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은 한국열린사이버대학 특임교수/ 서애의료사협 상임이사
나도은 한국열린사이버대학 특임교수/ 서애의료사협 상임이사

촛불로 적폐를 불사르고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평등과 공정, 정의가 넘쳐흐르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들어선 정권이다. 그러나 3년을 갓넘긴 이 시점까지 적폐청산의 구호는 그대로 난무하고 지난 총선에서 180석이 넘은 거대여당을 뒷배경으로 자신감에 넘친 온갖 험담과 패설을 사회곳곳에 들쑤셔대고 있다.

수구꼴통, 토착왜구도 모자라 이제는 쿠데타 잔존세력의 발호와 암약이 정권의 개혁 시도를 좌초시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한줌도 안 되는 적폐세력을 발본색원해서 완전 소탕해야 한다. 그래야 20년, 100년 정권을 만들 수 있다 한다. 한술 더 떠 며칠 전엔 한 유명한 작가가 "우리가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되고 민족반역자가 되서 특별법을 만들고 반민특위를 부활시켜 150만, 60만에 달하는 이들을 처단해야 한다"라는 망발까지 내던지는 세태다.

거기에 북한 문제가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검찰개혁 그리고 공수처 설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현 정권이 검찰개혁과정에서 불거진 조국과 윤미향 사태에 이어 추 장관 문제와 더불어 정관계와 청와대 연루설까지 번진 옵티머스나 라임자산운용의 사모펀드 사건까지와 있음에 과연 이 정권이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고 결과가 정의로운" 국민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를 만들려는 촛불민심이 세운 민주 권력이었는지가 심히 의심스러워지고 있다.

뜬금없는 자신감으로 발호되는 거친 구호와 험담 그리고 비아냥거리기를 넘어 인기몰이식의 튀는 발언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미국의 ‘리무진 진보주의자’, 프랑스의 ‘고슈 카비아’, 영국의 ‘샴페인 사회주의자’, 독일의 ‘살롱 사회주의자’, 캐나다의 ‘구치 사회주의자’, 호주의 ‘샤르도네 사회주의자’ 등에 상응하는 한국의 강남좌파로 불리 우는 자들의 '진보 코스프레'의 허구와 부도덕까지 노출될 때 마다 터져 나오는 구차함도 가관이고 뻔뻔함도 극치이고 내로남불도 그 자체가 되고 있다.

새로움을 모토로 집권한 권력이 불리해지면 과거와 비교해 우위론을 주장한다거나 흑백논리에 기반한 이분법으로 동전의 앞뒤면과 같은 상대를 처단, 박멸해야하는 대상으로 적폐프레임을 걸거나 내로남불과 적반하장 격으로 군사정권의 빨갱이몰이를 방불케 하는 광풍을 몰아치고 있음을 두 눈 뜨고 보고 있는 이 위기의 시점에서 총체적 사회변혁을 위한 가치 재정립 기준을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법과 절차를 통해 수립하고 그에 따른 사회 현상들에 대한 면밀한 재단을 시도해보는 인고의 과정이 필요한 시점이 온 것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기준을 정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 아니다.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사실들에 대해 가정하고 새롭게 가치를 정립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위 "사회공론화"란 것이 필요한 것이다. 즉 사회적 갈등이 예상되는 예민하고 복잡한 문제에 대해 전체를 꿰뚫을 수 있는 정확한 논점을 제시하고 신중하고 폭넓은 토론과 긴 호흡의 논쟁을 통해 그들이 스스로 세상과 삶을 보는 눈을 기를 수 있도록 돕도록 하는 그 기본 방향을 설정해나가자는 것을 말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에 대한 합의다.

사회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이견이 분분한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사회적 중지를 모아 나가야할 것인가에 대한 구성원 모두가 신뢰할 만한 원칙을 찾아내는 일에 나서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참고해볼만한 모범 사례가 있다.

통일 전의 분단국가 독일에서도 교육 문제를 두고 우리와 비슷한 사회적 갈등이 있었다. 좌우 진영은 서로에 대해 '의식화' 또는 '우민화' 교육을 그만두라며 날 선 이념전쟁을 치렀다. 이 와중에 1976년 독일의 한 소도시 보이텔스바흐(Beutelsbach)에서 좌우 진영을 망라하는 정치가, 연구자, 교육자가 함께 모여 치열한 토론 끝에 우리나라에서는 '민주 시민 교육'이라고 부르는 '정치 교육'의 원칙을 합의해 내었다. 바로 '보이텔스바흐 합의(협약)'다.

이 합의에 따르면, 정치 교육은 △일방적인 주입식 교화 교육을 금지하며(강제 또는 교화의 금지), △학문과 정치에서 일어나는 논쟁을 교육에서도 그대로 재현하고(논쟁성에 대한 요청), △학생들이 정치적 상황과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에 따라 정치적인 행위 능력을 기르게끔(분석능력 및 학생의 이해관계 중심) 해야 한다. 이 합의는 단지 독일에서만이 아니라 많은 다른 민주 국가들에서도 중요한 민주 시민 교육의 원칙을 제시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가령 영국에서는 아예 교육법 안에 유사한 원칙들을 담았다.

이 합의는 그 핵심에서 학생들의 인간적, 시민적 존엄성에 대한 존중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일방적인 주입식 교화교육을 지양하고, 학생 스스로가 판단하고 결정하며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끔 성장시키겠다는 정신의 표현이다.

또 한 예로는 사용 후 핵연료 처리문제에 대해 영국, 프랑스, 캐나다가 난관을 극복한 방식으로 공론화라는 정책수단을 도입한 것이다. 처한 상황에 따라 공론화 기간과 형태는 달랐지만, 다양한 의견을 통합하여 해법을 찾아내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을 듣는다. 공론화 기관이 투명한 방법으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해 대중과 공유하고, 의견수렴 절차와 과정도 합리적으로 진행돼 성공에 이르렀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우리 사회 역시 근자들어 국민에게 공론화 주제로 회부된 굵직굵직한 논점이 찾아보면 의외로 많다. "북한문제와 탈핵문제, 인국공사태, 공공의료분쟁, 조국과 윤미향, 추미애와 강경화 문제, 비대면 사회. 부동산과 기본소득 등이 있어, 이 하나하나의 논점에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 다양한 방식으로 논의의 방식과 과정을 합의하고, 개발하고, 조직화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수렴하고 적합한 실천을 이끌어내고 공공선으로 결합해내야 한다.

그래서 제안한다.

소위 '사회공론화"를 목표로 하는 '협동조합식 정치카페'를 건립하자는 것이다.

공간과 경영이 공론과 결합된 사회공론의 장을 만들자는 것이고, 1인 1표 주의라는 민주주의 원칙과 협동조합 정신을 함양하는 평생훈련과정으로 공론화협동조합을 대안화 하자는 주장이다.

이대로 가면 모두가 공멸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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