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 대한 거소투표의 의미
누군가에 대한 거소투표의 의미
  • 한지혜 주무관
  • 승인 2020.11.25 09: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양시일산동구선거관리위원회 한지혜 주무관
고양시일산동구선거관리위원회 한지혜 주무관

제21대 국회의원선거를 마치고 얼마 지났을 무렵, 타 지역 장애인단체 관계자와 거소투표에 대하여 통화할 일이 있었다. 이야기 도중 장애인 거주 기관·시설에 있어 거소투표신고인수가 10명 이상인 기관·시설의 장은 관할 선거관리위원회에 기표소 설치·운영 신고를 해야 하고, 10명 미만일 경우라도 후보자 측에서 요구할 경우 기표소를 설치하게 된다고 안내드리니, 거소투표신고인이 있는 곳에는 모두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기표소를 설치해야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현행법 상 기관·시설에 거주하지 않고 가정에 있는 등록된 장애인에게도 지방자치단체에서 거소투표신고서를 발송하고 거소투표 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포함한 모든 거소투표신고인에 대하여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기표소를 설치하여 운영하는 것은 한계가 있음을 안내하자, 집에 있는 장애인이 거소투표신고를 하고 투표를 하면 공정하게 될 수 있겠냐는 염려를 더한 질문이 돌아왔다. 거동이 불편해서 투표소에 갈 수 없는 중증장애인들에게는 그 방법이 투표할 수 있는 최선이기에 법으로 정하였고, 지금까지 실시해 오고 있는 것이지 않겠냐는 의견을 나누고 통화를 마쳤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지난 국회의원선거 때 거소투표와 관련해 있었던 두 가지 일이 떠올랐다.

선거를 한 달 정도 앞 둔 시기였다. 시민 한 분이 전화하여 부정선거의 온상인 거소투표를 없애지 않고 계속 하는 것은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으로서 직무태만이며 직무유기라며 장시간 엄청나게 화를 내었다. 그 분은 장애인수용시설에서 지적능력이 없는 장애인들에게 투표용지를 주어 몰표로 찍어서 낸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인 공무원이 거소투표 신고한 시설 전체에 다 나가야하는데 공무원이 시설에 나가지 않으면서 법을 바꿀 생각을 안 한다며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여러 가지 안내를 드리고, 현행 거소투표에 대한 개선의견을 입법기관(지역구 국회의원)에 제시하시는 방안을 말씀 드렸으나, 불만을 해소시켜드리지 못 했다.

선거를 하루 앞두고는 거소투표용지 1통이 반송이 되어 왔다. 거소투표용지는 등기우편으로 발송되어 직접 수령해야 하는데, 집배원의 3차례 방문에도 부재중이어서 결국 반송되어 온 것이었다. 신고서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하니, 신고인의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신고인의 아버지는 힘없는 목소리로 낮 시간 중에는 부모가 직장에 있어 신고인 혼자 집에 있는데, 신고인이 거동이 불편해서 문을 열 수가 없으니 그냥 투표를 포기하겠다고 했다. 선거일에 투표소에서 투표할 수 있음을 안내드렸으나, 투표소에 갈 수가 없으니 재차 신고인의 투표를 포기하겠다고 했다. 아버지의 사그라지는 목소리에 자녀가 투표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던 안타까움이 실려와 가슴이 먹먹해졌다.

「공직선거법」에서는 기관·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뿐 만 아니라, 사전투표소나 투표소에서 투표할 수 없는 군인이나 경찰공무원, 병원·요양소·수용소·교도소·구치소에 기거하는 사람, 중대한 신체장애로 거동할 수 없는 사람, 외딴 섬에 거주하는 사람 등에 대하여 제38조(거소·선상투표신고) 및 제149조(기관·시설 안의 기표소)에 따라 정당할 경우 거주하는 곳에서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하여 선거관리위원회에 등기우편으로 보내는 방법으로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참정권 보장을 위해 마련된 거소투표라는 투표방식이 개개인의 입장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선거부정의 수단으로, 누군가에게는 투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누군가에게는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으나 포기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 있는 제도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는 사람의 동기를 의심하는 순간, 그의 모든 행동이 순수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고,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는 조직은 힘이 아니라 신뢰의 바탕 위에서 만들어진다고 하였다.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으로서 가정에서 홀로 움직이지 못 하는 선거인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투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보지만, 그 어느 것이라도 “신뢰”가 없다면 실시하기 어렵다는 선결문제의 오류에 빠지고 만다.

유권자가 개개인의 여건에 상관없이 투표할 수 있으면서 국민 모두가 투표의 결과를 믿을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오늘도 답을 찾기 위해, 다시금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누군가에 대한 거소투표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고양시민과 함께하는 고양일보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31-908-2255 / 010-9907-2289

고양일보 후원하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