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대표
강철 대표

구자현 발행인: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많은 소상공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젊었을 때는 복싱선수로 지금은 고양시 화전역 근처에서 카페를 운용하고 있는 강철대표와의 인터뷰입니다.

강철 대표: 이름처럼 강철같이 강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코로나19 때문에 삶이 쉽지 않네요. 젊은 시절에는 복싱선수로 활동을 했고 지금은 저의 젊은 감각을 살려 저만의 스타일로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특히 카페는 인테리어가 중요한데 제가 복싱선수 했던 경험을 살려 감각적인 복싱인테리어와 제가 오랜 기간 꿈 궜던 할리 바이크 라이딩 스타일을 접목하여 저만의 차별화된 인테리어로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구 발행인: 젊은 시절 복싱선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강 대표: 아버지가 홍수환 복싱선수와 선수생활을 같이 하셨습니다. 또한 한국권투위원회에서 일하셨는데 저도 아버지의 영향으로 극동서부 김춘석 관장님에게 보내져 운동을 했습니다. 그 당시 세계챔피언 최용수 형님과 동고동락하면서 고등학교 때 리라공고로 아마추어 선수생활을 했습니다. 1997년 10월 28일에는 드디어 프로선수로 등록됐죠. 이후 2005년까지 8년 동안 복싱선수 생활을 했고, 2005년부터 2011년까지는 호수공원 근처 체육관에서 코치 생활을 했습니다. 2011년부터는 친동생과 같이 고양시 원당에서 복싱체육관을 운영했습니다. 2017년부터는 고양시 원흥동 도래울마을에서 직접 체육관을 운영하다가 2019년 1월에 폐업했습니다. 이후 아는 지인의 소개로 좋은 가게를 얻게 되서 지금까지 화전역 근처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구 발행인: 젊은 시절 대부분을 복싱선수와 코치로 생활하셨네요. 복싱은 어떤 스포츠 인가요?

강 대표: 저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남자라면 한번쯤은 복싱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분을 1라운드로 진행하는 복싱은 삶의 축소판 갔습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마지막 라운드를 최선을 다하고 마칠 때 몸에서 전율이 느껴집니다. 우리도 매순간 외부로부터 많은 압력이 들어오죠. 그러나 결국 우리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나의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상대를 보고 피하고, 상대방의 약점에 타격하는 감각은 복싱만 가질 수 있는 특징입니다. 요즘과 같이 힘든 시기에 자신의 자존감을 키우고 강인한 정신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부터는 여성분들이 다이어트를 위해 복싱을 하는 경우가 많이 생겼습니다. 사실 살 빼는 데는 복싱만한 것이 없습니다.

강철 대표의 복싱선수 시절
강철 대표(좌)의 복싱선수 시절

구 발행인: 복싱선수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무엇일까요?

강 대표: 이태원 참피온시티라는 체육관에서 훌륭한 아마추어 선수를 길러내신 황순철 감독님 그리고 현재 이훈 상무감독님 그 당시는 코치님이셨는데 두 분의 지도를 받으면서 권투선수 생활을 했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납니다. 많이 힘들긴 했지만 가장 큰 꿈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구 발행인: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은 무엇이었죠?

강 대표: 저는 26개월 의무경찰로 군 생활을 대신했는데요. 4기동대 56중대 이경 강철로 근무할 때 시절입니다. 1999년 6월 24일 새벽 5시경에 마포대교에서 투신 자살자를 구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깊은 한강물을 뛰어들어 센 물살을 가르며 자살하려는 사람을 구했는데 이때 저의 인생관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저의 행동에 자긍심이 느껴지면서 평생 좋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내 마음속에 남을 위한 봉사를 해야겠다는 자각을 준 경험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나의 삶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자살자를 구한 공로가 인정되어 최명길 총경님으로부터 표창장도 받았습니다. 제대 후 좀 더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어서 지역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09년에 일산에서 체육관코치로 있으면서 지역 아동복지시설에 후원을 한 추억, 2016년에 행신3파출소 우리 동네 보안관, 도래울초등학교에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위원, 2017년에 고양시 덕양구 홍도동 제22통장을 한 것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네요.

구 발행인: 카페를 운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강 대표: 8년 동안의 프로복싱선수생활로 몸이 좋지 않았고요. 특히 체육관운영을 하다 보니 상대방의 공격을 자주 받아줘야 했는데 제가 선수 때부터 오른쪽 회전근개가 좋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이 더 악화되면서 오른쪽 팔을 들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고민을 하던 중 저의 지인 한분이 좋은 가게를 추천해줬습니다. 그때부터 카페를 운영하게 됐습니다.

구 발행인: 복싱뿐 아니라 몇 년 전부터 바이크 동호회 회원으로 열심히 활동한다고 들었는데 무엇인가요?

강 대표: 저는 쉬지 않고 무언가 계속해야 되는 활동형인간인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저의 꿈은 바이크 동호회에 가입하여 활발하게 바이크를 타고 싶은 게 꿈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면 멋있잖아요.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서 바이크 동호회 중 최고인 할리데이비드 카페에 가입했습니다. 이후 현재까지 열심히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안타깝게도 코로나19로 활동은 못하고 서로 소식만 주고받고 있습니다.

강철 대표의 바이크와 카페
강철 대표의 바이크와 카페

구 발행인: 저도 가입하고 싶네요. 그러나 바이크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많아서 쉽게 가입할 수 있는 카페는 아닌 것 같네요. 그래도 남자의 로망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강 대표: 저도 처음에도 가입에 대해서 고민을 했지만 일단 가입하고 나니까 자신감이 생기고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안전수칙 위반으로 사고가 나는 회원이 있어서 안타까운 소식을 종종 듣습니다.

구 발행인: 제가 지인 분한테 들으니 부인이 현재 없고 자식 3명을 홀로 키운다는데 사실인가요?

강 대표: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1년 제 아들은 6개월 만에 태어났고 그 당시 부인은 몸이 많이 아팠습니다. 이후 부인은 종종 자식들에게 악을 지르고 고함을 지르고 했습니다.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화를 내는 빈도가 많아지면서 아이들이 어머니를 피해서 도망가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막내아들은 엄마를 보면 무섭다고 웁니다. 전 부인의 이러한 이유를 몰랐습니다. 근데 주변의 지인들의 도움으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부인의 건강검진을 해보니까 폐부분이 손상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재로 가습기 피해자들이 정신쇄약으로 술에 의지해 알콜중독자가 되거나 폭력을 가하는 성향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은 제가 아이 3명을 키우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쉽지 않네요.

구 발행인: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네요. 주변에서 많은 정신적 도움을 받는다고 하는데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강 대표: 고양시에 사단법인 드림컴트루라는 봉사단체가 있습니다. 사업을 하시는 40-60대 모임인데 회원은 40여분 됩니다. 저도 그 모임에 소속되어 있고 자주 모임구성원들과 소통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보지는 못하고 있고 서로 안부만 주고받고 있습니다. 저한테 정신적인 위안을 많이 주는 단체입니다.

구 발행인: 새해에 소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강 대표: 제 밑에서 자라는 큰딸과 둘째 셋째 아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소원입니다.

구 발행인: 가족의 건강과 행복이 중요하죠. 새해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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