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교통법, 영국의 적기조례
세계 최초 교통법, 영국의 적기조례
  • 장병수 법학법사
  • 승인 2020.08.0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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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수 법학박사
장병수 법학박사

붉은 깃발법(赤旗條例, Red Flag Act, The Locomotives on Highways Act).

세계산업기술을 견인하고 있었던 영국에서는 1865년 이른바 “세계 최초 교통법”인 적기조례가 제정됐다. 세계 최초 교통법이라 하지만 권위주의의 병폐 그리고 악법으로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자동차가 많이 보급되면 마부들이 실직하니까 자동차는 마차보다 느리게 달려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제도가 기술 선진국인 영국의 자동차 산업이 주변국에 비해 쇠락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쟁력에서도 현저히 뒤떨어지는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1804년 영국의 리처드 트레비딕이 증기 기관차를 만들고 운행해 본 결과 당시 레일이 주철로 되어 있으므로 증기 기관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깨지기 일쑤였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지 못해 상용화에는 실패했으나, 1825년 조지 스티븐슨이 연철 레일을 개발하면서 스톡턴과 달링턴 사이에 화물철도를 부설하여 첫 증기 기관차의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후 1830년, 리버풀과 맨체스터를 연결하는 철도를 부설, 성능을 높인 로켓호를 선보이며, 여객 운송을 시작했다.

한편 1826년에는 최초 실용화된 자동차가 등장했는데, 이것은 증기기관을 탑재한 10대의 28인승 노선버스였다. 이 증기 버스는 보일러 폭발로 승객이 사망하는 최초 자동차 사고를 일으켰고 그 외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키면서 편리함보다 오히려 지탄의 대상이었다. 검은 석탄 연기가 빨래를 더럽히고 무거운 바퀴가 도로를 훼손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서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기 시작한 데다 증기 버스에 손님을 빼앗긴 여객마차와 기차업자들이 강력한 항의했다. 영국 의회는 버스에 마차나 기차보다 훨씬 높은 세금을 책정했고, 농민들까지 증기자동차 운행억제 항의가 이어지게 되자, 1865년 빅토리아여왕의 이름으로 세계 최초 교통법인 적기조례(Red Flag Act)를 선포했다.

적기조례는 당시 영국 공도상 자동차(당시 모두가 대형의 증기자동차로, 소형 휘발유 자동차는 아직 실용화되지 않음)의 운용 방법에 대한 것을 규정한 것으로, 증기자동차가 도로교통과 안전을 위협한다고 판단해, 무게, 속도, 너비, 주행방식을 규제한 법률이다. 이보다 수년 전인 1861년 제정된 법률은 모든 동력 기관차에 대하여 2t 무게마다 통행료를 부과하는 것이었으며 속도는 외곽에서는 10mph(16km/h), 시가지에서는 5mph(8km/h)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 적기조례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① 기관차를 운행할 때에는 최소한 3명(운전수, 기관원, 기수)을 고용하여야 하며, 2개 이상의 마차가 부착된 경우 그 마차를 책임지는 사람이 추가로 고용되어야 한다. ② 기관차가 움직이고 있는 동안 기수는 60야드(55m) 이상 전방에서 차와 같은 속도로 달려가면서 행인 등에게 붉은 깃발을 흔들며 “자동차가 와요”라고 외치면서 다른 교통류에게 경고하여야 한다. ③ 기관차의 경적은 어떤 경우에도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하고 기관차가 도로에 있을 때 증기가 분출되지 않도록 실린더 탭을 열지 않도록 한다. ④ 기관차 담당자는 다른 교통류가 알아볼 수 있도록 일몰 후 1시간, 일출 전 1시간 사이에 정면과 측면에 하나씩 두 개의 효율적인 조명을 설치해야 하며 이러한 것을 준수하지 않으면 10파운드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⑤ 외곽에서는 시속 4mph(6km/h), 시가지에서는 2mph(3km/h)의 속도를 준수해야 한다. ⑥ 자동차의 중량은 14t, 폭은 2.7m로 제한하였고 자동차 무게 2t 단위로 세금을 내야하고 시 경계나 주 경계를 넘을 때마다 도로세를 물어야 한다. ⑦ 모든 기관차 소유자의 이름과 거주지를 눈에 띄는 곳에 부착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유자는 2파운드의 벌금을 내야 한다는 등 적기조례는 자동차에 대하여 매우 엄격한 규정을 적용했다. 

