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무열 한국관세신문 발행인
서무열 한국관세신문 발행인

[고양일보] 지난 22일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 보호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CJ대한통운의 이번 대책발표는 나머지 택배사 정책 방향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우리나라 택배 산업 방향타를 잡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날 CJ대한통운이 발표한 종합대책에는 △ 상품분류업무에 4천명 인력을 단계적으로 투입하고 △ 전체 택배기사들의 산재보험 가입 의무화 및 자동화 시설 확대로 작업강도를 낮추고 △ 상생협력기금을 마련해 택배기사들의 복지 확대를 추진한다는 것 등이 주요 대책으로 포함됐다.

이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상품 분류작업에 4천명의 인원을 다음 달 11월부터 단계적으로 투입한다는 내용이다. 신규채용에 따른 추가 비용도 비용이지만, 과연 이들 인력이 투입돼 원활하게 작업할 공간이 확보될 수 있을까 걱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들 분류작업자들이 상품을 따로 분류해 쌓아둘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분류작업에 4000명을 한꺼번에 다 투입한다 한들 실효성을 따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신규 투입된 분류작업자들이 택배기사들의 분류작업을 지원한다 하더라도 현재의 허브터미널 스페이스(space) 조건에서는 배송 기사가 픽업할 때까지 분류한 화물을 쌓아둘 공간 확보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현재 모든 터미널이 이런 공간이 필요 없게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택배기사들이 트럭을 덕에 대고 자신이 배송할 화물을 선별·분류하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이 분류작업을 대신해 줄 인원을 신규 투입해서 효과를 보기 위해선 배송 기사가 도착하면 화물을 바로 픽업(pick up)해 갈 수 있도록 따로 분류해 쌓아둘 공간이 허브터미널 내에 별도 필요한 것이다.

이 공간이 없는 상황에선 기사들이 자신의 차량을 덕에 대놓고 직접 분류 작업을 하지 않을 뿐이지 화물이 분류될 때까지 계속 어딘가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화물분류에 소요되는 시간은 기존과 똑같이 소요돼 화물배송에 필요한 절대적 시간이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다.

이를 해결할 근본 대책으로는 지금 보다 훨씬 더 넓은 부지를 선정해 터미널을 짓는 것인데, 대도시 인근에 그만한 부지를 확보하는 것도 문제고, 확보한다고 한들 허가받기도 쉽지 않다. 또한 소요되는 막대한 재원은 또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쉽지 않은 방안이다.

현실적인 방안은 현재의 자동화 시설을 더 정교하게 개발해 자동분류 오류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현재는 자동분류기가 구분을 하지 못해 마지막에는 배송 기사들이 직접 육안(肉眼)으로 확인해 분류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분류작업을 마치는데 하루 평균 6~7시간이 소요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분류 자동화 시설 확충에 더 투자할 필요가 있다.

택배 배송 문화를 바꾸는 것도 필요하다. 속도 경쟁을 멈출 시기가 됐다. 총알배송이니, 익일배송이니 하는 용어부터 없애야 한다. 하루에 400개 이상 택배 상자를 배송하는 날이 많은 요즘, 택배 물량이 폭증하는 날에는 결국 당일 처리할 수 없는 화물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당일 픽업한 화물을 모두 당일 배송 완료하지 못하면 벌점을 메기는 현재의 관리시스템에서는 배송 기사들이 밤늦게까지 무리를 해서서라도 배송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본사에서 이런 관리시스템을 적용하는 곳이 있다면 대리점에서도 본사 지침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배송 기사들이 몸에 이상이 생기고, 사고가 날 때까지 일하도록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배송 건당 수수료를 산정하는 현재의 방식에서는 배송한 건수만큼 수익이 올라가니 기사들 스스로 무리를 해서라도 당일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이참에 배송 기사들의 수수료율을 인상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택배 노사, 관련 단체, 그리고 정부가 참여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합의점을 도출할 시점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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