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일보]  희망노트 임방호 대표 인터뷰 

“빈손으로 시작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일밖에 없었다” 

임방호 희망노트 대표는 45년간 노트 외길을 걸어온 노트업계 역사의 산 증인이자 70이 훌쩍 넘은 나이인데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있다. 1970년대 초 20대 젊은 나이에 전북 부안에서 상경해 을지로의 제지업체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1977년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서 희망노트를 창업해 고생 끝에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다. 12월 3일 고양시 장항동 인쇄 단지에서 만난 임 대표는 마침 연말연시 특수 계절상품 생산 독려를 위해 자전거를 타고 근처의 제2공장으로 가던 참이었다.

박 공식 기자: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은 없습니까?

임 방호 희망노트 대표: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죠. 우선 학생 상대로 하는데 학생들이 안 나오니까 매출이 3분의 1 정도 줄었죠. 그러나 직원을 줄일 수도 없고 끌고 가는데 우리 회사 뿐 아니고 전체가 다 어려우니 그러려니 감안하고 있지요. 금년 1월~3월까지도 매출이 크게 신장했는데 3월 이후로 계속 내리막길입니다.

박 기자: 작년까지는 매출 190억을 달성하고 잘 나갔지요?

임 대표: 매년 20~30%씩 성장했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수출은 작년 대비 조금 더 나가는 것같습니다만 그것도 크게 활발하지는 못합니다. 배가 확보가 안되는 등 한치 앞을 모르는 게 사업입니다.

박 기자: 수출은 신장이 되는 모양이네요.

임 대표: 그런대로 가고 있습니다. 지역은 일본, 대만 등이고 캐나다는 첫 주문을 받았는데 조건이 까다로워 할 일이 많아요. 그래도 시장이 커 하자는 대로 해볼 생각입니다. 주문만 받고 아직 수출은 손도 못 대고 있어요. 현재는 크리스마스 전후 연말 연시 계절 제품, 코스트코, 이마트 등에 납품할 제품 생산에 공장에서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박 기자: 캐나다 시장이 큰 가요?

임 대표: 그럼요. 우리나라에 있는 코스트코 매장이 12개 밖에 안되고 매출이 4조~5조 인데, 캐나다에는 코스트코 매장이 100개나 있습니다.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첫 단추를 잘 낄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일단 초도 주문을 받았어요. 5000만원 정도.

박 기자:  최근 신제품으로 지워지는 볼펜도 출시했지요?

임 대표: 제 큰 아들이 사업 수완이 있습니다. 연구를 많이 합니다. 개발한 볼펜 가지수가 엄청납니다.  지금은 단일 품목 갖고는 안 되요. 소비자 취향을 다 맞춰줘야 하니까. 제2공장에 볼펜 연구실이 있어요. 또 IC칩 장착 제품 개발을 위해 연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박 기자: 항균제품도 개발했지요?

임 대표: 새로 나오는 마커류 제품에는 항균전사 방법을 사용하여 항균성을 부여했습니다. 즉, 제품에서 손이 주로 만지는 부분에 전체적으로 항균처리 된 필름을 감아 소비자가 조금이라도 안심하고 사용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패드 역시 항균 처리가 되어 있으나 여기에 사용된 방법은 항균제를 혼합한 표면 보호 투명 잉크에 항균제를 혼합하여 코팅하는 방법으로 패드 표면 전체에 항균제가 도포되어 있습니다.

(회사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희망노트 항균제의 특징은 나노화된 은 이온을 기반으로 하여 제올라이트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그 성분으로는 Aluminosilicate, Zinc Oxide (ZnO) 등으로 표시되어지나 영업 비밀상 은 이온은 표기하지 않았다. 반영구적인 효과를 가지는 무기 항균제로 기존 살생물질 신고 번호는 190306-0002이며 그 성분은 silver zinc zeolite로 등록 되어 있다. 또한 본 항균제는 미국 FDA 승인 제품으로 식품 포장용기에 사용이 가능하며, NSF・SIAA 등의 인증을 받아 화장품 재료도 사용이 가능하다. 추가로 SARS・H1N1・Al 균등에서도 효능이 확인되었다)

박 기자: 큰 아들 직책이 무엇입니까?

