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이 잃어버린 자유
부자들이 잃어버린 자유
  • 조규남 목사/우림복지법인 대표
  • 승인 2020.08.06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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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 "돈만 벌면 된다"는 일관된 답(答)을 해
현실적 문제로 타협할 수밖에 없는 길 택한 것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조규남 목사/우림복지법인 대표
조규남 목사/우림복지법인 대표

[고양일보] 예전 사회 초년병 젊은 시절 방황하던 한 때, 가끔 서울 남산에 올라가 서울 시내의 집과 빌딩들을 바라보면서 저 많은 집 가운데 내 집 하나 없다는 게 참으로 한심하게 여겼던 적이 있다.

그러다 남산을 뒤로 하고 거리로 나오면 약동하는 젊음 속에서 집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약동하는 젊음의 거리 그 명동이 좋아 내가 그 인파의 행렬 물결에 떠내려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즐거워할 수 있었다.

지금껏 내 아버지의 집은 있었지만(명동에도) 내가 노력해서 얻은 집은 없었던 듯하다. 왜 그랬을까? 나는 나의 젊음만으로도 집을 부러워하거나 집이 없는 우울감에 빠지지 않을 만큼 세상이 즐거웠다.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큰 문제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요즘 사람들이 갖고 싶은 좋은 자동차를 로망으로 알 듯 집을 소유하고자 하는 애착으로 인생의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는 분명 시간의 허비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아직껏 자신이 살지도 않을 신도시의 아파트을 쫓아다니며 부동산 투기에 목숨을 걸고 있다.

나는 그런 것으로 내 마음을 빼앗겨 내 인생을 담보 잡히는 짓은 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았다. 그리고 돈 때문에 내 삶이 눌리는 일도 없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안 쓰고 말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사실 우리가 목매달고 있는 것은 삶의 기본적 생존권이기보다 다소 생활의 편리함과 사치스러운 허세 때문이 아닌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땅은 부의 상징이었고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 땅과 아파트를 사고판다.

성년이 되었을 때 사회 초년병으로 처음 했던 일은 인생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진정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물어보고 다니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나는 그 당시 모든 선배 입에서 "돈만 많이 벌어라. 그러면 행복해진다. 그것이 앞으로 네가 갈 길이고,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말을 마음에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았다. 돈으로 인생의 의미와 행복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모습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모습

사회생활에 지치고 한편 인생의 패배자처럼 생각되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선배들의 말이 떠오르며 그들의 조언에 귀 기울이지 않고 내 멋대로 내 나름의 인생을 살아온 것에 잠시 후회도 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건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그들의 말이 틀리고 내 생각이 옳다는 확신이 없었기에 내 삶의 방식이 혼돈스럽기도 했다. 아직 다 살아보지 않은 인생이기에 삶 속에서 검증되고 확신되지 않은 미래의 일에 대해 아는 바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모든 실제적 경제활동에서 물러나 나이 칠순을 넘기면서 점차 인생 전반의 그림이 완성도를 향해 그려지는 것을 느낀다. 돈에 얽매이지 않고 돈의 의미를 행복의 척도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현실에서 난관에 봉착하는 순간도 많았지만 내게 주어진 인생을 내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살아온 인생 여정에 스스로 감사하게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지금도 후회는 없다. 신앙인으로 좀 더 창조주 절대자 하나님 앞에서 충성되지 못했다는 것에 회개가 따를 뿐이다.

이 시점에 궁금한 게 있다. 사회 초년병 시절 '의미 있는 인생'의 길에 대해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물어봤을 때 왜 모두 한결같이 "돈만 벌면 된다"는 말로 일관된 답을 했을까?

2가지 경우가 있을 것이다. 첫째는 실제로 '돈=행복'이라는 등식으로 돈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 둘째는 어떤 면에서 그 당시의 나처럼 돈 이외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인데, 문제는 후자이다.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진리를 알고 있으면서 왜 답은 엉뚱하게 전자의 사람들처럼 속물근성(俗物根性/snobbism, 금전이나 명예를 제일로 치고 눈앞의 이익에만 관심을 가지는 생각이나 성질)으로 말했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진리가 무엇인지를 몰라서가 아니라 외면할 수 없는 현실적 문제들로 타협할 수밖에 없는 비겁자의 길을 택한 것이다.

아마 그들이 진리를 말할진대 왜 진리대로 살지 않느냐고, 그래서 당신은 위선자라는 비난의 화살을 비껴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차라리 내면의 진실보다 외면의 현실주의자가 된 것이다.

언젠가 이런 일로 대화를 나눈 옛 선배에게 나는 항의하듯 말했었다. 내가 지키지 못할 진리라도 올바른 말은 해주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그래야 후배들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진리의 빛을 따라 희망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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