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오후의 겨울햇살을 받으며 국립암센터 행정동으로 들어섰다. 국립암센터의 겸손했던 첫 출발을 상기시켜 주듯, 원장실이 위치한 행정동 건물은 17년 전 개원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작지만 아담하고 깔끔하게 잘 관리되어 있는 공공기관의 단정함. 그리고 세계 최고의 암 연구 메카라고 불리는 국립암센터의 브레인과 중추가 모여 있는 곳.

국립암센터 전경

2002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자신의 폐암 치료를 위해 고른 곳은 미국 텍사스대에 위치한 MD Anderson 암센터였다. 그러나 그 Anderson센터는 국가 암관리 분야의 컨트롤타워 역할의 성과를 공유하기 위한 파트너십을 찾아 2015년 바로 이곳 고양 국립암센터에 왔다.

이건희 회장이 암치료 위해 찾았던 앤더슨 암센터, 고양 국립암센터 찾아 파트너십 맺어

짧은 역사 속에서 이강현 원장과 암센터 임직원들이 이뤄낸 성과는 실로 눈부시다.

이강현 원장은 겸손하고 자상한 미소로 우리들 미디어고양 취재팀을 맞아주었다. 겸손한 그의 방에서 그와 마주앉는 순간, 2000년도에는 지금보다 더욱 작고 불확실성 투성이였을 신생 국립암센터와 인연을 맺은 이유가 몹시 궁금해진다.

국립암센터 개원식에 참석한 김대중 대통령, 이휘호 여사, 박재갑 원장 <사진 = 정부e-영상역사관>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다.

“사람은 가치 있는 일에 뛰어들고 싶잖아요. 서울의대를 마치고 서울 여러 곳에서 오라고 했지만, 저는 암전문가로서 제 평생을 한 번 걸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좋은 일을 하려면 당연히 사람을 모아야 하죠. 그래서 서울의대의 뜻있는 암전문가들과 세계 유명 암전문가그룹들이 이곳으로 모인 것이고요. 우리는 그렇게 이곳에 모여서 뜻을 모았습니다. 세계 최고의 암센터를 한국에 만들자는 의지가 없었다면, 아무도 이곳에 모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상하지만 비장한 미소였다.

인터뷰 중인 이강현 원장

세계 최고의 암센터 만들고 싶어 고양시민 되었다

“뜻은 크셨으나, 고양과의 인연은 그 이전엔 없으셨던 거죠?”

허를 찔린 듯, 이강현 원장이 얼굴을 붉힌다.

“네”

“안사람과 함께 고양시 첫 답사를 하던 기억이 나네요. 눈이 내리던 고양시의 자연을 바라보며 그만 저희 부부는 고양시와 사랑에 빠진 셈이지요. 맑은 공기. 자연친화적인 도시공간. 계획도시 특유의 단정함과 아름다움...”

그는 감춰둔 추억을 하나하나 되살리듯 천천히 과거 회상에 잠기다가 급히 인터뷰모드로 되돌아온다.

“이곳 직원들 상당수가 고양시에 거주합니다. 저를 포함해서 이곳에 산다는 것 차제가 저희들의 이득이죠.” 그의 고양 사랑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표현이다.

화제를 바꾸어 다시 질문을 재촉한다.

줄이어 고양시 찾는 세계 유명 암전문가들 행렬

“해외에서 요즘 내노라하는 유명 암 전문기관들이 이곳 고양시를 찾아온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미국 MD Anderson과 암정복 협약체결(2015년 7월) <사진 = JNCCN>

“우리의 위상이 세계최고임을 입증하는 것이죠. 지난 10일에는 미국 국립암연구소, 일본 국립암센터와 함께 암 정복 협력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암 정복 자문단 분과위원회의 위원장들이 심도 있는 논의를 가졌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암연구 강대국하고만 교류하시지는 않으시죠?”