임 대표: 부사장인데 영업을 다하고 연구도 관여합니다. 저는 결제하고 회사의 전반적 운영을 챙깁니다.

박 기자: 대표님 지금 연세가 몇입니까?

임 대표: 아버지가 늦게 출생 신고를 했습니다. 실제로는 75살, 1946년생이예요.

박 기자: 젊은 나이에 서울에 상경해 을지로에서 고생 끝에 창업하게 된 과정을 말씀해주세요. 을지로에 뭐가 있었나요?

임 대표: 무림제지, 한국제지같은 제지업체 대리점, 지업사 즉 종이 파는 곳이 많았습니다. 거기서 종이를 배우고 제본소에서 제본 과정을 익혔습니다. 그런 뒤 1977년 7월1일 창업했습니다. 처음에는 홍제동에서 시설도 없이 하청을 주어 노트를 만들면 갖고 와서 판매했습니다. 그러다가 남가좌동에 우습지 않게 공장을 세웠습니다.

박 기자: 회사 설립하고 어떻게 자리를 잡았습니까?

임 대표: 고생 엄청 했죠. 빈손으로 시작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일밖에 없었습니다. 누가 외상을 줍니까, 돈을 빌려줍니까. 한결 같이 한 우물파고 여기까지 달려왔어요. 교육자인 아버님한테 엄하게 교육을 받았는데 저도 마찬가지로 자식들을 엄하게 키웠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남을 속일 줄 모르고 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스스로 허락이 안 돼요.

박 기자: 노트업계 몸 담은지 45년인데 어떤 마음 가짐으로 회사를 이끌어오셨나요?

임 대표: 큰 아들한테 하는 이야기가 ‘작은 이익을 위해 잔머리 굴리지 마라. 큰 사람은 손해도 보는 거다. 하청업체에서 10원 20원 깍을 생각을 말고 큰 데 가서 어떻게 해보라. 그리고 어려움 사람을 도와주라고 말합니다.

박 기자: 장항동으로 왔을 때 이곳에 다른 업체들은 없었지요?

임 대표: 이 지역은 90년대에 큰 홍수가 나 호수공원이 3미터 이상 범람했고 땅값이 폭락했던 곳입니다. 회사 주변이 키보다 큰 갈대 숲이었습니다. 처음 왔을 때 이곳은 그야말로 하루에 차 10대도 안다녔을 정도였습니다.  1999년에 들어왔는데 장항동에 오고 싶어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울 남가좌동에 3층 건물을 지어 제본 시설을 갖추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이어가다가 IMF 사태로 몇몇 거래업체서 부도를 맞아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 할수 없이 제지공장 하나 붙잡고 영업부장에게 사정사정을 했습니다. 1억원 어치 외상을 달라고 사정했는데 당시 1억이면 아주 큰 돈이죠. 대답을 안하더라구요. 자꾸 조르니 종이를 외상으로 줄테니 조금씩 파는대로 값으라고 했습니다. 2000만원 상당 종이를 갖고 가서 1000만원이라도 갑고, 3000만원 어치 갖고 가면 1500만원이라도 갚고 이런 식으로 그 사람이 도와주어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종이가 들어오니 일은 되잖아요. 그 때 일을 주야간으로 엄청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 일을 해서 빚을 싹 갚았지요.