이후 1878년 개정법에는 붉은 깃발의 필요성은 제거하였으나 전방 보행 요원의 거리는 20야드(18m)로 단축했고, 말들을 우연히 만나면 차량은 정지해야 하고, 차량이 말을 놀라게 하는 연기나 증기를 내는 것을 금한다고 규정하면서 차량 등록, 등록 번호판, 제한 속도, 교량과 같은 구조물에 대한 최대 차량 중량 등의 개념을 공식화했다.

마차 업자들은 증기자동차에 손님을 빼앗기게 되자, 언플과 선동으로 증기자동차 운행을 규제했다.
마차 업자들은 증기자동차에 손님을 빼앗기게 되자, 언플과 선동으로 증기자동차 운행을 규제했다.

영국은 1826년 사상 최초의 실용화된 자동차가 등장하였는데 당시 증기기관은 모두가 놀랄만한 꿈과 같은 혁신적인 발명품이며, 이후에도 끊임없는 증기자동차의 실용화 노력은 이어져 1820∼1840년에 걸쳐서는 '증기자동차의 황금시대' 를 열었다.

하지만, 증기 버스 운행으로 인해 손님을 빼앗긴 기득권층인 마차 업자, 도로 파손, 말을 놀라게 하는 것, 좁은 차선을 막고 야간에 운행하여 지역주민의 수면 방해와 폭발사고 등을 이유로 마차업자가 주도하여 대규모 자동차 반대시위를 하게 되어 자동차 발전 억압법을 제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제한적인 규칙 규정은 마차업자들의 로비로 인해 증기자동차의 운행을 규제하는 것으로 결국은 영국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가로 막게 됐다. 영국의회는 기득권층의 편을 들어 자동차가 가져온 기술력 향상보다 기존 산업(마차산업)에만 주안점을 두게 됨에 따라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외국보다 경쟁력에서 상당히 뒤처지게 됐다.

기술의 발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특정 산업은 특별한 법을 허용하거나 공공의 이익과 혼동하지 말고 가능한 한 빨리 폐지하여야 새로운 산업과 새로운 일자리가 생성될 수 있음에도 그 반대의 행동을 취하고 억압하는 법으로 특정 산업을 보호하려고 함에 따라 미래의 경쟁 능력에도 막대한 상처를 주게 된 것이다.

당시 영국의회는 마차업자들의 의견을 들어 자동차의 속도와 운송 능력을 마차 시대의 의식 수준에 얽매인 어이없는 규제를 함에 따라 자동차 산업은 크게 위축되고 말았다. 그 당시 많지도 않던 자동차와 그로 인한 극소수 사고 사례를 과장하여 언플로 선동해 만든 이 법은 이후 30여 년이나 효력이 있었고 이 법으로 인해 산업 혁명의 발원지로서 새로운 기술을 견인하던 영국은 최초로 자동차를 상용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제2차 산업혁명(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까지)의 주역인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프랑스, 독일, 그리고 미국 등에게 빼앗기게 되어 자국의 자동차 산업을 고사시키는 데 크나큰 영향을 주게 됐다.

적기조례는 1896년에 폐지됐는데, 기술발전을 위해 노력하던 자동차 산업을 뒷받침해 주어야 했음에도 이를 망각하고 기득권층과 결탁했던 정치인들에 의해 1865년부터 1896년까지 30년 이상 기술발전이 차단된 것이다.

즉, 사양 산업인 마차에 대한 투자자 보호 및 마차업자의 이익을 위한 규제가 결국 마차와 자동차를 모두 잃게 된 것으로 뒤늦게 이를 깨닫고 경쟁력을 갖추고자 노력을 기울였지만 끝내 1등의 자리는 되찾지 못하고 롤스로이스와 미니 같은 그나마 흑자를 내는 브랜드만 BMW에 매각하고 영국 내 모든 제조공장은 폐쇄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적기조례는 1896년에 폐지되었지만 제정된 후 30년이나 흐른 후였기 때문에 마차와 자동차 산업 둘 다 잃게 된 것으로 혁신은 모두 기득권자들의 반대 때문에 정착에 실패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오늘날 혁신을 가로막는 악법을 적기조례라고 부르고 있다. 참으로 허무한 법안 하나로 미래산업을 망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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