“제가 아시아 국립암센터연맹 사무총장직도 함께 맡고 있답니다. 그 본부 사무국도 바로 이곳에 위치해 있고요. 본부가 고양시에 있다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한국 WHO협력센터 연합회도 저희 암센터가 만들어서 함께 운영하고 있고요(필자 주: 이강현 원장은 이 연합회의 회장직도 맡고 있다). 이제는 우리 암센터가 개발도상국의 보건관리, 암연구 지원에도 적극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믿습니다.”

이강현 원장은 국립암센터 원장뿐만아니라 아시아 국립암센터 사무총장, 한국 WHO협력센터 연합회 회장도 맡고 있다.

국제암대학원대학 예산의 86%, 병원 자체수입으로 운영

“암센터에서 운영하는 국제암대학원대학에는 외국인 학생들이 40%가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정부 지원금이 14%에 불과하다는 말씀도 놀라운 대목입니다. 이들 모두에게 장학금과 기숙사가 제공되고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한국의 국가암관리정책은 세계 최고의 수준입니다. 그 정책성과를 세계의 전문가들이 와서 배우고 모국에 돌아가 우리의 국제협력 파트너로서, 그리고 친한파로서, 의미 깊은 암퇴치 사업들을 함께 전개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병원 자체수입으로 대학원대학을 많은 부분 지원하는 것은 저희 부속병원의 흑자경영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동남아, 아프리카 등 어려운 나라에서 이 암센터에 옵니다. 그들에게 의생명학(암연구), 암관리학(정책연구)을 세계 최고수준으로 공부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학생들이 공부를 마치고 자국에 돌아가 보람 있는 일을 하라는 취지입니다. WHO에서도 우리가 국제협력의 리더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저희 프로그램에 관심이 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화제를 돌려본다.

“저희 미디어고양팀이 구정연휴 기간 중 <필리핀 장관부인재단 (Cabinet Spouses  Foundation)> 초청으로 마닐라를 방문 취재한 바 있습니다. 이제 취임 6개월째인 신생 두테르테 대통령 정부의 장관부인들이 모여 국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의미 있는 보건복지사업을 추진하고자 애쓰고 있는 여러 현장들을 취재했습니다. 그리고 이 재단이 그 동안 가장 공을 들여온 사업이 소아암 환자 치료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 한국과의 국제협력을 간절히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다시 회심의 미소를 던진다.

미디어고양 발행인 및 취재진과 인터뷰 중인 이강현 원장

필리핀 장관부인재단, 소아암치료 공동프로그램 희망

“저희는 최근까지 우간다 암정책 및 암치료 지원에 공을 들인 바 있습니다. 필리핀 측의 의지만 있다면 저희도 적극적으로 협력에 나서고 싶습니다.”

우연의 일치로 보아야 할까?

“소아암은 다른 암에 비해 치료기간이 길고 다양한 치료를 필요로 하는 병이기 때문에 공익성이 강한 저희 국립암센터가 서울의 BIG 5 병원들보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훨씬 더 차별화된 세계 최고급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소아암은 병원 측의 입장에서 볼 때 다른 암 치료에 비해 수익성이 낮고 소아암 환자 본인과 가족들의 고통도 훨씬 큽니다. 저희들은 소아암 치료 강화를 위해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증축되는 신설 병동에서도 호스피스 완화 의료와 소아암 치료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입니다.”

인터뷰 중 활짝 웃고 있는 이강현 원장

마땅히 우리가 해야 할 의미 있는 일. 사람이 먼저다

“국가 암 관리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우리가 굉장히 뛰어납니다. 한국의 암진료 상황은 엄청나게 좋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암환자들의 보험부담율 5% 또한 세계에 자랑해야 할 일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사람이 먼저입니다. 저희가 WHO와 손잡고 노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를 위해 뜻있고 비전 있는 사람을 먼저 키워야 합니다. 사람이 없으면 숭고한 비전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병원과 달리 공익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또 잘 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하는 분야에서 국제사회에 공익적 선도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과거 우리는 우방국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이제는 우리 기관도 감당할 수 있고 감당해야 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는 다시 안타까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에 오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문제가 바로 공간부족의 심각성인 것 같습니다. 부속병원을 증축하시고 나면, 이제 더 이상의 여유 공간이 없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즉 더 이상은 암센터가 하고 싶은 사업이 있어도 공간이 없어 못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게 되지 않을까요?”

