하게 보인다.

[고양일보] 행주산성 기행

행주산성은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 중에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행주산성하면 행주대첩, 행주치마, 권율장군이 떠오르고 역사 시간에 배운 기억이 납니다.

한 해가 저무는 12월 28일 아침 행주산성에 갔습니다. 미세먼지가 짙게 낀 날이었습니다. 일산동에서 행주산성 제1주차장을 목표지로 내비를 설정한 뒤 지하차도를 지나고 복잡하게 도는 길을 따라 가다 보니 목적지인 주차장이 나타났습니다. 기자가 행주산성을 찾은 것은 아마 30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행주산성은 이름은 많이 들었어도 길이 복잡하고 대중교통수단이 여의치 않아서 쉽게 발길이 가지 않는 곳인가 봅니다.

실제로 행주산성에 가면 북한산 일대, 고양시, 한강을 넓게 조망하는 최고의 경관을 마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새해 해돋이 명소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러나 2021년 행주산성 해돋이는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됐습니다. 산성입구 정문에 해돋이 행사 취소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었습니다.

입구인 대첩문을 들어서서 처음 마주하는 것이 권율장군 동상입니다. 동상 앞에는 시들어진 화환만이 댕그렇게 너부러져 있습니다. 동상이 자리한 곳도 정문에서 비켜선 약간 외진 곳입니다. 임진왜란의 전세를 뒤엎는데 결정적 계기가 된 행주대첩의 명장을 기리는 장소가 초라해 보입니다. 그러나 권율장군은 의연하게 장검을 빼어 짚고 서서 성문 입구 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1593년 2월 12일 새벽, 서울에 집결해있던 왜군은 벽제관 승리의 여세를 몰아 3만의 대군을 7개 부대로 나누어 행주산성을 총공격했습니다. 오후 5시까지 지속된 치열한 전투. 2300명 정도 밖에 안되는 관군, 의병, 승군, 부녀자가 함께 한 총력전으로 왜군을 막아내던 조선군은 성 입구 쪽에서 왜군이 목책을 격파하고 넘으려 하자 위기를 맞습니다. 이 때 권율장군은 큰 칼을 뽑고 도망가는 승군 2명의 목을 베고 독전해 조선군의 사기를 되살려 마침내 왜군을 물리쳤습니다. 동상 뒤에 관군, 승군, 부녀자들의 전투 장면을 그린 3개의 부조는 그 때의 장면을 전하고 있습니다. 동상과 부조는 조각가 김세중 작품입니다.

행주치마 부녀자들을 그린 부조
행주치마 부녀자들을 그린 부조

권율장군 동상 인근에 권율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장사가 있는데 모르고 지나쳐 내려오는 길에 들렸습니다. 정상을 향해 조금 올라가다 왼편에 토성 자리가 있습니다. 행주산성은 덕양산(해발 124.9m)을 따라 흙으로 쌓은 토성으로 전체 둘레가 약 1km이고 약 415m가 남아있습니다. 2017년 토성 안쪽, 토성 아래 10여 곳에서 삼국시대에 쌓은 석성이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토성 자리는 실제로는 치열했던 전투지입니다. 성문 입구를 둘러싼 토성 자리는 6백여년 전 수 많은 사람이 싸우다 죽었으나 이름모를 산새들의 청량한 지저귀만 들립니다. 근처에 거북이 등 위에 세운 큰 비가 눈에 띄어 가까이 가보니 행주기씨유허비(幸州奇氏遺墟碑)였습니다.

계속 오르니 행주대첩에서 사용된 유물들의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는 대첩기념관이 있고 더 오르면 덕양정이 있습니다. 권율장군의 부하들이 장군의 공적을 기려 1602년에 세운 행주대첩비는 한옥의 비각 안에 보존돼 있는데 비바람에 마모되고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훼손해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지만 행주산성에서 가장 역사성이 있는 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씨는 당대의 명필가인 석봉 한호와 남창 김현성이 쓰고 비문은 권율장군의 사위인 오성 이항복이 지었다고 합니다. 행주대첩비에서 바로 보이는 덕양산 정상에 우뚝 세워진 행주대첩신비는 1963년 8월에 건립된 것으로 행주대첩비라는 큰 글씨는 박정희대통령의 친필이라고 합니다.

행주대첩비
행주대첩비

행주대첩신비가 서 있는 정상에서 사방은 탁 트여 눈맛이 시원합니다. 남쪽으로 가파른 급경사를 적시며 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서북쪽으로 김포대교와 신구 행주대교가 눈에 들어오는데 미세먼지가 짙어 잘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바로 아래에 덕양정이 있고 아래로 더 내려오면 진강정을 만납니다. 진강정 옆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1930년대에 처음 만들어진 한강수위관측소가 있는데 이곳에서 원당역으로 이어지는 행주누리길과 한강변 고양인재교육원으로 연결되는 행주산성 역사누리길이 나눠집니다. 진강정까지만 내려가보고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과 한강이 만나는 수변지대를 누리길로 만들어 놓은 행주산성 역사누리 길까지 가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이곳 행주산성 수변 데크길에 가서 한강의 풍경과 철새와 텃새들을 구경할 만합니다. 또 새로 조성한 행주산성역사공원, 행주서원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의 하나인 행주성당을 둘러보면 좋습니다.

토성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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