그렇게 해서 사업이 안정 궤도에 들어서 잘 가던 차에 회사 뒤에 아파트 1500세대가 들어오게 되었어요. 저희는 김제에서 종이가 오면 회사 앞 4차선 도로에 길을 막고 내리는데 아파트 아줌마들이 공해가 심하고 지저분한 노트 공장을 내보내야 한다고 구청에 계속 민원을 제기하고 구청 직원도 할 수 없이 도로 점용료로 10만원, 20만원씩 벌금을 부과하는데 벌금을 몇 번 내고 나니 성질이 나서 나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남가좌동에 공장을 짓느라 현금이 궁한 상태에서 공장 이전지를 찾아다녔는데 장항동 쪽에는 한 100번 정도 왔을 거예요. 돈이 없어 재느라고, 논은 농협만 대출이 되어 공시지가가 5천~1만원인 논을 담보로 농협으로부터 힘겹게 5억원 대출을 받았습니다.

박 기자: 여기 땅을 5억에 산 건가요?

임 대표: 5억이 아니지. 80만원씩 900평이니 7억 2천만원에다가 건축비 등을 포함해 10억 이상 들어갔지요. 전부 사채를 끌어다가 댔습니다. 처음에는 창고 1개만 쓰고 다른 곳은 세를 주었는데 세가 안나가 이자 갚느라 고생 많이 했습니다. 2공장은 금년에 샀고요.

2014년에 아들이 몇 번 쫓아다닌 끝에 디즈니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해 디즈니 캐릭터가 들어오면 회사가 수직 상승한 거지요. 과거에는 노트는 제일 싸고 장수 많은 것이 최고였는데 지금은 캐릭터가 중요해졌어요. 라이선스 계약을 한 후 겨울왕국 등 캐릭터 나오면서 사업이 궤도에 오르고 다이소, 포스트코 할인매장에 캐릭터 제품을 납품했습니다. 2007년 경 불광동에 있는 이마트 본점과 거래하고 싶어서 수십번 쫓아다녔는데도 안 되더니 캐릭터가 들어오니까 제발로 찾아왔습니다.

2014년부터 회사 매출은 더블, 더블로 매년 수직 상승했고 2017년, 2018년에도 20%~30% 씩 증가했습니다. 디즈니사는 절대로 우리가 큰 실수를 안하는 한 계약을 파기 안합니다. 또 캐릭터 계약도 딱 3군데하고만 하니 좋습니다. 회사 사업이 잘 되다가 코로나19 사태로 약간 주춤하지만 조금만 하면 바로 상승세로 돌아설 땐데 그게 어렵네요.

박 기자: 직원들은 어떻게 대하시나요. 직원 복지제도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임 대표: 특별히 잘 해주는 것은 없지만 그 사람들의 마음을 내가 잘 압니다. 제가 인덕이 있는지 특별하게 말썽을 부려 나가는 사람 한명도 없었습니다. 좋은 데 있어 나가는 사람은 박수쳐주어야 하고요.

박 기자: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활동을 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임 대표: 적십자사에 매달 20~30만원 기부하고 서울대병원에 정기적으로 기부하고 있습니다. 큰 며느리가 서울대 병원에서 뇌종양 수술을 받았는데 결과가 좋았고 또 내가 이만큼 고생하고 왔는데 뭔가 발자취하나 남겨야겠다는 마음에서 2017년 병원장을 만나 매해 5천만원씩 10년동안 기부하겠다고 약속을 했고 4년째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막내 아들이 서울대 병원 의사입니다.

박 기자: 개인적 기호나 취미가 있습니까?

임 대표: 1997년과 1998년 부도를 맞고 상황이 급박해지니 한 때 자살까지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5개월 정도를 매일 저녁마다 맛동산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니 사람이 바보가 되더라구요. 그 당시 친구에 이끌려 배드민턴을 치기 시작해 지금까지 치고 있습니다. 서울시장배 대회, 구청장배 대회에서 메달을 따고 40년을 쳤는데 금년 3월부터 코로나로 중단하고 산에 다니고 있습니다.

박 기자: 고양시에 건의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임 대표: 회사 앞에 개울이 있는데 시에서 개울 관리를 잘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개울에 낙엽이 쌓이고 여름 장마 시기에는 물이 넘칩니다. 고양시에 이야기해도 안돼, 우리가 쓰레기를 치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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