세계 최고기관의 신규사업, 공간부족으로 못 할 상황 도래

“국립암센터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공간 부족의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참고로 국립암센터에는 약 1200여 명의 정규직 직원을 포함하여 2000명이 넘는 인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60명의 암진료 전문의를 포함한 약 250여 명의 의사가 진료와 연구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현재 병상은 555개입니다. 증축이 완료되는 시점이 오면 더 이상의 공간이 없어지는 것이 엄중한 현실입니다. 지혜를 모아 조심스럽게 방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국립암센터 발전을 위해 의견을 피력하는 이강현 원장

호스피스 완화의료 등 공익성 강한 의료. 공간부족이 걱정이다

이것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일인가? 그 어느 도시보다도 토지공간이 여유롭고 쾌적하기로 소문난 이곳 고양시가 아니던가?

이제는 기자의 목소리 억양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국립암센터는 고양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외국에 나가보면 도시기능이 병원을 중심으로 활성화되는 도시들도 많이 있습니다. 일예로 미국 전역에서 몰려와 메디칼 시티로서 역할을 하며 미래의 먹거리 역할을 해내고 있는 텍사스 같은 도시도 있습니다. 원장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고양시에는 큰 병원들이 많이 있는 만큼, 한국에서는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메디칼 시티로서의 훌륭한 기반시설과 의료 인프라 수준을 갖고 있습니다. 인천공항ㆍ김포공항과도 가깝습니다. 특히 자연환경이 탁월하고 훌륭한 병원들이 많이 모여 있는 만큼 메디칼 특화도시로 만들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화가 계속될수록 원장의 진심 어린 목소리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같은 고양시민으로서 함께 나누어야 하는 걱정거리의 수도 그만큼 쌓여가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좌측부터 필자, 이강현 원장, 최국진 발행인, 김기호 자문위원장

그렇게 1시간 15분에 걸친 인터뷰는 해답보다 아쉬움을 남기며 마무리되었다. 고양시민을 위해 꼭 묻고 싶었던 질문들은 아래와 같이 이메일로 대신한다.

 

[질문] 한국 암치료의 국제경쟁력을 간단히 요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암 분야에서의 우리나라의 강점은 첫째로 세계적 수준의 임상의료기술과 국가암검진, 암발생통계 산출 능력 등 매우 수준 높은 암관리 수준이며, 최근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암 생존율(2014년 기준 암환자 5년 생존율 70.3%)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전 국민 건강보험 제공으로 데이터 수집 및 의료비 관리가 용이하다는 점, 전자의무기록의 보급 등 의료기관 내 우수한 ICT 인프라로 데이터 수집이 비교적 쉽고, 또한 표적치료ㆍ면역치료 등 신약에 대한 임상시험 수행이 비교적 용이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표적치료제ㆍ면역치료제 등 대부분 신약들은 거의 대부분 외국 제약회사의 제품들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약점이며, 향후 국내 항암 신약 개발이 더 활성화 되어야 하며 국립암센터도 항암신약사업단 등을 통해 신약개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질문] 국립암센터를 경영하며 추구하시는 ‘가치(철학)’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금년 제반 여건이 녹록치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위기의 순간이 오히려 기회의 순간임을 잘 알고 있기에 세계 최고의 암센터를 향한 노력이 금년 한해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개원 이래 이룬 성과에 대하여 자긍심은 갖되, 자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도 ‘세계 최고를 향한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한 여정에서, 우리는 할 수 있다, 는 긍정적 마음가짐과 함께 내가 맡은 분야의 ‘엑설런스(Excellence)’즉 남다른 탁월함을 갖추기 위한 열정적인 몰입과, 지적 겸허함을 바탕으로 한 지속적인 자기 계발 노력을 직원들에게 당부하였습니다.

 

[질문] 최근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이 지속적인 상승세에 있습니다. 암 극복의 미래에 대해 원장님의 전망이 궁금합니다.

암은 한국인 사망원인 1위로 생존율의 향상이 시급히 요구되는 질환이며 다행히 최근 전체 암환자의 상대 생존율이 70.3%까지 향상 되었으며 이는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암은 다양한 유전자 이상의 축적에 의해서 발생하는 질환으로 유전정보에 기반한 정밀의료의 필요성이 가장 높은 분야입니다.

정밀의료를 통해 각 개인별로 서로 다른 암의 주요한 유전변이를 진단하고 선별적으로 최적의 개인 맞춤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국내 암 환자를 대상으로 유전체 정보에 기반한 표적항암제 및 면역항암제 조기 임상시험 플랫폼을 국가차원으로 확대하여 시행하고 최적의 암 정밀의료를 구현하여야 되겠으며, 국립암센터가 이를 선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질문] 지난 2016년 3월 이후 현재까지 어떠한 성과를 이룩하셨나요?

지난 해 국립암센터는 공공보건의료기관으로서의 공익적 역할을 강화하는 동시에 국가 주도의 암 정복 기관으로서 국민을 암으로부터 보호하고 미래의료 혁신을 선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무엇보다 작년 8월 과학기술전략회의에서 국가전략프로젝트로 선정된 정밀의료 실현을 위한 기반 마련에 역량을 집중해왔습니다. 정밀의료의 본격적인 시작을 위해 암정밀의료추진센터를 개소했고, 관련 국내외 기관과의 협력 기반을 다졌습니다. 앞으로 정밀의료를 통한 암 정복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전진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려고 합니다.

참고로 국립암센터는 연구부문에 있어 기관고유연구사업에 149억원을 투입해 SCI급 논문 272건을 등재하였고, 특허출원 및 등록 111건, 기술이전 4건을 달성하였습니다. 이 수치들은 국립암센터 개원 후 연도별 최고 실적입니다.

국가암관리사업분야에서 국민이 체감하는 근거 중심의 암관리 정책을 구현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와 함께 제3차 암관리종합계획을 마련하였습니다. 아울러 15년간의 암 통계를 종합 분석해 우리나라 최초로 시군구별 암발생통계 및 발생지도를 발표하였습니다.

 

[질문] 그 가운데 세계 유명기관답게 국제적으로 거두신 성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어느 해보다 대외협력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2016년 9월 미국 뉴욕에서 바이든 부통령 초대로 개최된 <한미일 3국 보건장관회의>에 참석해 암 종식을 위한 단백유전체학 연구협력 방안을 협의하였고, 12월에는 <정밀의료를 위한 한미 심포지엄>을 개최해 미국 국립암연구소 등과 정밀의료 협력과 관련한 심도 있는 논의를 하였습니다.

오랜 파트너십을 유지해 온 일본 국립암센터와 양해각서를 체결해 그 간의 협력의지를 명문화하고 공동워크샵을 개최하는 등 실질적인 협력관계를 구체화했습니다. 중국 하이난성의 하이커우시 인민병원과 MOU를 체결하였고, 아시아국립암센터연맹의 14개국 국립암센터와 함께 ‘암 예방을 위한 소금 섭취 줄이기’ 몽골 선언을 공표하는 등 전 세계적인 암 관련 국제협력을 주도하였습니다.

 

[질문] 2017년, 국립암센터의 운영 목표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 국민을 암으로부터 보호하는 공익성과 효율성을 모두 갖춘 세계 최고의 국립암센터와 정서적 소통과 공감 및 배려가 있는 행복한 일터 국립암센터 만들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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